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죽어도 슬퍼하지 않는 엄마](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4/03/11452485685333eb9d142de.jpg)
“임신에서 출산까지 꼼꼼해진 여성지원 정책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자!”
보건복지부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한 배너의 문구예요. 작년 출산율이 1.19명으로 OECD 국가 중 꼴찌였던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를 드러내듯, 임신·출산기 여성 지원 정책은 점차 확대되고 있어요. 난임부부의 인공수정 및 체외수정 시술비 지원, 출산장려금, 아이돌봄 서비스 지원, 다자녀 세제지원 등 정말 관련 정책의 수는 셀 수가 없을 정도예요.
이렇게 임신과 출산을 독려하는 분위기인데도 여성들은 아이 낳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요. 경기 불황으로 결혼조차도 쉽지 않고, 결혼을 하더라도 일 년이 멀다하고 오르는 집세와 직장의 구조조정 위협 때문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더 벌지 않으면 언제 길거리에 나 앉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만연하죠.
언뜻 보면 출산이란 남녀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면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거치는 일종의 생물학적 과정처럼 생각돼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그냥 생기니까 낳았던 시기가 오랫동안 있었죠. 그러나 오늘날의 출산은 의료기술의 도움을 받아 얼마든지 그 과정을 억제하거나 촉진할 수 있고, 또한 국가적 통제와 관리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매우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해요. 출산은 단순히 가임기 여성 혹은 결혼한 부부 간의 문제를 넘어, 각 사회의 경제적 상황, 국가적 필요, 의료기술의 발전 정도, 그리고 그 사회의 여성이 처한 삶의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그 성격이 달라지는 일종의 문화랍니다.
‘죽을 운명’을 타고난 아기
미국 UC 버클리 인류학과 낸시 쉬퍼 휴즈 교수가 쓴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죽음’은 출산과 모성에 대한 가장 충격적인 보고서 중 하나예요. 저자는 1965년부터 1980년대까지 브라질 북동쪽의 빈민가에 거주하면서, 이곳에서 갓태어난 아이들이 엄마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숱하게 죽어나가는 모습을 목격하지요.
5000명 정도 사는 지역에서 해마다 무려 350명의 아이들이 죽어가는 브라질의 빈민가. 이곳에서 여성들은 평균 9.5번의 임신을 하지만, 절반 이상은 유산이 되거나 생후1년 이내에 아기가 죽고 말죠. 마을 사람들은 이처럼 죽는 아기들이 스스로 살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며 냉담하게 반응해요.
아이는 모유를 먹지도 못한 채 방 안에 홀로 버려져 있다가 허기에 지쳐 쓰러지기도 하고, 간혹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입에 거품을 물거나 심지어 집안 구석에 엎어진 채 죽을 때만을 기다리는듯 방치되죠. 아이가 죽어도 엄마들은 울지 않아요. 이웃이나 지역 공무원, 심지어 의사들도 ‘죽을 운명’이 지워진 아이들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아무런 손을 쓰지 않죠.
아기들의 계속되는 죽음과 엄마의 차가운 무관심. 이런 현실뒤에는 브라질의 빈민가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특수 상황이 놓여 있어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곳에서, 남녀 간의 결혼은 신중한 고민 없이 쉽게 이뤄지고 쉽게 깨지며, 대부분의 여성은 아이를 낳고는 곧 미혼모가 되어 버리고 말아요. 남편이 떠나버린 후, 하루하루 자신과 아이의 생계를 위해 이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주변 잘 사는 집의 하녀로 일하거나 근처 농장에서 날품팔이 하는 것뿐이죠.
이런 상황에서 브라질의 엄마들은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혼자 버려져 있어도 생존하는 아기와 허약한 아기를 구분해서 양육할 대상을 선택하곤 하죠. 또 닥친 문제들이 이미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상황에서, 여성들은 아기가 자신의 무책임 때문에 죽었다기보다는 ‘스스로 원해서’ 죽었다고 믿으려고 합니다.
의사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요? 시에서 고용한 의사들도 영양결핍으로 배고파 우는 아기들에게 기껏해야 비타민이나 건네줄 뿐이에요. 심지어 더 이상 시끄럽게 울지 못하도록 진정제나 수면제를 처방하기도 해요. 브라질 정부는 아무런 힘도 돈도 없는 빈민가 주민들에게 발생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요. 누군가 아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신고하러 와도 이유조차 묻지 않아요. 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런 경제적 궁핍과 사회적인 무관심 속에서는 힘을 발휘하기 힘들지요.
![인류학자인 낸시 쉬퍼 휴즈 교수(왼쪽)는 브라질 빈민가에 거주하며 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작성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출산과 육아방식이 정말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일까?](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4/03/10271283475333eba6101c1.jpg)
출산이야말로 문화!
출산 방식은 문화의 다양성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예요.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의 도움으로 아이를 낳는 현대의 출산 방식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인류 역사상 아주 특이한 예로 지난 반세기의 일에 불과해요. 수천 년간 산모는 자신의 집이나 친정집, 외양간이나 움막, 마을 안팎에서 아이를 낳아왔지요. 병원은 위생적인 면에서는 완벽할지언정 정서적으로 결코 만족스런 장소는 아니에요. 산모는 사회적 소통이 지극히 제한된 상태에서 맘 편한 가족보다는 담당 의사나 간호사의 말을 따라야 하거든요.
병상에 반듯하게 누워서 아기를 낳는 분만 방식도 인간의 신체구조상 알맞은 자세는 아니에요.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이 자세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 의사가 분만실에 들어오면서부터랍니다. 산모가 누워있으면 의사가 검사하고 처치하기에 편리하거든요.
고대 이집트인의 출산을 묘사한 이집트 콤옴보의 세베크 신전 벽화에는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로 아이를 낳는 여성이 그려져 있어요. 과거 아메리카 대륙이나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는 산모들이 웅크린 자세로 아기를 낳았지요.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 지방에서는 출산용으로 특별히 만든 구멍 뚫린 의자를 사용했고, 에스키모 여자들은 다른 여자의 무릎 위에 앉거나 무릎을 꿇고 앉아 출산했답니다. 집의 대들보나 기둥을 잡고 서서 아기를 낳는 곳도 있었어요.
![왜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가 많이 죽을까](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4/03/12461153235333ebb16de39.jpg)
산모 혼자 아기 낳는 ‘!쿵족’
아프리카 남서쪽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쿵’ 부족은 산모가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아이를 낳아요. 인류학자 마저리 쇼스탁이 !쿵족 여성의 출산과 양육 이야기를 기록한 ‘니사’는 출산과 양육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책이에요. !쿵족 여성들은 어떠한 의료시설이나 산파조차도 없이 되도록 혼자서 아이를 낳으려고 해요. 혼자 낳다가 난산을 겪거나 사망할 위험도 있지만, !쿵족은 혼자 아이를 낳아야 감염의 위험이 줄어든다고 생각하지요.
초산일 경우에는 간혹 친정어머니나 가까운 여자 친척이 옆에 있어주기도 해요. 그렇지만 !쿵족 여성들은 다른 사람들이 옆에 있다고 해도 진통과 분만 과정의 책임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믿어요. 아이를 순조롭게 낳는다면, 그것은 산모가 출산 과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죠. 반면 아기를 낳는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아기를 받아들이려는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이에요. !쿵족 여성은 결코 출산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데, 만일 산모가 불안해하면 신이 산모가 아이를 원치 않는다고 생각하고 아기를 ‘영계로 돌려보낼’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이때 아기의 어머니도 함께 불려갈 수도 있지요.
출산이 임박하면 !쿵족 여성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마을에서 몇 백 미터 걸어나와 나뭇잎으로 자리를 깔고 그 위에서 아이를 낳아요. 출산 장소는 대부분 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마을 사람들이 들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죠. 산모의 여자 친척과 친구들은 이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와요. 달려와서는 탯줄을 끊고 아기를 씻기는 산후 조치를 돕죠. 그리고 여자들은 아기를 대신 안아들고 산모와 함께 마을로 돌아와요. 경험이 많고 의지가 결연한 산모는 마지막 단계까지도 혼자 해내죠.
![프랑스 사회학자인 카트린 롤레가 쓴 '출산과 육아의 풍속사'에는 산모가 안거나 선 채로 아기를 낳는 다양한 출산 방식이 소개돼 있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4/03/19586816525333ebc3c23d1.jpg)
![모성이나 출산 방식뿐 아니라 출산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도 문화적 현상이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4/03/10986539995333ebcbaec25.jpg)
출산위험이 줄어도 아기 낳지 않는 사회
오늘날 우리나라 엄마들은 출산을 반드시 행복한 일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 듯해요. 의료 기술의 발달과 정부의 지원으로 출산 자체가 가져다주는 위험과 어려움은 줄었지만, 출산에 뒤따르는 양육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지요.
브라질 빈민가에서 일어나는 출산은 어떤가요? 이곳의 출산은 더 이상 생각할 여지도 없이 엄마에게도 아기에게도 너무나 고통스러운 경험일 따름이에요. 엄마들은 새로운 생명을 맞이할 준비가 조금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하고, 태어난 아기들은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랑과 돌봄을 전혀 받지 못하고 아프거나 죽어가니까요. !쿵족의 출산은 달라요. !쿵족은 엄마와 아기가 건강하기만 하다면 무척 행복한 사회예요. 아이는 태어나서 평균 44개월 동안 엄마의 관심을 독점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삶에 기쁨을 주는 아주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죠. 사회적으로 자녀를 많이 두는 것을 이상으로 여기고, 갓난아기를 돌보는 일은 부부의 가장 중요한 일이 되니까요. 그러나 현대적 의료기술의 부족으로 아기들이 생후 1년 안에 무려 20%가 사망하는 이들의 출산을 우리는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