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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키워드는 ‘오크’입니다.
오크 하면 딱 떠오르는 것은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일 것입니다. 영화에서 오크는 추악한 괴물로 등장해 인간계와 엘프계를 지배하려는 어둠의 힘을 추종하는 존재로 나옵니다. 난쟁이 호빗족을 중심으로 한 반지원정대를 끊임없이 괴롭히죠.
인터넷에서 오크는 무슨 의미로 쓰일까요. 검색을 조금만 해보면 알겠지만 못생긴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오크녀, 오크남 등으로 흔히 쓰이지요. 오크녀라는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 우연히 자신의 사진이 나온다면 기분이 좋을 리는 없을 것입니다.
오크라는 말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판타지 백과사전을 뒤져 보면 오크는 라틴어로 악마, 지하세계의 생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보통 흉측한 모습을 한 사악한 종족으로 묘사되죠. 반지의 제왕에서는 둔하고 살육과 파괴를 좋아하는 종족으로 표현되고 워크래프트나 리니지와 같은 판타지 게임에서는 외계 종족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원작에서는 짓이겨진 돼지와 닮은 얼굴에 길고 가는 손과 짧은 다리를 지닌 종족으로 묘사됩니다. 잔인한 성격이며 영화에서처럼 전장에서 굶주리면 동족을 잡아먹기도 하지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오크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신 ‘오르쿠스’라는 말에서 유래됐습니다. 오르쿠스는 한 고분 벽화에서 수염을 기른 거인의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사나운 전사로 적을 쓰러뜨리고 죽은 자들을 먹는 모습 때문에 식인 괴물로도 알려졌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오르쿠스가 원래 포르키스라는 이름을 지닌 바빌로니아의 여신이었다는 점입니다. 여신을 믿는 종교가 금지되자 남성으로 변했는데, 이 여신에 대한 제물로 주로 돼지를 썼기 때문에 돼지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죠. 어찌 됐든 오크는 오르쿠스로부터 유래해 짓이겨진 돼지 얼굴을 하게 됐습니다. 종종 남성 오크와 인간 여자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는데 이 아이는 오크 사회에서도, 인간 사회에서도 멸시당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이 오르쿠스라는 말은 태양계에도 존재합니다. 2004년 2월 처음으로 우주망원경에 공식적으로 포착된 왜행성을 영미 천문학자들이 발견해 ‘오르쿠스’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천체는 ‘반명왕성’으로도 불립니다. 공전주기가 247년으로 명왕성과 거의 같고 궤도도 명왕성과 거의 동일한 각도로 기울어진 긴 타원궤도를 형성하지만 명왕성 반대편에서 서로 교차하는 방향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행성을 오르쿠스라고 이름붙인 것은 흥미롭습니다. 익히 알려졌지만 2006년 8월 국제천문연맹이 새 행성 기준을 마련하면서 명왕성은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왜행성으로 강등됐죠. 명왕성이 최초에 발견된 1930년대에는 지구 정도의 크기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달보다도 작았습니다. 질량과 중력이 행성이라 보기엔 너무 작고 공전 궤도 또한 심한 타원형으로 찌그러져 있기 때문이었지요.
이런 슬픈 운명을 가진 명왕성과 유사한 왜행성을 오르쿠스라고 명명한 천문학자들의 ‘작명 센스’가 대한민국 인터넷 공간에서 못생겨서 놀림받는 사람을 일컫는 오크라는 말을 염두에 둔 것은 분명 아닐 겁니다. 하지만 오크와 오르쿠스, 반명왕성으로 이어지는 각 단어의 의미가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기자만 받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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