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의료 논쟁 중 하나가 ‘한의학이 과연 과학인가 아닌가’예요. 의사들은 한의학이 무슨 과학이냐며 혀를 끌끌 차지만, 한의사들은 대대로 내려온 한의학적 지식이 하나하나 깨닫고 나면 더 할 나위 없이 과학적이라며 의사들의 편견을 답답해하지요. 사실 이 문제는 쉽게 대답하기가 어려워요. 어쨌든 오늘날 한의학이 과학적 학문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랍니다. 그 중 한 가지가 현대 의료기기의 사용이에요.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이 문제를 이번 호에서 한번 다 뤄보려고 해요.
한의사는 초음파기기 쓰면 안 될까
2009년 한의사 A씨는 의료법 위반으로 200만 원의 선고유예 처분을 받았어요. A씨는 2007~2009년 사이에 ‘오스테오이미저 플러스(Osteoimager PLUS)’라는 초음파 골밀도 측정기를 이용해서 환자 약 50명의 성장판검사를 직접 했어요. 그리고 그 환자들에게 체질 개선을 위한 한약, 일종의 ‘성장탕’을 처방했지요. 성장탕이 정말 키가 크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여기서 논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초음파 영상자료를 바탕으로 이뤄진 한의사 A씨의 설명은 환자들에게 치료의 필요성을 확신시켜 주는 ‘과학적 근거’로 작용했겠죠.
문제는 ‘오스테오이미저 플러스’라는 초음파기기는 본래 서양의학, 그러니까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이 아닌 일반 병원에서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의료기술이라는 거죠. 현재 한국의 의료법상으로는 의사와 한의사가 서로의 진료 영역을 침범할 수 없어요. 의사가 한의사의 방법을 사용해서 진단하거나 치료할 수 없고, 반대도 마찬가지예요. 이를 어기면 의료법 위반으로 법적인 처벌을 받게 돼 있어요. 이런 의료법에 근거해 한의사 A씨는 고소당한 것이고요. 비슷한 법적 논쟁은 그 이전부터 있었어요. 그런데 A씨 사건은 좀 더 복잡하고 근본적인 법적·의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어요. 왜냐하면 A씨가 초음파기기를 사용한 자신의 진료 행위가 불법이라는 법원의 판결에 굴복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법원의 판결이 평등권과 행복추구권 같은 헌법적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했거든요. 우선 그는 정확히 무엇이 의사의 의료행위이고, 무엇이 한의사의 의료행위인지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문제제기 했어요. 설령 초음파기기가 원래 서양의학적인 진단과 치료를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누구든지 환자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죠. 결국 A씨는 초음파기기를 한의사가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현행 의료법이 헌법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 판단해줄 것을 요청한 거죠. 헌법재판소의 사안으로 넘어가면서 A씨 사건은 의학계, 한의학계를 넘어 전사회적인 관심과 논쟁의 대상이 됐어요. 수십 년 전부터 의학계와 한의학계 사이에는 남다른 갈등과 앙금이 존재했던지라,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도 상당히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죠.
한의사의 행위는 불법... ‘과학적인 척’ 하지 말라?
2013년, 8명의 재판관들은 A씨에 대한 의료법 위반 판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만장일치로 결정했어요. 즉,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사용은 불법이라는 것이지요. 헌법재판소의 결과는 의사와 한의사 모두에게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어요. 의사 집단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환영하면서, 한의사들이 괜히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면서 ‘과학적인 척’을 하지 말고 전통적인 진맥을 통해서나 진료를 하라고 엄포를 놓았지요. 반면 한의사들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몹시 부당하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의사만 사용하던 체온계나 혈압계와 같은 현대 의료기기들도 이제는 집집마다 사용하는데, 왜 초음파기기라고 해서 꼭 서양의사만의 전유물이 돼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지요. 심지어 어부도 물고기를 잡기 위해 초음파기기를 사용하는데, 왜 한의사는 사용할 수가 없냐고 항의를 했어요.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은 몇 가지 근거를 들어서 설명했어요. 먼저, 초음파 영상사진 및 골밀도 수치 등을 기초로 성장판 개폐 여부 및 성장 부진 등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한의학적 지식이나 방법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서양 의학의 지식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죠. 그리고 초음파검사는 기본적으로 의사의 진료과목, 특히 전문의 영역인 영상의학과의 업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어요. 여하간 신체를 조각조각 분류해서 바라보는 서양 의학의 해부학적 시선에 대해 그간 비판해 오던 한의사들이 갑자기 해부학적 세부 정보를 제공하는 골밀도 측정 초음파기기를 사용하겠다고 주장한 것은 뭔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이긴 해요. 도대체 인간 신체에 관한 한의학의 관점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기도 하고요.
한의사 찾는 사람들 어리석은 것은 아니야
헌법재판소의 결정 후, 한의사 집단은 무척 난감하고 답답해했어요. 그렇다면 과학기술의 시대에 사는 오늘날의 한의사들도 조선시대 허준처럼 그저 맨손으로 환자의 맥을 진찰하고 맨눈으로 얼굴빛을 관찰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과연 그러한 방법이 한의사를 찾아 온 환자를 위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1608년 선조가 세상을 떠나자 ‘의술이 부족하여 선조를 죽게 했다’는 죄로 유배 길에 올라야 했던 허준처럼, 오늘날 한의사도 만일 맨손과 맨눈으로 진단에 실패할 경우에는 치료의 모든 책임을 지고 환자에게 배상을 하거나 심지어 감옥에 가야 할까요?
의사와 한의사 집단의 현대 의료기기 논쟁을 보고 있노라면, 인류학자인 저는 뭔가 문제의 본질이 호도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논쟁에 참여하는 많은 의료인들에게 과학화는 별다른 이견이 없이 의학이나 한의학이 ‘절대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이고, 또 과학화의 핵심이 마치 ‘현대 의료기기의 사용’인 것처럼 간주되곤 하죠. 그뿐 아니라, ‘현대 의료기기’는 모조리 같은 종류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이 세 가지 가정이 모두 정확히 맞는 것은 아니랍니다.
우리가 ‘과학’이라고 할 때는 그것이 자연과학이든 생명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간에, 실험실을 중심으로 한 근대 서양과학의 방법론을 차용하고 있어요. 현상을 설명할 때 논리와 인과성을 중시한다는 뜻이죠. 과연 이것이 인간의 질병을 파악하고 치료하는 데 유일하고 가장 훌륭한 접근법일까요?
의사도 환자의 질병을 제대로 진단하고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검사 결과를 과학적으로 판단하는 능력 이외에도 공감 능력이나 환자의 상황에 대한 이해력이 매우 중요해요. 원인이나 치료 방법에 대한 과학적 메커니즘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여전히 돕고 치료해야 하기도 하고요. 게다가 우리는 근본적으로 실험실의 생명체와 달리 항상 주변 사람들과 상호작용 하고 특수한 역사적인 경험 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순수하게 과학적인 접근만으로 질병의 문제를 제대로 알기도 힘들지요.
우리가 인간의 질병을 다루는 학문에서 과학화를 ‘절대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로 간주하는 것은 무언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는 것일 수 있어요. 과학화는 더 나은 진단과 치료를 위한 하나의 과정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결코 완전하지는 않은 거죠. 마찬가지로 저는 ‘더 과학적’인 의사를 두고도 굳이 아프면 한의사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한의학을 확장하는 첨단 의료기기
현대 의료기기도 마찬가지예요. 의료기기에는 초음파기기처럼 인간 신체를 해부학적으로 분석하고 영상화하는 장비도 있지만, 거꾸로 한의학적 진단법인 망(望:보고) 문(聞:듣고) 문(問:묻고) 절(切:만져보는)을 돕거나 확장시킬 수 있는 기기들이 있을 수 있어요.
2013년 12월에 헌법재판소에서 한의사들의 안압측정기 사용이 불법이 아니라고 판정한 것은 현대 의료기기가 한의학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죠. 재판관들은 동의보감에서 안압상승으로 인한 녹내장의 증상이 언급돼 있다는 사실과 한의사는 치료를 위해 의사와 같이 안압하강제를 투여하는 것이 아니라 간과 폐를 돕는 방식으로 처방한다는 점을 강조해요. 따라서 안압측정기는 기존에 집게손가락으로 안구를 살짝 압박해 측정했던 절진(切診)의 현대화된 방법으로 볼 수 있다는 거죠.
어때요, 한의사의 안압측정기 사용에 대해 동의할 수 있나요? 물론,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에 대해서 의사들은 어떻게 전통의학을 다루는 한의사들에게 현대과학기술을 허락할 수 있냐며 몹시 당황하고 맹비난을 퍼붓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