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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 | 하나 둘 셋…, 의식이 사라지다

수술의 비밀 ➋






서양의학에서 외과와 내과는 전혀 다른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통적으로 내과가 대학에서 신학이나 철학과 더불어 가르쳤던 학술적 의학이었다면, 외과는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상처를 꿰매고 상한 이를 뽑는 등 실무 중심의 기술이었다. 외과의(chirurgien, chirurgen, surgeon)라는 말도 ‘손’을 뜻하는 말에서 왔다.





화타, 환자를 기절시켜 내장을 꺼내다

수술에 따르는 끔찍한 통증과 수술 후 상처의 감염을 막을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이 없었던 것은 외과의 발전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소였다. 따라서 19세기 소독과 마취의 발명은 외과의 지위를 끌어올려 진정한 치유의 기술이 되게 한 엄청나게 중요한 진전이었다.

하지만 역사 기록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사회 에서도 전신마취가 가끔 행해졌던 것 같다. 중국의 전통의학에서는 편작과 화타라는 전설적인 의사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편작은 내과의, 화타는 외과의에 가깝다. 편작은 사람 몸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가진 명의였지만 피부를 가르고 오장을 씻어냈다는 유부라는 의사를 “가느다란 관으로 하늘을 보고 좁은틈으로 무늬를 보는 것과 같다”고 비판한다.

반면에 화타는 마비산(麻沸散)이라는 탕약을 먹여 환자를 기절시킨 다음 배를 갈라 상한 내장을 들어내는 등의 수술을 능숙히 해냈다고 한다. 1804년 하나오까 세이슈라는 일본의 의사는 이 처방을 재현해 암으로 망가진 60세 여인의 유방을 절제했다고 한다. 그는 이 방법으로 150건의 수술을 성공시켰다고 한다. 그 탕약을 지금의관점에서 보면 진정, 동공 확대, 수면 등의 효과가 있는 히오시아민, 스코폴라민, 아트로핀, 아코니틴 등의 독성 성분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세 아랍에서는 먹는 약 외에도 진한 향이 나는 약제와 마약 성분을 스펀지에 적신 뒤 코로 마시게 해 수술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1275년에는 라몬 룰이라는 연금술사가 후에 전신마취의 주요 물질이 된 디에틸 에테르라는 물질을 발견했다. 16세기 의학의 혁명가 파라켈수스는 이 약제의 진통효과를 발견하지만, 수술을 위한 마취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전신마취의 발견, 이어진 비극

18세기에 이르면 아산화질소, 암모니아, 산소 등 상온에서 기체 상태로 존재하는 물질이 잇따라 발견된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발견된 기체를 흡입해 봤고 이후 몸의 상태가 달라지는 경험도 하게 됐다. 그들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의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특정 기능을 가진 가스를 마셔 몸의 상태를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면 불치의 병도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특히 천식과 폐결핵 같은 호흡기 질환이 주요 목표였다.

이들은 1798년 기체치료학회(Pneumatic Institute)를 결성해 적극적으로 가스의 생리적 기능을 연구하게 된다. 그러나 연구 결과 찾아낸 것은 질병의 치료법이 아닌 극심한 통증을 조절하는 마취 효과였다.

그들이 시험한 가스 중에는 오늘날에도 어린이의 치과 치료에 종종 사용되는 아산화질소가 있다. 이 가스는 그것을 들이마신 사람들이 실없이 잘 웃는다는 점 때문에 ‘웃음 가스’로 불리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이 가스를 흡입한 사람들은 잘 웃을 뿐 아니라 웬만한 충격이나 상처에도 거의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을 임상에 적용하려는 의사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아산화질소와 에테르 등 마취 효과가 있는 가스는 파티에서 술처럼 즐거움을 주는 유흥거리의 수준에 머물렀다. 마침내 이런 파티에 참석했던 몇몇 의사들이 이 가스를 수술 통증을 제거하는 데 적용해볼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 역사는 1846년 10월 16일을 전신마취 하에서 최초의 무통 수술을 한 날로 기록하고 있다. 이날 치과의 사 윌리엄 모턴은 애보트라는 환자에게 에테르를 마시게 했고, 외과의사 존 워런은 이 환자의 목에서 성공적으로 종양을 제거했다. 환자는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워런은 참가자들에게 “여러분, 이건 속임수가 아닙니다” 라고 선언했고 이로써 전신마취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모턴이 정말로 최초의 전신마취를 성공시킨 사람은 아니었다. 자그마한 시골마을의 개업의였던 크로포드 롱은 모턴보다 4년 앞선 1842년 자신의 환자를 에테르로 마취시킨 뒤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지만 이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지는 않았다. 1844년 치과의사 호러스 웰즈는 스스로 아산화질소를 마신 상태에서 치아를 빼는 수술을 받은 뒤, 환자들에게도 이 방법을 적용해 통증 없는 발치수술을 여럿 성공시켰다. 그는 모턴의 주선으로 1845년 메사추세츠종합병원에서 시연 행사를 했지만, 충분한 마취상태에 이르지 못한 환자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처절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그는 나중에 새로 도입된 클로르포름이라는 마취제를 들이마신 상태에서 동맥을 끊어 자살하고 만다.

모턴은 친구의 실패를 교훈삼아 1년 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외과의사와 함께 아산화질소가 아닌 에테르를 통한 마취와 수술을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공시킨 것이었다. 그는 이 물질에 레티온(Letheon)이라는 이름을 붙여 성분을 숨긴 채 특허를 신청했다.

의료계에서는 그를 인도적이고 과학적인 지식과 기술을 개인의 공적으로 삼아 이익을 취하려 한다며 맹렬히 비난했다. 그에게 마취의 아이디어를 준 화학자 잭슨은 특허권을 독차지하려는 모턴의 행위를 도둑질이라 비난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수많은 소송으로 빚쟁이가 된 모
턴은 한 신문에서 에테르 마취의 공적을 잭슨에게 돌리는 기사를 보고서는 화가 치밀어 급사하고 만다. 잭슨은 모턴보다는 오래 살았지만 역시 화를 다스리지 못한 채 정신병원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 전신마취의 발견에 공을 세운 네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평온한 죽음을 맞이 한 사람은 일찌감치 공로 다툼을 포기한 채 묵묵히 임상 의사의 길을 걸은 롱이었다.






심장 없이도 피를 돌게 한다

발견자들의 삶이야 어찌됐든 전신마취는 인류에게 큰축복이었고 외과수술을 비롯한 의학 일반의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제 더 이상 맨앞에 말한 패니 버니와 같이 극심한 통증을 참으며 수술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수술의 통증이 두려워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환자도 거의 없다. 과거의 수술에서는 무조건 통증의 지속 시간을 줄여야 했으므로 속도가 관건이었고 따라서 정교한 기법이 발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끊어진 혈관과 신경을 이어붙이는 등 섬세하고 정교한 수술을 여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

현대에는 전신마취가 통증 조절뿐 아니라 수술 목적에 맞게 환자의 생리적 상태를 유지하거나 조절하는 데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예컨대 심장수술을 할 때 환자의 체온을 낮은 상태로 유지한다든지, 심장을 이식할 때 일시적으로 환자의 혈액을 몸 밖의 기계를 통해 순환하게 하는 첨단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이제 마취과 의사는 통증 전문가일 뿐 아니라 생명 유지의 첨병이기도하다.



만성통증, 과연 치료가 정답일까

마취가 다루는 통증은 주로 수술에 따르는 극심하지만 지속시간이 짧은 급성통증이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해지고 생활방식이 변하면서 통증의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명확한 신체적 원인을 찾을 수 없고 진통제 등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만성통증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급성통증은 괴로움의 정도를 헤아리기가 비교적 쉽다. 하지만 만성통증은 효과가 그다지 강렬하지도 않고 객관적 지표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경험이다.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합리성을 추구하는 현대의학은 만성 통증에 비교적 무능했다.

이전의 마취과를 마취통증의학과로 개명한 2002년의 개정 의료법은 이런 만성통증에 대한 대중과 의료계의 관점이 달라진 결과다. 이제 의학은 일상 속에서 흔히 발생하는 만성 통증을 마취가 아닌 일상 속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수시로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는 편두통 환자를 그때마다 전신마취로 치료할 수 는 없는 노릇이다.

급성통증은 의식이나 신경 전달을 차단해 마취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만성의 경우는 발생 과정이 훨씬 더복잡하다. 따라서 단순한 해결책을 찾기가 무척 어렵다.

급성통증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은 주로 신경전달을 ‘차단’하는 것이다. 전신마취는 뇌의 각 부위간의 소통을 막아 무의식과 무통 상태에 이르게 한다. 국소마취는 통증을 발생시키는 말초신경의 신호 전달을 막는다.

그러나 만성통증에는 이러한 메커니즘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만성통증에는 거꾸로 뇌를 비롯한 신체 각 부위 사이의 원활한 소통이 답이 될지도 모른다. ‘동의보감’ 에서는 “서로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 (通卽不痛 不通卽痛)”고 했다. 한의학의 핵심 개념인 경락을 염두에 둔 말이겠으나 만성통증을 일으키는 신경망과 사회생활에도 적용될 수 있다. 급성통증을 해결한 마취학의 영웅들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고통에 시달렸던 것도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려고만 했지 서로 통하려 하지 않았던 때문 아닐까.

우리는 급성통증을 성공적으로 정복했다. 하지만 만성통증은 정복이 아닌 적응의 문제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강신익
약 20년간 치과의사로 일했다. 영국에서 의학과 관련된 인문학(철학, 역사, 윤리)을 공부했고 지금은 인제대 의대 인문의학 교실에서 일한다.
고준담론이 아닌 일상적 삶을 조명하는 의학과 인문학을지향하고 있다.
philomed@inje.ac.kr
 

2013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김상연 | 글 강신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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