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얼굴, 통통한 배, 짧은 다리... 인기 캐릭터는 하나 같이 아기처럼 생겼다. 이들의 성공 비결은 이런 형태에 있는 걸까. 한 번 알아보자.
선물을 사러 들어간 완구 코너, 여기저기 둘러봐도 온통 뽀로로 뿐이다.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배, 그야말로 눈사람 몸매다. 동그란 주황색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도 역시 동그라미. 동글동글한 겉모습만큼 착하고 순한 성격으로 아이들을 사로잡은 지 오래다.
“진짜 귀엽지? 얘 별명이 뽀통령이래. 우리 때는 이런 거 없었는데.”
“왜? 우리도 둘리 있었잖아. 그리고 보니 둘이 뭔가 비슷하다, 그치?”
아기 같은 얼굴에 이등신 몸매. 기자가 중학교 시절 유행했던 캐릭터 ‘마시마로’도 마찬가지다.
눈은 크게 코는 짧게…미키마우스의 진화
비단 국내 캐릭터만은 아니다. 일본의 헬로키티, 디즈니의 밤비도 마찬가지다. 밤비의 경우 처음에는 실제 사슴처럼 기자개발했다. 월트 디즈니가 특별히 부탁했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직접 새끼 사슴 한 쌍을 가져 와 해부하는 광경을 제작자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그린 밤비는 인기가 없었다. 해법은 역시 더 어려 보이게 다듬기였다. 밤비의 주둥이를 짧게 하고 머리와 눈을 크게 그려 지금의 밤비가 됐다.
미키마우스도 지난 50년 간 점점 아기 같은 모습으로 진화했다. 1985년 미국의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미키마우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 눈은 2배 가까이, 머리도 몸통의 절반만큼 커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코의 길이는 오히려 25% 정도 짧아졌다. 굴드 박사는 논문에서 미키마우스의 생김새가 이렇게 변한 원인을 “사람들이 어린 동물처럼 생긴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어린 동물을 좋아하는 걸까.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인 콘라드 로렌츠는 이 현상을 ‘귀염성 인지반응’이라고 불렀다. 동그란 얼굴, 큰 동공, 납작한 코, 이등신 얼굴 같은 특징이 보호 본능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뇌는 귀여운 동물을 좋아해
실제로 지난해 9월, 귀여운 동물을 볼 때만 반응하는 뇌 세포가 감정을 조절하는 중추인 편도체에서 발견됐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크리스토퍼 코흐 교수가 41명에게 동물의 사진을 보여주고 뇌세포의 활성을 측정한 결과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간질을 치료하기 위해 뇌 속에 삽입하고 있는 미세전극을 통해 뇌세포의 전기신호를 직접 측정할 수 있었다.
이 세포는 작고 귀여운 동물 캐릭터인 ‘피터 래빗’을 볼 때 활성이 더 좋기 때문에 ‘피터 래빗 세포’로 부르기도 한다. 코흐 교수팀은 이 세포가 자극을 받으면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도 추가로 발견했다. 코흐 박사는 사람이 오랫동안 동물과 함께 살며 특정 동물에 반응하도록 잘 분화된 뇌를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며 연구의 의의를 밝혔다. 연구 결과는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9월 13일자에 실렸다.
최근 사람들 사이에 부는 ‘동안 열풍’도 아기 같은 모습의 캐릭터 인기에 도움을 줬다. 1970년대 인기 있었던 캐릭터인 ‘태권브이’나 ‘똘이장군’은 비교적 작은 얼굴과 큰 키를 자랑한다. 태권브이는 7등신, 똘이장군은 5등신이다. 1990년대 방영된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의 주인공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은 3~4등신이다. 최근에는 2등신은 기본이고 1.2등신까지 등장했다. 얼굴의 크기는 더욱 커지고 팔다리는 짧아진 셈이다. 몸의 비율뿐 아니라 얼굴도 갈수록 둥근 형태로 변했다. 최윤선 부천대학 만화&2D영상그래픽전공 교수는 “시대의 트렌드를 잘 파악하는 것이 캐릭터의 성공 비결”이라며 “캐릭터를 개발할 때 철저한 시장조사가 필수”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