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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책을 쥐고 있는 자신의 오른손을 펴보자. 그리고 자를 이용해 두 번째 손가락인 검지와 네 번째 손가락인 약지의 길이를 mm 단위까지 정확하게 재보자. 길이는 손바닥과 손가락이 만나는 주름에서부터 손가락 끝까지 재는데, 주름이 두 개면 아래쪽 주름부터 재면 된다. 손바닥 사진을 찍거나, 복사기에 손바닥을 복사해서 재보면 결과가 더 정확하다.

이제 두 손가락 길이의 비율을 구해보자. 편의상 검지의 길이를 약지의 길이로 나눈 값을 ‘손가락 비율’이라 정의한다. 손가락 비율이 남자는 0.94, 여자는 0.96보다 작으면 검지에 비해 약지가 평균보다 긴 편이다. 기억해두자. 지금부터 이 값이 나에 대해 말해줄 것이다.



검지가 길수록 여성스럽다?

용인정신병원 이유상 박사팀은 지난해 8월부터 9월까지 한국인 대학생 140여 명을 대상으로 검지와 약지의 길이 비율(손가락 비율)을 조사했다. 남성은 평균 0.94, 여성은 평균 0.96으로 나타나 남성은 검지에 비해 약지가 긴 편이고, 여성은 검지에 비해 약지가 짧은 편이었다.

연구팀은 이들의 공감 성향과 우울 성향을 측정할 수 있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공감 성향이란 다정다감하고 남을 잘 이해하는 성향이다. 측정 결과 손가락 비율이 큰, 즉 검지가 긴 편인 여성은 검지가 짧은 여성보다 공감 성향이 높았다. 남성은 공감 성향에 뚜렷한 차이가 없었지만, 손가락 비율에 따라 우울 성향이 다르다는 결과가 나왔다. 약지에 비해 검지가 긴 남성은 검지가 짧은 남성보다 우울함을 느끼는 정도가 심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연구 결과를 지난 8월 한국심리학회에 발표했다. 손가락 비율은 공감 성향뿐만 아니라 공격 성향과도 관련 있다. 2005년 3월 캐나다 앨버타대 피터 허드 박사팀은 손가락 비율과 공격 성향에 대한 연구결과를 국제저널 ‘생물심리학’에 발표했다. 연구팀이 남녀 대학생 300명의 손가락 길이를 측정하고 인성과 행동특성을 검사한 결과, 검지에 비해 약지가 긴 남성일수록 성격이 공격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허드 박사는“이는 단순히 성격에만 관련이 있을 뿐 폭언과적대적인 행동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흥미롭게도 손가락 비율이 성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마크 브리드러브 교수팀은 샌프란시스코 게이 축제에참여한 720명을 대상으로 손가락 길이를 조사한 결과, 레즈비언들의 손가락은 검지에 비해 약지가 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단 게이의 손가락 비율은 일반 이성애자와 특별한 차이가 없었다. 이 연구결과는 2000년 ‘네이처’에 실렸다.



손가락으로 심장병 확률 안다

손가락 길이는 질병에 대한 정보도 알려준다. 영국 센트럴랭커셔대 심리학과 존 매닝 교수팀은 백인 남성 292명의 손가락 비율과 처음 심장발작을 일으킨 나이를 조사했다. 연구팀은 조사 결과, 약지에비해 검지가 긴 남자는 30대에서 50대 초반에 심장발작을 일으킬 확률이 높고, 검지가 짧은 남자는 50대 중반에서 80대에 심장발작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매닝 교수팀은 유방암에 걸린 여성 118명을 대상으로도 이와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검지가 긴 여성은 30대 초반에서 60대 초반에 유방암이 발병할 확률이 높고, 약지가 긴 여성은 50대 후반에서 80대에 발병 확률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말하면 약지에 비해 검지가 긴 사람은 젊을 때 유방암이나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매닝 교수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자신의 저서 ‘핑거북’에 소개했다.



지난해 1월 영국 노팅엄대 마이클 도허티 교수는 2049건의 정형외과 수술 사례를 바탕으로 관절염과 손가락 비율의 관계를 조사해 국제저널‘관절염과 류머티즘’에 발표했다. 도허티 교수는 “조사 결과 상대적으로 약지가 긴 사람이 약지가 짧은 사람보다 관절염에 걸릴 확률이 두 배 높았다”며 “특히 여성은 무릎에 관절염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약지가 길면 수학을 잘한다?

손가락은 그 사람의 수학적, 음악적 능력을 나타내기도 하고, 운동 신경이 얼마나 좋은지 보여주기도 한다. 손가락과 질병의 관계를 조사했던 매닝 교수는 2000년 국제저널 ‘진화와 인간행동’에 검지에 비해 약지가 긴 사람일수록 음악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연
구 결과도 발표했다. 그는 영국 심포니 오케스트라의남성 단원 54명을 대상으로 손가락 비율을 조사한 결과, 남성의 왼손 평균은 0.96, 오른손 평균은 0.92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영국 리버풀에 사는 일반 남성의 오른손과 왼손 평균이 모두 0.98인 것과 비교
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다.



2007년 ‘영국심리학저널’에는 손가락 비율이 어떤 과목에 소질이 있는지를 알려준다는 연구 결과도 실렸다. 영국 바스대 마크 브로스넌 교수는 7세 어린이 75명을 대상으로 손가락 길이를 재고 수학 능력과 언어 능력을 측정했다. 그 결과 검지에 비해 약지가 긴 어린이는 수학 능력이 뛰어나고, 상대적으로 약지가 짧은 어린이는 언어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손가락 비율이 여성의 운동 능력을 좌우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 런던 세인트토머스병원 유전역학과 팀 스펙터 교수가 2006년 ‘스포츠의학저널’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검지에 비해 약지가 긴 여성이 약지가 짧은 여성보다 축구나 수영, 테니스 같은 운동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스펙터 교수는 25~79세 쌍둥이 여성 607명의 손을 X선으로 촬영해 이 같은 사실을 알아냈다.

자궁 속 테스토스테론이 남긴 흔적

손가락 길이가 이처럼 사람의 성격, 질병, 그리고 여러 가지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정확한 메커니즘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학설은 손가락이 태내에서 성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는 주장이다. 즉 태아가 자궁 속에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에 많이 노출되면 약지가 길어지고, 적게 노출되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받아 검지가 길어진다.

손가락 비율과 동성애의 관계를 연구했던 브리드러브 교수는“레즈비언의약지가 긴 이유는 태아기 때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2000년 ‘네이처’에 발표했다.

‘약지가 긴 남성(테스토스테론 영향)은 공격 성향이 강하다’‘검지가 긴 여성(에스
트로겐 영향)은 언어 능력이 뛰어나다’ 등의 연구결과도 성호르몬 관련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손가락 비율과 인간 특성의 관계는 태아기때 받은 호르몬의 영향이 아니라 유전자에 의한 결과라는 주장도 나온다. 손가락 비율과 여성 운동 능력의 관계를 연구한 스펙터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조사 대상을 쌍둥이 여성으로 한정해 손가락 비율과운동 능력의 연관성을 살펴본 결과 70%는 유전적인요인에 의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손가락 비율을 연구한 이유상 박사는 “손가락 비율과 어떤 특성과의 관계는 통계적으로 봤을 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지나친 일반화만 시키지 않는다면 손가락 비율을 보는 것은 손금을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과학적이라는 얘기다.



손가락 비율과 인간 특성을 연관 지어 연구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2005년 검지에 비해 약지가 긴 사람일수록 주차 능력이 뛰어나다는 연구가 국제저널‘인텔리전스’에 실렸고, 같은 해 국제저널‘성격과 개인차이’에는 검지에 비해 약지가 긴 사람이 운동 경기
중 반칙을 많이 한다는 연구도 소개됐다.

손가락은 나에 대해 어디까지 말해줄 수 있을까. 언젠간 손가락만으로 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땐 왠지 남에게 선뜻 손을 보여주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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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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