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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물질을 만든다!


빛을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물리학의 핵심 주제였다. 빛을 다루기 위해 거울을 사용했던 흔적은 고대 이집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렌즈도 고대 로마에서 이미 쓰이고 있었다. 그리스 자연철학자 헤론은 빛이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로 진행한다고 제안했다. 비슷한 시기에 톨레미는 물의 굴절률을 실험적으로 측정했다.


빛의 역사 = 과학의 역사


근대 과학이 발전하면서 빛에 대한 이해도 훨씬 깊어졌다. 갈릴레이는 스스로 만든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했고, 얀센은 복합 현미경을 만들었다. 빛이 최단거리를 진행한다는 헤론의 법칙은 페르마에 의해 최소시간의 원리로 대체됐다. 네덜란드의 스넬은 굴절의 법칙을 발견했다. 위대한 뉴턴에게도 광학이 중요한 연구 과제였다. 뉴턴은 백색광이 프리즘을 지나면서 무지개 색으로 나뉘는 현상을 관찰해서 색깔은 물체의 속성이 아니라 빛의 성질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또 자신의 역학 이론을 기초로 빛이 무수히 많은 작은 알갱이라고 생각했는데, 뉴턴의 권위에 힘입어 빛이 입자라는 믿음이 널리 퍼졌다.


같은 시대에 네덜란드의 하위헌스는 파동의 성질을 이용해서 빛의 반사와 굴절, 회절 등의 현상을 설명하고 빛의 본질은 파동이라고 주장했 다. 하지만 뉴턴의 권위를 넘지 못했다. 백 년쯤 뒤에 영국의 토마스 영이 두 개의 틈에서 나온 빛이 간섭을 일으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빛이 파동이라는 것이 정설이 됐다. 여기에 맥스웰이 빛은 곧 전자기파라는 것을 보였다. 이로써 빛의 본질은 전자기장의 파동이라는 생각이 확립됐고, 맥스웰의 전기역학 이론이 곧 빛의 이론이 됐다.


가장 현대적인 빛 이론은 무엇?


여기서 끝이 아니다. 빛에 대한 연구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라는 현대물리학의 두 기둥을 마련하는 단초가 됐다. 20세기에 접어들 무렵 물리학자들은 빛이 어떤 관성 좌표계에서도 일정한 속도로 달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로부터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창안했고, 시공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상대성이론은 E=mc2을 통해 물질과 에너지의 경계도 허물었다. 원자폭탄과 원자력발전도 모두 이를 이용한 것이다.


또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은 잇달아 빛이 입자처럼 행동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빛이 한편으로는 간섭을 하는 파동처럼 행동하고, 동시에 특정한 에너지를 가진 입자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심지어 빛을 전자에 쬐어주면 마치 입자끼리 충돌한 것처럼 서로 튕겨나가기도 한다. 이 현상을 미국 물리학자 컴프턴이 양자역학으로 설명했기 때문에 컴프턴 산란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빛을 에너지 덩어리로 생각하는 데서 양자역학의 문이 열렸다.



이집트 시대의 거울


1920년대 말에 영국의 디랙이 전자에 대해 상대성이론을 적용한 양자역학 방정식을 제시했다. 1930년대 물리학의 가장 큰 과제는 디랙의 방정식을 기반으로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가지고 빛을 현대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이었다. 하이젠베르크, 파울리 등 양자역학의 건설자들은 일제히 이 주제에 매달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 과제는 마침내 1950년대 미국의 슈빙거와 파인만, 그리고 일본의 신이치로에 의해 각기 독립적으로 완성됐다. 이 이론을 양자전기역학(QED)이라고 부른다.


QED가 바로 빛에 대한 가장 현대적인 이론이다. QED는 빛과 전자(혹은 전기를 띤 모든 입자)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에 맞도록 설명하며, 그 어떤 이론보다 정확한 정량적 예측을 하게 해 준다.







빛과 물질의 경계가 사라지다


디랙의 방정식에서는 전자와 반대 전하를 가지는 입자가 예측됐는데, 놀랍게도 1932년 미국의 앤더슨이 우주선 속에서 정말로 그런 입자, 즉 반입자를 발견했다. 입자와 반입자는 모든 물리적 성질이 반대기 때문에, 둘이 만나면 소멸된다.


단, 두 입자의 질량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질량은 입자나 반입자 모두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것이 소멸되고 E=mc2에 의해 두 입자의 질량에 해당하는 에너지만 남는다. 그 에너지는 바로 빛(광자)의 형태로 나타난다. 즉 물질이 소멸해서 빛이 되는 것이다(81쪽 그림➊).


만약 에너지가 충분하면 정반대도 가능하다. 즉 광자 두 개가 충돌해서 입자와 반입자 쌍이 만들어질 수 있다. 물질이 빛으로 소멸할 수 있다면, 빛으로부터 물질이 창조될 수도 있는 것이다(그림➋). 1934년 브라이트와 휠러는 두 개의 광자가 충돌해서 전자와 양전자 쌍을 만드는 확률을 계산했다. 전자-양전자 쌍이 만들어지려면 두 광자의 충돌 에너지가 전자의 질량에 해당하는 에너지의 2배를 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에너지를 내는 것은 당시로는 어려운 일이었고, 생성 확률도 매우 작았으므로 실험실에서 성공하지는 못했다.


1970년대 가속기에서 가상 광자끼리 충돌해서 전자와 양전자가 쌍으로 만들어지는 현상이 관찰됐다. 이로부터 광자-광자충돌 실험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장은 성과가 지지부진했다. 충돌하는 광자의 에너지가 너무 낮기 때문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역과정인 전자-양전자 충돌 실험이었다. 역과정은 실제로 가속기에서 실행돼 혁명적인 실험 결과를 내놓기 시작했다. 전자-양전자가 높은 에너지로 충돌하면 쌍소멸이 일어나고 전혀 새로운 입자들이 나타난다. 여기서 나온 새로운 결과들은 양자색깔역학을 비롯해서 입자 물리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영국 임페리얼컬리지 연구팀의 실험 개념도
브라이트와 휠러가 생각한 충돌 실험
 
마침내 레이저로 전자를 만들다


광자-광자 충돌 실험의 핵심 기술은 높은 에너지의 광자 빔을 얻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레이저에 높은 에너지로 가속된 전자를 충돌시킨다는 아이디어가 1963년에 나왔다. 그러면 컴프턴 산란 과정에 의해 전자의 에너지를 광자가 넘겨받을 수 있다. 분명 가능하기는 했으나 당시 기술로는 효율이 너무 낮았다. 전자 1000만 개당 광자 하나 정도가 만들어졌다. 레이저 기술이 발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1990년대 스탠퍼드선형가속기연구소(SLAC)는 보유하고 있던 50GeV 출력의 선형 가속기를 이용해서 가속된 전자와 레이저의 빛을 충돌시켜서 높은 에너지의 광자를 만들고, 이를 다시 레이저의 빛(또 다른 광자)과 충돌시켜서 전자-양전자 쌍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마침내 빛에서 물질이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레이저를 2만 번 쏠 때 약 100개의 전자-양전자 쌍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결과는 정확히 그림➋와 같은 브라이트-휠러 과정은 아니다. 레이저의 빛이 너무 약해서 여러 개의 광자가 충돌해야만 전자-양전자 쌍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유럽 입자 물리학연구소(CERN)는 LHC(거대강입자가속기) 이후 프로젝트로, 초대형 전자 선형 가속기인 ILC를 추진하고 있다. ILC는 스탠퍼드선형가속기 보다 4배 이상 높은 에너지로 전자를 가속해 다시 고에너지 광자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실행된다면 광자 충돌 실험에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다. ILC 실험은 광자가 충분히 높은 에너지에서 충돌하기 때문에, 전자-양전자 쌍은 물론이고 힉스 보존을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실험도 가능하다.


최근 영국 임페리얼컬리지의 파이크 연구팀이 제안해 화제가 된 방법은 조금 더 순수하게 브라이트-휠러 과정만 관찰하기 위한 실험이다. 기가볼트 수준의 고에너지 전자 빔을 금박에 통과시켜서 고에너지 광자를 만들고 이를 텅 빈 공간(공동)에서 흑체 복사선(광자)과 충돌시켜 전자-양전자 쌍을 만든다. 연구팀에 따르면 1GeV의 전자 빔을 사용하고 공동의 온도가 100eV면 수십 개 이상의 전자-양전자 쌍을 만들 수 있다. 만약 이 실험이 성공하면 가장 단순한 형태로 빛과 빛을 충돌 시켜서 물질을 만든 사건이 될 것이다.



우주가 처음 시작할 때는 빛과 물질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했다. 이제 우리는 빛과 물질 사이의 경계를 조심스럽게 탐색 하고 있다. 빛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존재면서, 여전히 가장 신비로운 존재고 세상의 비밀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물리학자들의 연구를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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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김선희 | 글 이강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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