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이 경기도 수원에 있는 기자는 안산에 자주 간다. 단골 바지락칼국수집에 들렀다가 차를 조금 더 몰면 곧장 시화호다. 90년대만 해도 오염의 대명사처럼 불리던 곳이지만, 지금은 제법 쾌적하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방조제 위를 한참 달리면 주차장과 산책로가 딸린 큰 공원이 나오는데, 탁 트인 서해와 멀리 먼 바다로 향하는 배들의 움직임이 보여 가슴이 시원하다. 공원에서 나오면 이제까지의 방조제와는 조금 다른, 아래에 시설을 갖춘 구조물이 나온다. 밀물과 썰물이라는, 달의 리듬에 맞춰 드나드는 바닷물의 힘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친환경 발전 시설인 조력발전소다.
시화호 조력발전소는 현재 존재하는 조력발전소 가운데 최대 규모로, 재생에너지 생산비중이 낮은 편인 한국 입장에서는 소중한 존재다. 그런 시화호 조력발전소가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한 지 어느덧 3년이 돼간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는 평이 많다. 하지만 해양 환경이나 지역문화 측면에서도 이룬 성과도 결코 작지 않다.
‘죽음의 호수’에서 미래형 생태 기지로
바다를 막아 만든 시화호는 한 때 오염의 상징이었다. 1980년대에 방조제를 짓기 시작해 1994년 물막이 공사를 완료했지만,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을 증명하듯 시화호는 인근 시화 공단과 농지 등의 비점오염원에서 나온 오염물에 푹푹 썩어갔다. 불과 3년 만인 1997년, 시화호는 죽음의 호수로 변했다. 대표적인 수질 오염 지표인 화학적산소요구량(COD)이 17.4ppm까지 치솟았다. 환경정책기본법시행령에 따르면, 호수에서는 보통 COD가 2ppm 이하일 때 1a등급(매우 좋음), 3ppm 이하일 때 1b등급(좋음)으로 구분한다. 이후 COD가 조금씩 높아지면 등급도 떨어지며, COD가 10ppm을 초과할 경우 가장 나쁜 6등급(매우 나쁨)으로 분류한다. 17.4ppm은 그만큼 최악의 상태를 의미한다.
1998년, 시화호는 결국 ‘고인물’ 정책을 포기하고 호수의 물을 방류하기 시작했다. 갇혀 썩은 물이 바다로 흘러나가고, 대신 신선한 새 바닷물이 들어와 호숫물을 희석시켰다. 섞이는 양은 전체 호수의 수량에 비하면 미미한 편이었지만, 그나마 바닷물이 들어오자 수질은 급속히 깨끗해졌다. 해양수산부의 한국해양환경조사연보에 따르면, 2000년에는 COD가 4.2ppm까지 크게 개선됐다. 하지만 바닷물이 들어와도 어쩌지 못하는 오염물이 있었다. 호수 밑바닥에 쌓여버린 오염물은 계속해서 떠올라 물에 섞였고, 이 때문에 2차 오염이 일어났다. 2000년대 초반, 시화호의 수질은 다시 나빠졌다. 2004년의 COD는 다시 5등급에 육박하는 7.5ppm까지 치솟았다. 이에 환경부는 시화호를 ‘특별관리해역’으로 지정하고 집중 관리하기 시작했다(해수가 드나들면 법적으로 호수가 아니다). 특별관리해역은 시화호 외에도 부산연안, 마산만, 광양만, 울산만 등 대도시나 산업단지 연안이 포함돼 있다(총 6곳). 시화호는 담수화를 포기한 직후인 2000년부터 인천연안과 함께 지정돼 있었지만, 2004년부터는 아예 단독으로 지정돼 관리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시화호의 수질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끔찍했던 90년대에 비해서는 한결 깨끗해졌다. 하지만 다른 특별관리해역에 비해서는 여전히 크게 뒤져 있었다. 마산만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모두 COD가 1~2등급으로 깨끗했지만, 시화호는 3등급 수준이었다.
최근 이런 시화호가 보다 깨끗해졌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원인은 시화호 조력발전소다. 조력발전소는 밀물 또는 썰물 때 밀려들거나 나가는 바닷물의 힘으로 수차를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기존의 배수갑문에 새로 만든 수문, 발전 수차까지 추가돼 드나드는 바닷물의 양이 월등히 많아졌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의 자료를 보면, 조력발전소가 가동되기 전인 2011년 7월까지 월 평균 바닷물 유입량은 3억2163만m3이었다. 하지만 시험 가동이 시작된 2011년 8월부터는 2.5배가 넘는 평균 8억9367m3으로 늘더니, 본격적으로 가동된 2012년 이후로는 38억5988만m3으로 훌쩍 늘었다. 하루 평균 1억4700만m3 수준으로, 시화호 전체 물의 절반에 해당한다. 과거에는 한달 동안 들어온 바닷물이 지금은 이틀 반이면 들어온다. 더 많은 ‘신선한’ 바닷물이 들어오면서 수질이 더욱 개선된 것이다.
이 사실은 연구로도 증명되고 있다. 최근에는 COD 대신 ‘수질평가지수(WQI)’라는 기준이 해역의 수질 기준으로 많이 사용된다. WQI는 용존산소포화도(DO), 식물 플랑크톤 농도, 투명도, 용존무기인, 용존무기질소 등 기존에 쓰이던 여러 개의 수질 측정 자료를 통합해 계산한 값이다. 숫자가 작을수록 수질이 좋다는 뜻으로, 환경정책기본법 시행령에 따르면 ‘매우 좋음’에 해당하는 1등급은 WQI가 23 이하이고, 2등급(좋음)은 24~33 사이, 가장 나쁜 5등급(아주 나쁨)은 60 이상이다.
나공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환경·보전연구부 선임연구원팀은 시화호 조력발전소 가동 전후인 2011년과 2012년, 시화호 안쪽과 바깥 바다의 해역에서 수질을 측정해 WQI 지수가 얼마나 감소했는지 연구해 그 결과를 2013년 5월 ‘한국해양환경·에너지학회지’에 발표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시화호 안쪽의 WQI는 2011년에 53으로 4등급(나쁨)에 해당됐지만, 발전소가 가동된 이후(2012년) 42.8로 떨어져 3등급(보통)으로 좋아졌다. 연구팀은 해수교환량이 증가해 바닥에 산소가 부족한 환경이 줄어들어 자정 작용이 활발해진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또 호수 안쪽의 물을 방류했기 때문에 방조제 바깥 바다가 오염됐을 거라는 우려와 달리, 바깥 수질은 모두 3등급으로 일정하거나 오히려 조금 더 좋아져, 방조제 바깥 바다 오염은 없다고 결론지었다.
생물은 어떨까. 생물다양성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지표는 철새다. 시화호는 불과 얼마 전까지 오염이 심했던 곳이라 철새가 찾아 들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주변에 조성된 갈대습지공원과 맑아진 수질 덕분에 시화호는 전국적인 철새도래지가 됐다. 지난 3월 환경부가 발표한 ‘주요 철새 도래지 2014년 3차(3월) 동시센서스’ 결과에 따르면, 시화호는 낙동강하구와 용담-대정 해안지역(제주도 서부)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관찰되는 철새의 종 수가 많은 곳이었다(64종). 다양성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관찰되는 개체수도 많아서, 금강호, 동림저수지에 이어 역시 세 번째로 많은 철새가 관찰됐다(1만9674마리). 특히 물 속에 자맥질해 길게는 수십 초동안 헤엄을 치는 ‘조류계의 수영선수’ 물닭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3991마리가 관찰됐다. 물닭은 지난 1월 실시한 조사에서도, 시화호에서 낙동강 하류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관찰됐다(이 때는 발견 종 수 및 개체수에서는 5위권 안에 들지는 못했다).
지역 문화 싹 틔우는 터전
시화호 조력발전소 주위에는 ‘티-라이트(T-LIGHT)’라고 하는 공원이 마련돼 있다. 축구장 9개보다 큰 6만 8100m2의 대지에 바다가 보이는 시원한 산책로와 전망대, 편의시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오가는 사람들이 자주 차를 멈추고 바다를 즐기고 간다. 서해안에 위치해 있어서 낙조도 일품인데, 여느 서해안과 달리 바로 앞에서 바다를 볼 수 있어서(보통은 갯벌 너머로 보인다)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6월 25일에는 전시공간과 공연장까지 갖춘 ‘조력문화관’이 완공돼 체험할 거리까지 늘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발전소가 지역 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크고 작은 행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시화조력관리단에 따르면, 작년 한 해에만 35건 이상의 크고 작은 문화 행사가 열렸다. 안데스문화원이 주관한 ‘영혼의 소리’ 음악회가 15번 열렸고, 색소폰 동호회의 콘서트 등 자생적인 행사도 여럿 개최됐다. 연말에 열린 해넘이 축제는 2000명의 방문객이 찾아올 정도로 성황이었다. 관리단은 작년에 130만 명이 발전소와 T-LIGHT를 찾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기자는 정확히 3년 전, 시화호 조력발전소를 준공하기 직전에 현장을 찾아 상세히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시화호라는 오염의 상징을 조력발전소가 깨끗하게 할 것이라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정말 눈에 띄는 변화가 있을까’하고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3년간의 운영 결과를 보고 또 수시로 들러 눈으로 확인하며, 그 때의 기대가 크게 어긋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대역사(大役事)에 3년이라는 운영 경험은 아직 짧다. 더 긴 시간 동안 꾸준하고 모범적인 운영이 계속되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