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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결핵왕국? 교도소 결핵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이유

의사도 모르는 의학이야기 ➌



서울에 사는 회사원 김 씨는 최근 한 달가량 기침이 잦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먼지 때문이거나 스트레스 때문이겠거니 했죠. 그런데 어느 날 기침에 피가 섞여 나왔어요. 깜짝 놀라 X선 검사를 했더니 병원에서는“초기 결핵이어서 약만 꾸준히 복용하면 된다”고 했어요. 치료가 된다니 다행이기는 하지만, 김 씨는 여전히 당혹스러웠어요.“결핵이라니, 못 살던 시절에나 있던 병에 도대체 내가 왜 걸린 거지?” 결핵이 한국인을 위협하는 무서운 병이라고 하면, 대부분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느냐”고 하죠. 놀라지 마세요. 치사율 40%의 무시무시한 전염병인 결핵은 절대로 ‘후진국 병’이 아니랍니다.

우리나라는 한 때 ‘결핵 왕국’이라고 불릴 만큼 결핵 환자가 많았어요. 1965년 대한결핵협회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결핵 환자는 인구의 5.1%인 124만 명에 이르렀어요. 비위생적인 환경과 영양부족 때문이었죠. 오죽하면 ‘망국(亡國)병’이라는 별명도 있었겠어요. 1960년대부터 국가는 대대적인 결핵 퇴치 노력을 벌였죠. 결핵관리 사업과 더불어 경제가 발전하고 생활여건이 개선되면서 결핵 환자는 점차 줄었어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2012년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10년간 결핵으로 사망한 사람이 모두 2만7812명이라고 발표했어요. 하루 평균 7.6명이 결핵으로 사망한 거죠. 심지어 새로운 결핵 환자는 3만9557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8.6%나 증가했어요. 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 결핵 발병률과 사망률이 가장 높은 수준이에요. 더 이상 비위생적인 환경이나 영양 부족도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입시스트레스와 운동부족에 쓰러지는 학생들

놀라운 사실은 병에 걸린 사람 중에 젊은 학생이 많다는 점이에요. 2012년에는 경기도의 한 외고에서 4명이 결핵으로 진단되고, 128명이 잠복 감염으로 확인되었어요. 2013년에는 카이스트 학생 중 11명이 결핵 환자이고 92명은 잠복 감염자로 밝혀졌죠. 이 외에도 전국 각 지역의 중·고등학교와 학원가에 결핵 환자로 밝혀진 학생들이 적지 않아요.

도대체 이유가 뭘까요? 바로 스트레스나 불규칙한 생활, 다이어트, 과로로 인한 면역력 저하랍니다. 즉 요즘 학생들은 입시 스트레스와 운동 부족으로 체력이 떨어져 있고(면역력도 떨어져 있겠죠), 학교와 PC방 등 폐쇄된 실내 공간에서 주로 생활하면서 결핵에 쉽게 감염되고 있어요. 기숙사 생활을 하면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결핵균에 노출될 가능성이 아무래도 더 많고요.

빽빽한 지하철로 출퇴근 하는 회사원들도 늘 결핵균에 노출돼 있다고 봐야 되요. 갑갑한 사무실 안에서 이뤄지는 잦은 야근과 스트레스, 운동 부족이 결합되면 결핵에 걸릴 확률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안 하느니만 못한 결핵 치료

한국의 이야기는 이쯤 하고, 이제 다른 사회로 시선을 잠시 돌려볼까요?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이자 인류학자인 폴 파머는 ‘권력의 병리학’에서 세계의 결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제적·윤리적 원칙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그 근거로 파머는 러시아의 교도소에 수감된 결핵 환자들의 사례를 들고 있죠.

1991년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되면서, 러시아는 어마어마한 사회적, 경제적 소용돌이를 경험했어요. 범죄 사건은 나날이 늘어만 갔고요. 시베리아의 한 도시에서 체포된 세르게이도 바로 그러한 혼란 속에 살아가는 러시아인이었어요. 그는 위조수표 사기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워낙 판결해야 할 사건이 많았기 때문에, 세르게이는 재판까지 1년 이상 구치소에서 기다려야 했어요. 습기가 가득한 구치소에는 세르게이처럼 재판을 기다리는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었어요. 음식과 위생 상태는 물론 엉망이었죠. 언젠가부터 세르게이는 체중이 줄면서 기침을 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제가 결핵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 병에 걸려 있었으니까요.”

세르게이는 재판이 끝나자마자 결핵치료소로 옮겨졌고 그 곳에서 1년간 치료를 받았어요. 치료를 마치자 세르게이는 몸이 나아졌다고 느꼈어요. 그러나 3년 후, 석방될 날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 세르게이는 결핵이 재발했다는 것을 알았지요. 심지어 X선 결과는 그의 상태가 이전보다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드러냈어요. 세르게이의 오른쪽 폐에 있는 결핵 공동은 점점 커지고 있었어요. 재발한 결핵균이 이미 오른쪽 폐의 위쪽 절반을 마치 스위스 치즈처럼 만들어 놓고 있었죠. 왼쪽 폐까지 병이 퍼지고 있었고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와 맞물린 정치 경제적 혼란은 의약품의 고갈, 교도관 임금 미지급, 그리고 결핵 관리 체계의 급격한 약화를 가져 왔어요. 세르게이와 다른 수감자들은 결핵 치료에 필수적인 ‘규칙적이고 장기적인 치료’를 받을 수 없었죠. 즉 치료를 받긴 했지만 결핵균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고, 약을 불규칙하게 받으면서 오히려 결핵균은 약에 대한 내성을 키우고 말았어요.

파머는 단호하게 “러시아의 결핵 창궐에는 정치경제적인 불평등의 문제가 놓여 있다”고 말해요. 세르게이 같은 수감자들은 가난한 국가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또는 범죄자라는 이유로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기가 힘들죠. 국제보건 전문가들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러시아의 결핵에 대해 여전히 값싼 일차 치료제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다제내성 결핵 환자가 생겨나는 것을 방치하거나 심지어 조장할 뿐이죠.



 


왜 비싼 돈 들여 범죄자를 치료해줘야 되지?

교도소에 수감된 범죄자들에게 일반인도 이용하기 쉽지 않은 비싼 약을 공급한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 불합리한 결정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어요. 환자의 몸 안에 있는 다제내성 결핵균이 교도소의 다른 사람에게로 전염된다는 사실이에요. 더군다나 세르게이처럼 곧 형기를 마칠 수감자는 몸 안에 다제내성 결핵균을 지닌 채 집으로 돌아가죠. 이들이 시베리아의 거친 겨울을 가족들과 작은 오두막에 갇혀 보내는 동안, 죄 없는 가족들은 결핵에 무방비로 노출돼요.




그래도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요? 천만에요. 세르게이 몸 안에 있던 결핵균이 바로 나와 내 가족을 해칠 수도 있어요. 전염병에 이미 국경의 의미는 사라졌어요. 인천공항을 통해 하루에도 10만여 명이 출입국하고 있고, 결핵균은 검색대 사이로 유유히 빠져나 동반자가고 있지요. 실제로 전세계 대도시는 평균적으로 결핵 환자 비율이 높은 편이에요.






결핵이 더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교도소 내의 다제내성 결핵 환자를 치료해야 해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답니다. 다제내성 결핵 치료제는 이미 특허 기간이 끝났는데도 1차 치료제보다 심지어 백 배 가량 비싸고, 또 범죄자 치료에 돈을 쓰는 것에 대해서 여전히 눈살 찌푸리는 사회의 시선이 있거든요.

파머는 가난한 환자들의 진료 및 건강권 신장을 추구해 온 비영리민간단체인 ‘건강의 동반자’에서 어떻게 페루에서 다제내성 결핵을 해결하는 데 성공했는가를 보여줍니다.

페루의 슬럼가에는 1차 치료제로 치료하지 못한 다제내성 결핵 환자 수백 명이 있었어요. ‘건강의 동반자’는 2차 치료제로 이들을 치료하기로 결정했어요. 주변 전문가들은 엄청나게 반대했지요. 2차 치료제는 장기간 치료해야 하는데, 비싼 약품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의아해했죠. 건강의 동반자는 미국의 개인 기부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많은 사람들의 우려가 있었지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던 페루의 다제내성 결핵 환자들은 병세가 극적으로 호전되었어요. 치료받은 그들은 더 이상 결핵균을 옮기지 않았죠.

이런 걸 보면 우리가 저개발국가의 결핵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생각해보게 돼요. 우리가 알고 있는 경제적·윤리적 원칙은 과연 결핵 같은 전염병 문제를 다루는 데 합당한 걸까요? 그리고 2차 치료제는 여전히 그토록 비싸야만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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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정 | 에디터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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