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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늙고 잘 죽는’ 웰에이징 메카 꿈꾼다

이공계 특성화 대학을 가다 2 - DGIST



올해 타계한 콜롬비아의 소설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대표작 ‘백 년 동안의 고독’에는, ‘노인의 방에서 물건이 혼자 돌아다니고 있다’는 내용의 문장이 나온다. 평론가들은 ‘남미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의 예’라고 추켜세우지만, 어쩌면 마술이 아닐 수 있다. 혹시제 손으로 물건을 옮겨놓고 ‘깜빡’해서 잊어버린 것을 재치 있게,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문학은 노인의 건망증(혹은 치매)을 마술적인 표현으로 승화시켰지만, 과학은 연구로 승화시킨다. 왜 이런 현상(노화)이 일어나는지, 막거나 늦출 순 없는지 끝없이 탐구한다. 혹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면, ‘마술’이 판을 치는 방에서도 노인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기술적 대책을 마련한다. 목표는 하나다. 모두가 언젠가 겪게 마련인 노화를 보다 잘 받아들이고(웰에이징), 사회적 약자인 노인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최근 이런 노화 및 항노화 관련 연구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른 곳이 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은 지난 5월 중순, 세계적인 노화 전문가 12명과 함께 동·식물 분야 노화 연구 성과를 나누는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조직위원장은 이 대학 뉴바이올로지 전공의 남홍길 펠로우(특훈교수)가 맡았다.


남 교수는 식물을 이용한 노화 연구의 세계적인 대가다. 1980년대부터 30여 년째 이 분야에 매진하며 ‘사이언스’ ‘네이처’ ‘셀’ 등 최고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노화의 조절 과정을 유전자와 후성유전학(유전자 외의 요인에 의한 분자생물학적 제어 과정) 메커니즘을 이용해 연구한다. 2010년 국가과학자로 선정됐고, 2012년부터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식물노화수명연구단을 이끌고 있다. 올해 6월에는 호암상을 받기도 했다. 남 교수는 “노화 및 생애유전학 분야의 거장들이 참여하는 학술대회를 DGIST에서 개최했다는 것은 DGIST가 노화 및 항노화 연구의 메카가 된다고 선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 교수가 몸담고 있는 곳은 DGIST 대학원의 ‘뉴바이올로지 전공’이다. 이름이 특이하다 싶었는데, DGIST는 모든 대학원 전공이 다 융·복합 분야다(INSIDE 참고). 뉴바이올로지 전공에도, 남 교수가 이끄는 식물노화 외에, 동물 및 신경노화(친고령·항노화연구센터), 복잡계 및 시스템생물학, 계산 및 빅데이터생물학, 영상생물학, 양자생물학 등 첨단 융·복합 생명과학을 두루 연구한다. 국내에서 이렇게 다양한 생명과학 분야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전공은 DGIST의 뉴바이올로지 전공이 유일하다. 미국 알버트 아인슈타인의대 쟌뷔그 교수와 서유신 교수, 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쿠르트 뷔트리히 교수 등 세계 석학도 참여하고 있다.


 

DGIST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연구 분야들. 왼쪽은 사이버물리시스템(CPS) 분야의 대가 손상혁 정보통신융합전공 교수. 위는 식물 노화분야의 석학 남홍길 뉴바이올로지전공 교수(왼쪽 네번째).]

 



 

 


가장 젊은 이공계 특성화 대학


발빠른 행보도 눈에 띈다. DGIST는 지난 6월 세계적인 차세대유전체(게놈)분석연구소이자 생명정보기업인 ㈜테라젠이텍스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테라젠이텍스는 세계 최초로 여성의 개인 게놈을 해독했을 뿐 아니라, 처음으로 호랑이 및 고래 게놈을 분석해 세계 유전체 해독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다. DGIST에서는 친고령·항노화연구센터가 연구 파트너다. 신성철 DGIST 총장은 “인류의 난제인 노화 및 항노화 연구를 선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정보통신융합전공에 속한 ‘사이버물리시스템(CPS)’이다. CPS는 국방 전산망이나 교통시스템처럼 컴퓨터와 통신을 이용하는 통합 시스템을 뜻한다. 예를 들어 미사일 방공망을 생각해 보자. 통신망을 통해 수집한 적의 정보가 아무리 정확해도, 미사일을 정교하게 조준해 발사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만약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외부의 해킹에 취약하다면 큰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과정이 정확하고 안전해야 하는데, 이를 연구하는 분야가 바로 CPS다. 은용순 정보통신융합공학전공 교수는 “미래 사회의 인프라는 CPS로 구현될 것”이라며 “시스템 오류나 외부 공격에 잘 견디는 신뢰도 높은 CPS 원천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CPS는 첨단 정보통신 기술과 센싱 및 제어기술이 총망라된 대표적인 융합 기술이다. DGIST는 2012년 이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손상혁 버지니아대 교수를 펠로우로 초빙해 사이버물리시스템 글로벌센터를 설립했고,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글로벌연구실로 승인받았다. 또 올해 5월에는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고신뢰 CPS연구센터’를 유치했다. 이 분야를 미리 선점하기 위해서다.


이 외에도 DGIST는 국내 유일의 정부출연 뇌연구소인 한국뇌연구원을 부설연구원으로 유치했으며 의료로봇, 차세대 에너지, 그리고 양자물질 등의 신물질 분야도 개척하고 있다. 모두 미래가 유망한 분야다. DGIST는 젊다. 연구본부가 세워진 것도 21세기고, 대학원이 생긴 것은 불과 3년 전이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학부신입생을 받았다. 과학기술의 성과는 투자와 시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제 막 발걸음을 시작한 DGIST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DGIST는 ‘그저그런’ 전공은 다루지 않는다. 미래지향적인 융복합 주제만을 다룬다. 또 연구부와 학사부를 함께 둬 연구와 교육이 시너지를 내도록 유도한다. 맨 왼쪽은 기초학부의 수업장면. 가운데는 뇌과학전공의 실험 장면. 오른쪽은 첨단을 자랑하는 에너지연구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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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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