암펙스가 접착제로 사용한 폴리우레탄은 물과 닿으면 비스코스액이 돼 버린다.
세계최대의 레코드테이프제작업체인 미국 암펙스(Ampex)사의 기술자들은 최근 자신들이 지난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만든 자기테이프들이 모두 녹아내릴 위기에 처해있음을 시인했다. 이 사실은 작년 12월 암펙스테이프를 사용해온 레코드제작업자들과의 공개토론회에서 밝혀진 것.
레코드업계에 '스틱키테이프 신드롬'(sticky tape syndrome, sticky는 '끈적끈적한'의 의미)이란 가공할 신종유행어를 만들어낸 이 사태는 암펙스가 자기테이프를 만드는 데 사용한 폴리우레탄 접합제가 물과 반응해 비스코스액으로 흘러내린 현상에서 비롯됐다.
익히 알려진 대로 자기녹음이란 자성체에 자기장을 작용시킨 뒤 그것을 제거했을 때 남는 잔류 자기를 이용해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자기 녹음에 사용되는 자기테이프는 보통 두께가 40μ을 넘지않는 강한 플라스틱 테이프 위에 결정크기가 1μ을 넘지 않는 미세한 강자성체(强磁性体)분말을 도포해 만든다.
암펙스사 테이프의 문제는 바로 도포할 때 쓴 폴리우레탄에서 발생했다. 폴리우레탄은 마치 스폰지와 같아 주위의 수분을 빨아들인 뒤 가수분해를 거쳐 비스코스 액이 되는 것이다. 지난 72년부터 암펙스사는 테이프제작에 폴리우레탄을 사용해왔지만 그 화학성분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는 기구를 84년에 들여놓기 전까지는 사용하는 폴리우레탄의 질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었다.
암펙스는 80년대에 처음 이런 현상이 발견됐을 때 보관실수로 인한 사고로 치부했다. 87년만해도 호주 국립영화소에 보관된 필름 20만릴(reel)에서 끈적끈적한 기름이 스며나와 기록된 내용을 전혀 쓸 수 없게 된 사건이 있었지만 암펙스는 이를 비밀에 붙였다. 이 사실이 공개화된 것은 작년 9월 영국의 과학잡지인 '뉴사이언스트'(New Scientist)가 이를 보도하면서부터다.
일단 공개화되자 여기저기서 암펙스 테이프가 녹아내린 사건들이 더 발견됐고 사실공개를 늦춘 암펙스사에 비난여론이 빗발쳤다. 이에 대해 암펙스사는 "초만원을 이룬 극장에서 '불이야'라고 소리지를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지금까지 세계 최고로 그 권위를 인정받아온 암펙스 테이프는 세계각국에서 음악인들의 연주 녹음이나 사료보관용으로 쓰이고 있어 단일기업에 의한 사고지만 그 파장은 크다. 일례로 세계적인 음반회사인 EMI도 암펙스 테이프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여기서 녹음한 유명가스들의 노래 마스터테이프(master tape)는 다시 듣기 어렵게 될 지 모른다.
암펙스사는 습기에 한번이라도 노출된 테이프는 그후에 어디에 보관하든지간에 이미 수분을 빨아들인 이상 가수분해를 시작한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암펙스사는 이제 테이프를 해외로 수출할 때 선박을 이용하지 않고 항공편으로 보낸다.
또 암펙스사는 지난 87년말 수분을 흡수한 테이프들을 일시적으로 복구해 그 내용을 다른 곳에 복사해둘 수 있는 비상대책을 마련했다. 이는 실험실에서 망가진 테이프를 일정 온도로 구워 일시적으로 원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녹음기사 등 전문가들은 이것조차 원음을 재생하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
암펙스는 최근 2년동안 폴리우레탄 대신 폴리카보네이트를 원료로 하는 접착제 개발에 노력해왔다. 암펙스 테이프 실험실의 로버트 페리는 이 새로운 테이프가 "예전의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원료가 되는 요소가 양적으로 그리 많지않아 테이프 가격이 더 비싸지게 될 것 같다"고 그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