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비전에서 개발한 기술은 해외 유출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왜냐하면 삼성이 일본에서 배운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것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일본이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면 대체 삼성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한번 보고 싶습니다.”
‘퓨처비전 프로젝트’란 원천기술 없이 복제기술만으로 추격해 오는 한국과 대만을 따돌리기 위한 일본의 전략적 연구과제다. 이 과제의 책임자인 도호쿠대 오미 다다히로 교수는 자국의 소재를 수입해 조립에만 열중하는 한국에 대해“농담도 적당히 해야죠”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의 대학과 기업 등이 참여한‘퓨처비전 프로젝트’에서 나온 연구결과(설비부품과 재료 등)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
농담이 아닌 실력으로 겨룬다!
컴퓨터는 전세계 사람들이 사용하지만 컴퓨터를 생산해 돈을 벌기는 쉽지않다. 이미 거대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컴퓨터나 휴대전화, 전자기판 등에 쓰이는 소재를 개발한다면 세계 어느 곳도 공략할 수 있다. 막대한 시설투자 없이 독창적인 기술만으로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다. KAIST 신소재공학과 이혁모 교수도 신소재를 만드는‘연금술 전쟁’에 출사표를 던졌다.
“10여년 전만 해도 신소재 합금은 경험적인 방법으로 만들었어요. 연구자는 실험 전까지 어떤 예측도 하기 어려웠고 여러 금속을 섞어가며 원하는 특성을 보이는 합금을 찾을 때까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죠.”하지만 이 교수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서로 다른 원소로 조합된 합금의 원자 배열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미리 계산한다. 그만큼 합금의 특성을 파악하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도 크게 줄었다.
이 교수는“합금은‘상(phase)의 안정성’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합금을 이루는 재료의 원자도 가장 낮은 에너지 값을 갖는 평형 상태로 배열하려고 한다.
이처럼 신소재 합금을 개발하려면 원자나 분자간 결합상태를 연구하는 고체물리학이나 재료에 외부적 힘을 가할 때 발생하는 변형과 강도를 측정하는 재료역학, 상평형을 포함한 에너지의 흐름을 다루는 열 역학 등을 접목시킨‘전산재료과학’이 필수다.
나노크기로 골라 만드는 합금
이 교수팀이 만든 대표적인 신소재로 땜납(솔더, Solder)의 재료인 무연 솔더합금이 있다. 땜납은 다른 금속에 비해 낮은 온도(183℃)에서 녹고 전기전도도가 높아 거의 모든 전자 부품을 접합하는데 사용된다. 그러나 땜납의 주성분인 납(Pb)은 환경과 생명체에 치명적이다. 이에 이 교수팀은 값이 싼 주석의 비율을 높여 납이 없는 땜납 개발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백금(Pt)을 대체할 합금도 개발하고 있다.
휴대전화나 노트북의 배터리로 사용되는 연료전지에서 백금은 전기를 발생시키는 촉매역할을 한다. 그런데 백금은 연료전지 가격의 절반이나 차지한다. 따라서 새로운 합금을 개발하면 전자제품의 가격도 크게낮출 수 있다.
이 교수팀은 1~3nm(나노미터, 1nm=10-9m) 크기의 금속 입자에 백금 원자를 덧씌워 새로운 합금을 만들고 있다. 얼핏 도금처럼 보이지만 원자단위로 덧입히면 최외각 전자간에 인력이나 척력이 작용해 제3의 특성이 나타난다.
이 교수는“앞으로 2010년이면 연료전지용 촉매 합금을 새로 개발해 수소연료전지 자동차가 디젤자동차와 비슷한 가격으로 상용화 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