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궤도가 확실히 밝혀진 소행성만도 5천개가 넘는다. 그러나 이 숫자는 10만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전체 소행성에 비하면 아주 적은 수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자기 궤도를 돌고 있지만, 언제 어느때 궤도변화를 일으킬지 모른다.
태양계는 매우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태양계 가족은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보인다. 인류가 쏘아올린 태양계 탐사선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예정된 궤도를 착실하게 돌고있는 행성들의 모습을 확인해 주고있다.
그러나 태양계 안에는 길들여지지 않은 소천체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화성과 목성 사이에 떼지어 돌고 있는 소행성 들이다. 이들은 덩치가 작고 모양도 구형이 아닌 제멋대로이기 때문에 조금만 상황이 변화해도 섭동을 일으켜 궤도를 이탈하기도 한다. 궤도를 벗어난 소행성들은 화성이나 목성, 그리고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지구 충돌의 역사
지구에 4년마다 접근하는 토타치스라는 소행성이 있다. 1992년 9월 프랑스의 천문학자 르베소는 토타치스가 지구와 충돌한다고 예측해 한때 천문학계를 긴장시켰다. 크기가 3-5㎞로 볼품없이 일그러진 모습을 하고 있는 토타치스가 지구와 충돌한다면 1메가t 수소 폭탄 1백만개가 동시에 폭발하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 소행성은 92년 12월 초에 지구에서 3백60만㎞(0.024AU)까지 접근했다. 슈퍼컴퓨터로 계산해본 결과 이 소행성이 1백년 이내에 지구와 충돌할 확률은 없으나, 2004년에는 1백50만㎞까지 접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표1). 물론 이는 또다른 변수가 생기지 않는다는 가정에서다.
1991년에는 1991BA라는 소행성이 지구 가까이 17만㎞까지 접근했다. 이 거리는 지구와 달 사이 거리 반이며 방송통신위성이 떠있는 거리(3만6천㎞)의 5배거리다. 이 소행성의 크기는 지름이 9m밖에 되지 않는 것이지만 1991BA가 지구와 충돌한다면 조그만 도시 하나는 족히 쑥밭을 만들 정도의 폭발력은 가질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지름 5m 정도의 소천체는 수십년에 한번 정도 지구와 충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 3월23일에는 지름 약1백m의 소행성(1989FC)이 지구로부터 80만㎞ 지점을 통과했다. NASA는 이 소행성이 초속 10㎞ 이상으로 지구와 충돌했다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1천개 이상이 터지는 피해를 발생시켰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지름 1백m짜리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확률은 1만년에 한번 꼴이라고 일본 국립천문대 이소베 박사는 밝힌 바 있다(표2).
1973년 8월 캐나다의 알버타주로부터 미국의 유타주에 이르는 지역에 낮에도 확연히 구별할 수 있는 백색광의 꼬리를 펼치면서 비약하는 물체가 있었다. 이를 분석한 결과 이 물체는 지름 80㎝, 질량 1백t의 소행성일 확률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소행성은 지구 대기에 돌입하는 입사각이 아주 작아 지각에 충돌하지 않고 재차 우주공간으로 반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 대기를 스쳐지나간 속도는 무려 초속 14.7㎞인 것으로 드러났다.
1908년 6월에는 시베리아의 퉁구스카 지역 상공 80㎞ 지점까지 커다란 불덩이가 솟아올랐다. 대기중으로 솟아오른 먼지층이 되반사한 빛으로 주변에서는 밤에도 신문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백야(白夜)가 2개월 이상 지속되었다고 한다. 이 폭발을 일으킨 물체는 지름이 60m 정도의 소천체(혜성인지 소행성인지는 불명)임이 밝혀졌다. 폭발 에너지는 12-20메가t으로 반지름 20㎞ 지역의 삼림이 크게 훼손됐고 많은 야생동물이 목숨을 잃었다.
남미 아르젠티나의 팜파스 삼림지대에는 폭 2㎞, 길이 30㎞의 기다란 운석구덩이(크레이터)가 1989년 한 파일럿에 의해 발견됐다. 이 운석구덩이는 북동쪽으로부터 15도 이하의 각도로 돌입한 소행성의 충돌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부딪친 소행성의 지름은 1백50m정도. 충돌에너지는 3백50만메가t으로 퉁구스카보다 30배 정도의 폭발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충돌연대는 약 1만년전.
현재 궤도가 확실히 밝혀진 소행성은 약 5천3백개. 궤도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류가 발견한 소행성의 수는 1만5천개 정도. 그러나 이 수는 실제로 존재하는 소행성 수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 천문학자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최소한 10만개 이상의 소행성이 태양에서 2.0-3.5AU 떨어진 곳(대부분은 화성과 목성 궤도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중에는 지름이 1천㎞인 것(세레스) 하나와 1백-3백㎞인 몇개를 제외하고는 10㎞ 미만인것이 대부분이다. 이들 소행성은 탄소화합물과 규산염, 그리고 금속성분인 니켈과 철 등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만개 이상의 미지 천체
소행성과 관련해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그들이 움직이는 궤도다. 대부분이 화성과 목성 사이에 몰려 있기는 하지만 상당수의 소행성은 목성궤도 바깥쪽으로, 또는 화성과 지구궤도 안쪽으로 접근하는 소행성이 상당수 있다. 이들이 바로 지구를 비롯한 행성과 충돌할 가능성이많은 '태양계의 부랑아'다.
1990년대 초반 4개의 소행성이 목성궤도 바깥쪽으로 벗어나는 것이 발견됐다. 이들 소행성은 이심률과 궤도경사각이 커, 마치 혜성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들 중 하나인 카이론은 코마가 관측돼 소행성이라기보다는 혜성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는 견해도 피력됐다.
이와는 반대로 태양계 중심부로 거침없이 돌진하는 소행성도 있다. 화성궤도 안쪽으로 들어오는 소행성은 아폴로형 아모어형 아텐형으로 분류된다. 이들 소행성 또한 이심률과 궤도경사각이 크다. 아폴로형과 아모어형은 태양에서 1AU(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로 약 1억5천만㎞)까지 접근하므로 지구 궤도와 교차한다. 아폴로군은 현재까지 약 80개 가량 발견됐다. 아텐스군은 지구궤도를 넘어서 태양 가까이 접근하는 소행성이다. 아텐스 군에 속하는 이카루스라는 소행성은 1968년에 태양에 0.19AU까지 접근한 바 있다. 이카루스는 수성의 인력으로 궤도방향이 바뀌었는데, 이를 이용해 천문학자들은 수성의 질량을 다시 한번 검증한 바 있다.
틈새와 밀집 지역으로 구분
그렇다면 화성과 목성 사이에 분포하고 있는 소행성들은 어떤 궤도를 그리면서 움직이는 것일까. 광활한 초원을 떼지어 달리는 버팔로처럼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것일까. 아니면 나름대로 질서가 있는 궤도를 가지는 것일까.
우선 눈에 띄는 특징은 궤도반지름 분포에 일정한 틈새가 나타난다는 것이다(그림1). 주행성대(2AU-3.5AU) 안에 소행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 있다는 뜻. 이 틈새를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커크우드틈새'라고 부른다. 또한 주소행성대 바깔쪽으로 소행성들이 집단으로 몰려있는 지역이 두군데 존재한다. 이중 한 곳은 목성 궤도 가까이에 존재한다.
틈새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목성의 공전주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지구 공전궤도 2.5배(2.5AU) 되는 곳에 형성된 틈새는 소행성들이 세번 공전할 때 목성이 한번 공전하는 장소다. 이를 3:1 공명장소라고 부른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2:1, 4:1 장소에도 눈에 띄는 틈새가 존재한다. 이외의 틈새는 5:2, 7:3의 장소에도 있다. 혼돈스러운 것은 3:2나 4:3, 또는 1:1의 공명장소에는 오히려 소행성들이 떼로 몰려 있다는 사실이다.
소행성의 분포에 이와 같은 농도가 존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행성과 교차하는 궤도에 존재하는 소행성이 행성과 충돌해 대부분은 행성에 흡수되고 나머지는 소행성으로 남았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문제는 소행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틈새. 이곳에는 소행성들을 흡수할만한 행성도 없기 때문에 소행성을 거부하는 어떤 메커니즘을 가정할 수 밖에 없다.
소행성의 궤도는 장기적으로 행성으로부터 인력을 받아서 변화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주소행성대의 소행성들은 목성의 인력을 강하게 받아 대부분 안정된 궤도(인력의 평형점)로 이동하지만, 일부는 심한 섭동을 일으켜 행성과 충돌하기도 한다.
우선 (그림1)에서 1:1 공명지역부터 살펴보자. 이곳은 목성궤도에 소행성들이 어느 정도 무리를 지어 존재하는 곳. 이 지역의 특징은 태양과 목성의 중력이 평형을 이루는 지점이다. 즉 태양 목성, 그리고 소행성 무리가 정삼각형의 꼭지점을 구성한다. 이 꼭지점을 '라그랑지점'이라고 부르고 이곳에 존재하는 소행성 무리를 트로얀 소행성이라고 한다. 정삼각형은 양쪽에 두개가 가능하므로 트로얀 소행성은 목성 중심으로 두곳에 분포한다(그림2).
3:2 공명지점 또한 1:1 지점처럼 정삼각형을 만들지는 않지만 목성과 태양의 인력 중심지역에 분포한다. 이 두 공명지점에 존재하는 소행성은 결국 목성을 피해다니면서 태양과 목성의 인력 평형점을 찾아 궤도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소행성무리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소행성이 존재하지 않는 커크우드 틈새가 어떻게 생성됐느냐는 점이다. 이 테마는 소행성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의 주요 관심사이다. 이에 대한 의문에 답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가상의 소행성을 커크우드틈새에 집어넣고 슈퍼컴퓨터로 궤도의 변화를 찾아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대표적인 연구결과는 일본 국립천문대에서 나왔다.
5:2 공명지역에 가상의 소행성을 집어넣어 5만년 동안의 변화를 살핀 결과 처음에는 원에 가까운(이심률이 0에 가까운) 궤도를 그리던 것이 5만년 후에는 이심률이 점점 커져 기다란 타원궤도로 변했다(그림3). 이 궤도는 목성이나 화성, 지구 구궤도와 교차하므로 행성과 충돌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소행성들이 바로 아폴로군이나 아모어군 소행성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결국 틈새에 있는 소행성들은 불안정하고 무리 지역에 있는 소행성은 비교적 안정된 궤도를 돌고 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모든 소행성들이 앞에서 이야기한대로만 진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행성들은 행성처럼 큰 덩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워낙 많은 소행성들이 존재하므로 소행성들끼리의 영향(근접 또는 충돌)으로 궤도변화가 크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오랜 시간에 걸쳐 순차적으로 궤도변화를 일으킨 소행성이 행성 가까이 접근하면서 일순간 행성의 인력을 강하게 받아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소행성대를 '태양계 최후의 미답지역'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구 충돌 확률은?
그렇다면 앞으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여기에 명확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일본 천문학자인 나카무라와 요시카와박사는 궤도가 확실히 밝혀진 4천5백개의 소행성이 앞으로 1백년 동안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등의 행성에 어느 정도 근접할 것인지를 계산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각각의 행성에 평균 1년에 한두번 정도는 근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그림 4). 여기서 근접이란 0.2AU(약 3천만㎞) 이내를 의미한다. 1백년 내에 최접근 거리는 수성이 0.032AU, 금성이 0.008AU, 지구가 0.007AU, 화성이 0.029AU로 나타났다. 이 결과만 보면 지구는 소행성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이미 인류에 의해 궤도가 확실히 밝혀진 소행성에 대한 조사일 뿐이다.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소행성들이 더 많고, 밝혀진 것이라 할지라도 언제 어느 때 궤도변화를 일으킬지 모르므로 방심은 금물이다. 오는 7월 중순 목성과 충돌하는 슈메이커-레비혜성도 93년 7월까지는 전혀 존재를 알 수 없었던 혜성이다.
미국에서는 언제 있을지 모르는 외계물체의 접근을 살피는 '우주경계계획'이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유럽이나 러시아, 일본에서도 천문학자들이 중심이 돼 계획안을 정부에 제출해놓고 있다. 이들은 경계만 게을리하지 않으면 사전에 인공위성 한대만 쏘아올리면 대충돌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난 4월 국내에서 개최된 '소행성과 지구 충돌' 심포지엄에서 연대 권성택 교수는 "인류가 개발한 핵무기를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구에 접근하는 소행성에 핵무기를 쏘아 궤도를 바꾸거나 파괴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는 세계가 공동으로 철저하게 우주 경계를 편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