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모범생 스트레스 이겨낸 통신 전문가 (최성현 서울대학교 교수)

최성현 서울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관악 캠퍼스. 신공학관이 있는 곳을 가다 보면 다양한 분야의 연구동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그 중에서도 뉴미디어통신연구소는 어찌 보면 우리가 가장 자주 접하고 있는 휴대전화와 통신 단말기, 와이파이(Wi-Fi) 등 네트워크를 연구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차세대 네트워크 분야 연구 리더를 양성하고 있는 최성현 교수를 만났다. 그는 과학고와 KAIST를 나와 현재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남들이 보기엔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 같지만 자신은 운이 좋은 편이라며 겸손해 한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좋아하는 분야가 생기고 그렇게 결정된 분야에서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공을 들이다

최 교수가 통신 분야를 연구하게 된 데는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 KAIST 재학 시절 3학년 때 통신을 전공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전부다. 3학년 때 전공과 관련된 심화 과목들을 듣게 되는데 통신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도교수의 허락을 받아 3학년부터 지도교수 연구실을 출입하면서 꿈을 키워갔다. “돌이켜 보면 전공을 선택하는 게 쉽지는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다양한 전공분야를 듣고 저한테 딱 맞다고 생각한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최 교수가 있는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만 해도 연구 분야가 매우 다양하다. 통신, 반도체, 제어, 컴퓨터, 물리전자, 전력, 바이오 등 6~7개 분야로 나누어진다. 개별 분야가 개성이 강하지만 모두 전기전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제어는 로보틱스와 관련된다. 전기와 컴퓨터도 또다른 분야다. 네트워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넓게 지식을 섭렵하면 좋은 게 많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이렇게 다양한 전공 분야지만 한사람이 다양한 분야를 이해하고 있으면 좋습니다. 특정 분야에서 자신의 전문성은 갖고 있으면서 넓은 영역에서 이해도가 높은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최 교수는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1학년 때는 전기전자를 전공할 생각이 없었다. 과학고에 다닐 때도 무엇을 목표로 둬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다만 아버지의 조언은 있었다. “아버지가 앞으로는 재료, 신소재의 시대가 올 거라는 얘기를 듣고 대학도 그런 쪽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전기전자를 전공하게 된 것은 저한테 맞는 분야는 재료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자연과학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전자기기를 좋아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곳을 고민하는 경우가 많지만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핵심입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려면 다양한 곳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주관이 없으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찾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분야를 찾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심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게 최 교수의 지론이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다 보면 자연스럽게 더 관심이 가는 분야가 생기고 그게 바로 자신이 좋아할 일이라는 것이다.


모범생, 통신 정책 선두 주자가 되다

최 교수는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게 일이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연구 관련해서 기업들하고도 일을 많이 하고 연구과제도 진행하고 자문 활동, 학회 활동도 한다. 학회 활동으로는 대표적으로 한국통신학회원을 꼽을 수 있다. “교수라는 직업의 특성상 해야 되는 일이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학교 내에서는 교육과 연구가 해야 하는 일이고, 후자인 외부 활동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본인의 선호도나 관심, 성향에 따라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정부의 통신 정책을 만들 때 기술적 자문위원 성격으로 일을 합니다. 정부가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데 계획을 세워나가고 자문하는 역할입니다. 기업과 공동연구도 합니다. 무선 통신 네트워크와 관련된 기업들 같은 경우는 단말기를 만드는 삼성, LG와도 일을 하고 통신사업자와도 일을 합니다.”

현재 최 교수는 삼성전자, LG전자, LG유플러스와도 공동으로 진행하는 일이 많다. 차세대 와이파이나 LTE, LTE-A 등 5세대 통신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과학고 출신인 최 교수는 고등학교 시절이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다고 말한다. 능력이나 학업 성과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과학고에 다닌 사람이 능력에 대해 고민했다는 게 얼핏 이해가 되진 않지만 과학고 학생들은 그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다. “저는 늘 모범생이었습니다. 다만 어릴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여행을 많이 했습니다. 반장도 많이 했고 모범생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 고등학교 시절엔 공부에 대해서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생각했던 만큼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았던 것이죠.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나 좌절이 없지 않았습니다. 과학고 특성상 일단 잘하는 아이들을 모아놓는 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좌절하고 압박을 느끼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그런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최 교수는 서울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자신의 좌절 경험을 잘 얘기하지 않았다. 서울대에 입학한 것만으로도 능력이 검증된 학생들에게 최 교수 자신의 경험담이 와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경험담을 학생들에게 풀어놓기 시작하자 많은 학생들이 공감했다고 한다. “서울대 와서도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도 많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고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목표치가 매우 높은 법입니다. 그래서 받는 스트레스가 훨씬 더 큰 법입니다.” 최 교수가 이른바 ‘모범생 스트레스’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어렴풋이 돌이켜보면 친구들의 힘이 컸다고 말한다. 자신과 비슷한 압박을 느낀 친구들과 함께 스트레스를 풀고 압박감을 이겨냈다는 것이다.
 
실패한 경험도 인생에서는 ‘약’이다

모범생이었던 최 교수가 모범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뭐든지 도전해 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없어서 도전하지 않고, 실패할까봐 도전하지 않는데 88학번인 저도 도전해서 실패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하면 잘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패할까봐 안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도전하고 시도하고 하기 싫어도 하고 익숙해지면 자신감도 생기는 법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히 쉽지 않은 일이긴 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제가 갖고 있는 자신감이 자신 있어서라기보다는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최 교수는 기독교 신자로 교회 활동을 많이 했다. 성가대를 하면서는 음악에 관심을 가졌고 미술에도 조예가 있다. 여러 경험을 하면서 인생을 즐길 줄 안다는 게 최 교수의 가장 큰 장점이다. 즐길 줄 모르는 것과 즐길 줄 아는 것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한 활동은 자기 삶에 대해 느끼는 자신감의 밑바탕이 됐다.

최 교수처럼 서울대 교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한 얘기겠지만 공부를 잘해야 한다. 공부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 교수의 답은 바로 호기심이 많아야 된다는 것이다. “결국 호기심이 많고 자기가 좋아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하라는 것, 교수가 하라는 것, 던져진 것만 하면 발전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왕성한 호기심이라는 게 타고 나는 것인지 아니면 길러지는 것인지는 답을 찾기는 어렵다. 성격적으로 호기심이 없는 사람은 노력해도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 것인가 하는 질문도 생긴다.

또 한편으로는 자라는 환경도 매우 중요하다는 게 최 교수의 생각이다. 주변에서 다양한 경험에 노출되다 보면 변화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과학고 다닐 때 힘들었다고 앞서 얘기했지만 좋은 친구도 많이 만나고 극복도 함께 했습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인생에 어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학생들에게 보통 모든 경험은 도움이 될 수 있고 그 경험이 나쁜 경험이 되느냐, 좋은 경험이 되느냐는 경험한 사람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모든 경험에는 부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실패한 경험도 당연히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실패에 크게 의미를 두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최 교수의 가정은 화목했고 특별히 어려움이 없었다. 부모님은 항상 최 교수를 믿어주었고 힘들 때 많은 도움이 됐다. 그러나 그가 진단하는 현재의 우리나라 교육은 크게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교육 현실과 관련해서는 별로 답이 없어 보입니다. 부모님이 제대로 지원해 주고 환경도 갖춰진 아이들은 부모들이 지나치게 많이 공부를 시키는데 아이들이 못따라오고 쓰러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은 정말 왜 이렇게 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경쟁이 워낙 심하고 엄마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결국 최 교수는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당연히’ 아니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어릴 때 공부 잘한다고 다 잘되는 것도 아니다.

그는 또 최근 경험을 이야기하며 현재 교육 현실이 너무 ‘돈’을 버는 데만 초점을 맞춘 비정상적인 교육이라고 지적했다. “얼마 전 둘째 아이 학교에 학부모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깜짝 놀란 경험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가 와서 교수 되면 돈을 얼마나 버냐, 연봉 1억은 되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만일 그 학생의 관심사가 돈이라면 공부는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게 목표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하면 그렇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만 앞으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 있는데 이런 무기력병은 벗어나야 합니다. 물론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부모님이 시키고 싶은 일이 다르다면 부모를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하고 자기 자신의 논리도 만들어야 합니다.”

최 교수는 실패하는 것 두려워하지 말라, 후회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지나간 시간에 대해 후회하는 것은 정말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뭐든지 실패가 용납이 되지 않는 문화가 있어서 무척 안타깝다는 게 최 교수의 지적이다. 다만 남의 눈치 보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 결국 자기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의 개인적인 목표는 후진 양성이다. 통신 강국의 위상에 걸맞게 통신 전문가를 보란 듯이 키워내는 것이다. “학생들 잘 키우고 싶은 게 꿈입니다. 연구자로선 조금이라도 좋은 연구 잘하는 게 당연한 목표지만 후진을 양성하는 게 저에게는 훨씬 의미있는 일입니다. 그런 후학들에게 제가 항상 충고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PICT라는 약자로 표현해 만든 것이다. Proactive(적극적), Independent(독립적), Curiosity(호기심) Collaborative(협업) Creative(창의적), Thorough(꼼꼼하게)가 바로 그것입니다. 또 배우는 입장에서는 완벽을 추구하면서 배우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는 학문은 정답이 있는 학문이기 때문에 완벽을 추구하면 정답에 가까운 일들과 연구와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이공계는 정답이 있는 학문입니다. 정답이 있지만 정답에 얼마나 가까이 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정답이 없는 데 시간을 너무 쓰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건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01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민수 기자

🎓️ 진로 추천

  • 전기공학
  • 전자공학
  • 정보·통신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