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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세계와 큰 세계를 잇는 다리, 볼츠만 상수 KB





공기가 든 주사기의 한쪽 끝을 손가락으로 막고 피스톤을 밀어주면 공기가 새어나오지 않아도 주사기 속 공기의 부피(V)가 줄어든다. 이처럼 기체의 부피는 압력(P)이 커지면 줄어든다. 바로 보일의 법칙(P∝1/V)이다. 공기주머니에 불을 지피면, 온도(T)가 올라갈수록 부피도 늘어난다. 샤를의 법칙(V∝T) 이다. 두 법칙을 함께 적으면 PV=aT(a는 비례상수)라는 식이 나온다. 기체의 양이 많아지면 당연히 부피도 늘어나, 식의 왼쪽값이 커진다. 등식이 성립하려면 식의 오른쪽 값도 커져야 한다. 온도는 물질의 양에 무관하다. 사람의 몸무게가 두 배가 된다고 해서 체온이 두배가 되지는 않는다. 즉 비례상수가 기체의 양에 비례해 늘어나야 한다. 물리학자는 a를 nR로 쓰고, 공식은 PV=nRT 로 적는다. 이를 ‘이상기체의 상태방정식’이라 부른다. 여기서 R은 기체상수이고 n은 기체의 양을 나타내는 단위인 몰(mol)이다. 몰은 물질의 양을 나타내는 국제표준단위(SI)다.

1805년 영국의 화학자 존 달톤은 원소의 원자량을 수소 원자량의 정수배 꼴로 적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예를 들어 수소와 산소를 남김없이 반응시켜 모두 물로 만드는 경우, 이 실험에서 쓰인 산소의 질량과 만들어진 물의 질량이 수소 질량의 정수배(각각 8배, 9배)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달톤의 발견으로 수소원자를 기준으로 물질의 양을 정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에 따라 수소원자 1g에 해당하는 물질의 양을 1몰이라 부르게 됐다. 이후 한동안 편리한 측정을 위해 산소원자 16g을 기준으로 1몰을 정의했다. 1971년 몰이 국제표준단위계의 일곱번째 식구가 될 때는 탄소 동위원소 원자(12C) 12g을 새로운 기준으로 삼았다.




1811년 이탈리아의 화학자 아메데오 아보가드로는  놀랍고도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산소든 질소든 기체의 종류와 상관없이, 온도와 압력이 같으면 기체의 부피는 원자 혹은 분자의 수에만 비례한다는 주장이었다. 아보가드로에 따르면, 이상기체의 상태방정식에서 기체상수 값은 기체의 종류와는 상관없이 일정한 값을 갖는다. 따라서 압력과 부피 그리고 온도만 알면 어떤 기체라도 정확한 양을 계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압력과 온도에서 수소기체(2g), 산소기체(32g) 그리고 이산화탄소기체(44g)의 질량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하나같이 양은 1몰의 분자에 해당하며 똑같은 부피를 차지한다. 아보가드로 시대의 과학자들은 기체를 구성하는 원자, 분자가 정말로 존재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시대를 앞서간 아보가드로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시간이 한참 지나 원자와 분자가 실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1909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장 바티스타 페린은 1몰을 이루는 분자 혹은 원자의 개수를 아보가드로수(NA)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현재 국제표준 단위계에서는 아보가드로수를 정확한 값(6.02214X × 1023)으로 약속해 놓았다. 마지막 유효숫자 X는 앞으로 더 정확한 실험을 통해 남겨두었다는 뜻이다. 머지않아 과학자들이 정확한 X를 구한다면 아보가드로수는 빛의 속력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상수로 거듭날 것이다.



루드비히 볼츠만은 통계역학을 창시한 물리학자다. 통계역학은 입자 하나하나의 미시적인 정보로부터 온도나 압력같이 거시적인 열역학 양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볼츠만은 이상기체의 상태방정식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도 밝혀줬다. 기체상수가 볼츠만상수(kB)와 아보가드로수(NA)를 곱한 값(R=NAkB)과 같다는 것도 밝혀냈다.

볼츠만의 가장 놀라운 업적은 아마도 거시적인 양인 엔트로피(S)가 미시적인 정보(W)와 어떤 관계인지를 나타낸 식 S=kBlogW일 것이다. 볼츠만의 묘비에도 이 식이 새겨져 있을 정도다. 이 식의 오른쪽에 등장하는 W는 주어진 거시적인 상태에서 시스템이 가질수 있는 모든 미시적인 상태의 개수를 의미한다. 볼츠만의 도움으로 물리학자들은 “닫힌 시스템에서 엔트로피는 늘 증가한다”는 열역학 두 번째 법칙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미시적인 물리법칙들은 뉴턴의 운동방정식처럼 과거와 미래를 같은 방식으로 설명한다. 물리학자들은 이를 ‘시간 되짚음 대칭성’이라 부른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시간이 흐르는 것을 본다. 우리는 산산조각난 유리조각이 저절로 다시 모여 예쁜 유리컵 모양으로 돌아가는 일을 본 적이 없다. 즉 개별적으로는 시간 되짚음 대칭성이 있는 물리법칙을 따르는 미시적인 입자들이라도, 여럿이 함께 모여 거시적인 물체를 이루면 마치 시간 되짚음 대칭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볼츠만의 엔트로피가 바로 이 패러독스를 해결해냈다. S=kBlogW 에 따르면, 거시적인 세계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건 다름 아니라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큰사건(즉, W가 큰 사건)은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깨진 유리조각이 흩어져 있는 상태의 W가, 정확히 같은 유리조각들이 예쁘게 모여 컵을 이루고 있는 상태의 W보다 매우 크기 때문에 거시적인 세계에서는 컵이 깨지는 방향의 변화만 관찰된다. 엔로피 증가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열역학 제2 법칙은 결국 “일어날 가능성이 큰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로 바꿔 부를 수 있다. 어찌보면 당연해 보이는 이 평범한 문장이 볼츠만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놀라운 선물이다.

볼츠만의 엔트로피는 1900년대 초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과학철학계는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른스트 마흐를 비롯한 논리실증주의자가 주류를 이뤘다. 논리실증주의의 입장에서 어떤 식이 과학적으로 의미가 있으려면 식의 왼쪽과 오른쪽이 모두 측정할 수 있는 양이어야 했다. 뉴턴의 운동법칙처럼 말이다. 그런데 볼츠만의 엔트로피식은 이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다. 엔트로피는 들어오고 나가는 열의 양과 온도를 이용해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W는 실험을 통해 직접 측정할 수 있는 양이 아니다. 때문에 볼츠만은 논리실증주의자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볼츠만의 기체 분자 운동론도 당시 과학계에선 거의 인정받지 못했다. 원자나 분자가 물리적인 실체가 아니라는 의견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물리학의 역사는 볼츠만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대한민국내에서 처음 통계물리학 연구를 시작한 학자는 조순탁 교수다. 과천에 있는 국립과학관에는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이 있는데, 그 곳에 이름을 올린 순수 이론물리학자는 아직까지 이휘소 박사와 조교수 딱 두 명이다. 조 교수의 지도교수는 네덜란드 태생의 미국 물리학자 게오르그 울렌벡이고, 울렌백의 지도교수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네덜란드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다. 에렌페스트의 지도교수가 바로 볼츠만이다. 볼츠만의 학문적 전통을 직접 이어받은 대한민국에서, 통계물리학계의 노벨상, 볼츠만 메달을 받는 통계물리학자가 배출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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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 에디터

    이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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