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투명망토가 나왔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5/5966548365382ef04dbd80.jpg)
![투명망토의 원리](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5/5854433525382ef0e41993.jpg)
2001년 처음 나온 영화 ‘해리 포터’에서 주인공은 아버지가 물려준 투명망토를 이용해 수 차례 위기를 모면한다. 그저 둘러 쓰기만 하면 감쪽같이 몸이 보이지 않는 망토다. 당시만 해도 투명망토는 그저 영화나 상상 속에서 가능한 물건이었다. 물리학자들조차 투명망토가 광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물체의 가장자리를 따라 휘돌아 나가는 빛
빛은 물체와 만나면 반사되거나, 흡수되거나, 통과하는 게 전부다. 만일 어떤 물체를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려면 물체가 빛을 반사해서도, 흡수해서도 안 된다. 빛이 반사되면 우리 눈으로 들어와 물체가 보이게 되고, 빛이 흡수되면 주변보다 어두워져 물체가 금방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물체가 빛을 모두 통과시키면 어떨까.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 ‘투명인간’에는 화학적 방법으로 몸의 굴절률을 바꿔 안 보이게 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하지만 몸의 굴절률이 공기와 같아지면, 이는 몸이 아니라 공기와 같은 형태가 된다. 현실성이 없는 얘기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투명망토는 과연 어떻게 물체를 숨기는 걸까. 빛이 물체에 닿지 않고 지나가게 하면 가능하다. 그러려면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방법으로 빛을 굴절시켜야 한다. 바로 빛이 물체의 가장자리를 따라 지나가게 하는 것이다. 마치 시냇물이 돌을 만났을 때 휘돌아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눈에는 물체 뒤쪽에서 출발한 빛만 보이기 때문에 마치 물체가 사라진 것처럼 뒷배경만 보인다.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은 그림의 검은색 선처럼 빛을 굴절시킨다. 반면, 음(-)의 굴절률을 갖는 인공물질은 노란색 실선처럼 빛을 심하게 굴절시킨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5/4133064685382ef6dc43d7.jpg)
“투명망토 만들고 싶다” “정신 나간 게 틀림없군”
이런 방식으로 빛을 굴절시키는 물질은 자연에 없다. 다시 말해, 음(-)의 굴절률을 갖는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런 물체를 인공적으로 개발했다. 이런 식으로 자연에 없는 물질을 ‘메타물질’이라고 한다. ‘메타’는 희랍어로 ‘범위나 한계를 넘어서다’라는 뜻이다. 메타물질 중에 빛을 심하게 꺾어 음의 굴절률을 만드는 것이 있다. 과학자들이 투명망토에 특이한 굴절률 분포를 만들기 위해 메타물질을 이용하는 이유다.
이 메타물질을 가장 처음 개발한 사람은 영국 런던 임페리얼대 존 펜드리 교수였다. 1990년대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전투기 소재를 연구하던 펜드리 교수는, 물질의 내부 구조를 미세한 수준에서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빛에 대한 성질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였지만 내용이 너무 어려워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고, 이에 펜드리 교수는 영화 ‘해리 포터’에 비유했다. 해리포터가 마법학교가 있는 호그와트로 들어가는 ‘보이지 않는 플랫폼’이 메타물질로 돼 있을 것이라는 농담을 던진 것이다. 얼마 뒤, 메타물질에 관심이 있던 미국 듀크대 데이비드 스미스 교수가 펜드리 교수를 찾았다. 진짜로 투명명토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스미스 교수의 말에 펜드리 교수는 “자네, 정신 나간 게 틀림없군”이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그러나 2006년 5월, 스미스 교수와 펜드리 교수 연구팀은 진짜로 세계 최초의 투명망토를 개발했다.
![[투명망토의 역사] 최초의 투명망토는 해리포터의 망토와 거리가 멀었다. 사라지게 한 대상도 작은 구리관이었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5/10887883835382f0361d3a3.jpg)
최초의 투명망토는 10겹의 성벽 모양
최초의 투명망토는 해리 포터의 망토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라지게 한 대상도 사람이 아니라 실린더 모양에 너비 5cm, 높이 1cm의 작은 구리관이었다. 연구팀은 구리관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 관을 중심으로 주변에 10장의 메타물질 고리를 성벽처럼 겹겹이 세웠다. 이 성벽은 8.5GHz의 전자기파(빛)를 구리관 주변으로 휘돌아가게 해서 마치 구리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 이후로 투명망토는 하나 둘 진화했다. 2008년에는 좀 더 그럴듯한 금속 그물망 망토가 나왔고, 2010년에는 투명망토가 평면에서 입체로 발전했다. 최초의 투명망토는 물체가 깨끗하게 숨겨지지 않고 그림자가 약간 생겼는데, 시간이 갈수록 성능이 발전해 그림자도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개발된 투명망토에는 큰 한계가 있었다. 모두 고정된 형태였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휘거나 접으면 은폐 기능을 잃었다. 투명망토는 각 부분부분의 굴절률을 사전에 아주 정밀하게 계산해 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빛이 메타물질의 각 부분부분에서 원하는 대로 꺾여 휘돌아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김경식 연세대 기계공학과 교수가 바로 이런 한계를 최근 극복한 것이다. 세계 최초의 투명망토 개발자인 스미스 교수와 공동으로 연구했다는 사실도 화제가 됐다.
“투명망토에 이런 한계가 있다는 걸 안 순간, 이거다 싶었습니다. 그간 고체역학의 탄성방정식을 공부하면서 논문을 쓰려고 했었는데, 다 실패한 참이었거든요. 투명망토에 탄성방정식을 도입하면 영화에 나온 것처럼 접고 입을 수 있는 망토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김경식 연세대 기계공하고가 교수팀이 2012년 개발한 스마트 메타물질 투명망토.](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5/12695293405382f07975d77.jpg)
휘거나 접어도 굴절률 알아서 변하는 스폰지형 투명망토
김 교수는 처음엔 스폰지를 떠올렸다. 스폰지는 구멍이 많은 ‘다공성’ 물질이라, 손가락으로 누르면 바로 밑 부분의 밀도가 가장 높아진다. 일반적으로 재료의 밀도가 높아지면, 굴절률도 함께 높아진다.
“스폰지처럼 탄성 있는 재료로 투명망토를 만들면 접거나 휘어도 투명망토의 은폐 기능이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망토를 접으면 그 부분이 눌리면서 굴절률이 필요한 만큼 함께 올라가기 때문에 여전히 투명 기능이 살아 있는 거죠.”
그는 두께 0.5mm의 실리콘 고무로 만든 지름 10mm의 원통 여러 개를 세워서 이어 붙였다. 마치 구멍이 송송 뚫린 스폰지처럼 만든 것이다(위 사진). 10GHz 마이크로파로 새 망토를 실험한 결과, 성공이었다. 기존 투명망토는 조금이라도 망토 모양을 바꾸면 빛이 반사되고 산란됐는데, 김 교수의 스폰지 망토는 빛이 깔끔하게 휘돌았다.
그는 변형이 일어나면 알아서 굴절률을 조절한다는 의미로 ‘스마김경식트 메타물질’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었다. 연구 결과는 2012년 저널 네이처 자매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했다. 논문은 큰 화제가 됐고, 지난해 9월 프랑스에서 열린 제7회 메타물질학회에는 스마트 메타물질 특별세션이 마련됐다. 물론 김 교수가 초청됐다. 전세계 메타물질 연구자들 앞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우연히 얻은 새로운 아이디어
김 교수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성능을 업그레이드했다. 스폰지 형태의 투명망토는 어느 정도까지는 모양을 변형해도 은폐 기능을 유지했지만, 그 이상 넘어가면 기능을 잃었기 때문이다.
고심하던 그가 아이디어를 얻은 건 정말 우연한 기회였다. 2011년 1월 해외 어느 학회에 참석했다가 ‘음의 푸아송 비’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다. 푸아송 비란 재료에 힘이 작용해 변형될 때 가로와 세로 변형도 사이의 비율을 나타내는 것으로, ‘-(가로 변형도)/(세로 변형도)’로 정의한다. 가령 네모난 찰흙을 위아래로 누르면 세로는 줄어들고 가로는 늘어나기 때문에 푸아송 비는 보통 양수다. 재료가 음의 푸아송 비를 가지려면 가로 세로가 동시에 늘어나거나 줄어야 한다.
“이 개념에 주목한 이유는, 펜드리 교수가 증명한 투명망토의 광학적 조건을 음의 푸아송 비를 갖는 재료가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펜드리 교수가 광학적으로 증명한 이론을 고체역학적으로 다시 한번 증명하는 셈이었지요.”
그는 다리가 4개인 사다리 수백 개가 서로 발을 맞대고 가로 세로로 늘어선 꼴의 구조를 만들었다(왼쪽 그림 참조). 자연에서는 찾을 수 없는 구조다. 이를 양쪽에서 누르면 사방으로 다리를 벌리고 있던 사다리들이 다리를 모아 똑바로 서면서 키가 커지고, 재료 전체의 가로와 세로 길이가 동시에 줄어든다. 즉 푸아송 비가 음수가 되는 것이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처음에 만든 스폰지형 투명망토보다 더 많이 변형시켜도 굴절률이 적절하게 변하면서 투명망토의 은폐 기능을 유지했다. 김 교수는 이 연구 결과를 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 올해 2월 13일자에 발표했다. 최근 여러 언론에서 보도돼 화제가 된 그 논문이다.
![새로운 스마트 메타물질](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5/5959911505382f1530e22b.jpg)
다양한 파장에서도 물체를 투명하게 만들다
“사실 휘거나 접는다는 사실 외에 중요한 점이 따로 있어요. 2~18GHz 파장대의 빛에서 모두 물체를 감출 수 있는 ‘광대역 투명망토’라는 겁니다. 한마디로 ‘잘생긴’ 투명망토인 거죠.”
최초의 투명망토는 주파수가 8.5GHz인 마이크로파에서만 물체를 숨길 수 있었다. 주파수가 0.1GHz만 높아져도 은폐 기능을 잃었다. 가시광선을 예로 든다면, 특정 색깔의 빛만 숨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유리창처럼 ‘진짜’ 투명망토가 되려면 모든 파장, 즉 모든 색깔에서 물체를 사라지게 해야 한다.
이런 광대역 투명망토는 이전에도 있었다. 펜드리 교수가 이론적으로 제안한 투명망토를 공명주파수가 존재하는 안테나 대신, 공명 현상이 없는 유전체를 이용하면 구현 가능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다. 이를 미국의 스미스 교수팀이 2009년에 실제로 구현했고 최근 김 교수팀이 도입해 사용했다. 다시 말해 유전체만을 이용해, 접거나 구부릴 수 있는 투명망토를 만들어, 광대역파장에서 작동하도록 한 것이다. 장점만을 모은 셈이다. 또 김 교수팀의 스마트메타물질은 균일한 구조를 압축해 투명망토를 만들기 때문에 제작공정이 훨씬 쉬워졌다.
![새 투명망토는 접거나 휘어도 굴절률이 적절하게 변하면서 은폐 기능을 유지한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5/390865595382f17b612fd.jpg)
나노 메타물질 만들어야 진짜 투명망토 될 것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우리 눈에서 물체를 감춰버리는 투명망토를 만들려면 우선 파장이 마이크로파보다 훨씬 짧은 가시광선 영역(380~770nm)에서 물체를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2011년에는 영국 버밍엄대 슈앙 장 교수팀과 미국 MIT 조지 바바스타티스 교수팀이 거의 동시에 방해석을 이용해 가시광선에서 mm 크기의 물체를 감추는 데 성공했다. 방해석은 빛의 방향에 따라 굴절률이 다른 ‘복굴절’ 물질이기 때문에, 결정축 방향만 잘 정해주면 투명망토에 필요한 굴절률 분포를 만들 수 있다.
가시광선 영역에서 투명망토가 가능하려면, 메타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 구조의 너비가 빛의 파장의 4분의 1 수준으로 작아져야 한다. 물질이 이 정도로 짧아야 빛과 상호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투명망토도 파장이 약 3cm인 마이크로파에서 투명하게 보이기 위해 금속물질의 너비가 0.75cm 정도로 가늘어야 했다. 가시광선은 어떨까. 만약 파장 500nm의 초록빛에서 물체를 투명하게 숨기려면, 메타물질 단위 구조의 너비는 125nm 정도여야 한다. 이 정도로 작은 나노 구조를 연결해 사람만큼 큰 망토를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완전히 투명하지 않은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메타물질은 보통 빛을 심하게 분산시킨다. 굴절률이 다소 높아야 빛이 원하는 대로 굴절돼 휘돌아 나가기 쉬운데, 재료의 굴절률이 유리의 굴절률(1.5)보다 크면 가시광선을 통과시켰을 때 빛이 심하게 산란되는 것이다. 이번에 김 교수가 개발한 메타물질은 굴절률이 3 이상인 유전체로 만들어졌다. 그는 “정말 유리처럼 투명하게 보이려면 굴절률이 최소한 2 이하인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연 해리 포터의 투명망토를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층층이 쌓인 난제를 듣고 보니 진짜 투명망토는 백일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김 교수의 다짐은 달랐다.
“이번에 개발된 재료는 투명망토뿐만 아니라 광학적으로도 없던 소재라고 할 수 있어요.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연구팀은 앞으로도 호기심을 갖고 연구를 계속해 나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