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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해결사 출두요~

어디서든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미국 뉴욕시에서 북쪽으로 60여km 떨어진 호손의 IBM 왓슨연구소. 체스 세계 챔피언을 이긴 딥 블루(Deep Blue) 컴퓨터와 세계 최초로 개발된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유명하다. 직원 수만 3000여명으로 과학계에서 ‘세계 최초’를 잇달아 선보이는 연구소로도 정평이 났다. 지금까지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는 무려 5명이나 된다.

그런데 최근 연구소의 과학자들이 연구 외에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왓슨연구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몇 년 전부터 스웨덴의 스톡홀름 시는 교통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 왔다. 출퇴근 시간이면 도로에 한꺼번에 자동차가 몰려 극심한 정체 현상을 빚기 때문이다. 교통 체증은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로 직결된다.

고민 끝에 스톡홀름 시는 혼잡한 도로에 진입하는 차에 통행료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통행료를 어떤 방식으로 받아야 할지 난감했다. 사람을 고용해 일일이 자동차 운전자에게 통행료를 징수할 수도 있지만, 이 방법으로는 인건비가 너무 많이 든다. 경제적이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이 없을까.

지난 2월 IBM이 스톡홀롬 시의 이런 고민을 해결했다. 전파식별(RFID) 태그와 이미지를 글자로 변환하는 기술을 활용한 시스템을 개발한 것.

자동차 앞 유리 안쪽에 RFID 태그를 붙인 자동차가 도로에 진입하면 도로 가장자리에 설치된 수신기가 태그에서 발신되는 무선 신호를 수신한다. 이 신호는 중앙의 컴퓨터 시스템으로 전송되고, 그 순간 자동차 소유주의 은행 계좌에서 통행료가 자동으로 인출된다.
 

'IBM의 변신은 무죄.' 최근 IBM은 고객의 요구에 맞는 '맞춤형' 솔루션을 개발하며 전통적ㅇ니 컴퓨터 기업의 이미지를 벗어 던졌다.


혼잡 통행료 해결사

태그를 달지 않은 자동차가 도로에 진입하면 도로 옆에 설치된 카메라가 자동차의 번호판을 찍는다. 이를 위해 IBM은 이미지를 글자로 변환하는 ‘이미지 인식 시스템’을 개발했다. 찍힌 번호판 사진은 이미지 인식 시스템을 거치면서 숫자로 변환되고, 그 정보가 운전면허증의 데이터베이스와 조합된다. 운전자는 나중에 인터넷이나 24시간 편의점인 세븐일레븐에서 요금을 지불하면 된다.

현재 스톡홀름 시는 IBM의 통행료 징수 시스템을 시범운영하고 있다.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다. 시행한지 1개월 만에 스톡홀름 시의 출퇴근길 정체가 25%가량 줄었다. 이에 대해 IBM의 온디맨드이노베이션시스템(ODIS) 총괄 페기 커넬리 부사장은 “IBM의 이미지 인식 기술 덕분”이라고 밝혔다.

이전에는 번호판이 더럽거나 주변이 어두우면 번호판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었다. 그런데 IBM이 고성능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한 이미지 인식 시스템이라는 신기술을 개발하면서 일손을 전혀 들이지 않고도 번호판을 자동으로 정확히 인식할 수 있게 됐다.

디젤 버스의 운행을 금지하고 있는 인도의 뉴델리나 교통 정체가 심한 지역에 진입하는 차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영국의 런던 등은 벌써부터 IBM의 신기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미국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은 IBM의 기술 도입을 검토 중이다. 매사추세츠 주나 포르투갈 등에서도 유료 도로의 요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IBM의 교통 시스템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IBM이 해결한 문제는 비단 교통 체증만이 아니다. 미국의 산불 예방에 필요한 소방 인력 수요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했고, 리무진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스케줄을 내놨을 뿐 아니라 고객의 주문 패턴과 재고 현황을 분석해 최적의 재고 수준을 유지하는 방법도 제시했다. 국내에서도 포스코가 제철 제조 최적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IBM에게 컨설팅을 받았다. IBM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셈이다.

IBM의 이런 변신은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됐다. 1960년대부터 30여년간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중대형 컴퓨터 시장에서 IBM은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모두 장악한 독보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1990년대 개인용 컴퓨터(PC) 시대가 시작되면서 IBM은 델, 컴팩,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에 맹주의 자리를 내주게 된다. 델이나 컴팩처럼 저렴한 컴퓨터를 만들지 못했고,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PC의 운영체제를, 인텔에게는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주도권을 뺏겼다.
 

RFID 태그를 이용한 '이미지 인식 시스템'은 IBM의 최신 솔루션이다. 사진은 한 운전자가 차에 탄 채 음식을 주문하는 '드라이브 스루' 매장에서 RFID 태그로 계산하는 모습.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IBM은 승부수를 던졌다. 네트워크 혁명이 진행될수록 PC는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하나의 기기에 불과할 것이며 결국 다양한 IT 공급업자들이 만들어낸 기술을 통합하는 솔루션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온디맨드이노베이션시스템이었다.

‘온디맨드’(On-Demand)는 원하는 서비스를,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제공하고 고객의 기호를 신속히 감지해 다양한 상품을 적시에 제공한다는 의미다.

IBM의 예상은 적중했다. 분야를 막론하고 여러 기업들이 차츰 IBM에 러브콜을 보냈다. 지난 3년 동안 연구소의 과학자들이 비즈니스 컨설팅에 참여하면서 벌어들인 돈만 10억원 규모에 이른다. 여기서 핵심적인 역학을 한 것은 그동안 IBM 왓슨연구소가 기초연구를 통해 축적해 놓은 기술이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현재 IBM은 ‘둔한 공룡’이라는 오명을 벗고 IT 업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포스트 PC시대를 이끌고 있다. IBM 왓슨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오늘도 이렇게 말한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왓슨연구소 페기 커넬리 부사장

지난달 10일 국내에서 개최된 IBM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IBM 왓슨연구소 ODIS 총괄 페기 커넬리 부사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를 만나 ‘해결사’를 자처한 IBM 과학자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당신도 과학자인가?
나는 전공이 수학이다. 하지만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아니다. IBM에서도 판매 부서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래서 스스로 과학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과학자와 컨설턴트를 중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 온디맨드이노베이션시스템(ODIS)을 간단히 설명해 달라.
연구소의 성과물은 실제 생활에 활용되고 도움을 줄 때 의미가 있다. ODIS는 고객이 원하는 주제를 고객과 함께 연구한다는 의미다. 고객의 요구에 맞는 ‘맞춤형’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현재 왓슨연구소의 전체 연구원 가운데 10% 정도인 300여명이 고객사에 파견돼 있다.

- 왓슨연구소의 기초연구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가?
왓슨연구소에서 수학, 물리학, 화학, 재료공학 등 다양한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것이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원동력이다.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직접 컨설팅에 참여하기 때문에 비즈니스 컨설팅 분야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의 범위와 깊이가 한층 커졌다.

- 과학자들에게 눈에 띄는 변화가 있는가?
과학자들이 고객을 만족시키는데 주력하게 됐다. 연구 책임을 맡은 과학자의 경우 하루에 고객을 만나는 횟수가 4~5회 정도 된다. 더 이상 연구자의 특허나 논문만 평가하지 않는다. 연구자가 개발한 기술이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 고객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함께 따져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 최근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얼마 전 독일 하노버에서 개최된 세계 정보통신 박람회인 ‘세빗(CeBIT) 2006’에서 IBM은 운송 회사인 DHL과 체결한 전파식별(RFID) 태그에 관한 파트너십에 대해 발표했다. RFID 태그는 DHL의 물품 수송과 반환 등을 개선하기 위해 DHL의 공급망에 통합될 계획이다. 현재 RFID 태그는 대중화를 앞두고 있어 이번 박람회에서도 큰 관심을 모았다.
 

IBM 왓슨연구소 페기 커텔리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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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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