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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공포가 이웃을 향할 때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19


인간에게는 몇 가지 근원적인 공포가 있다. 그중 하나가 ‘감염’에 대한 공포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병균과 싸웠고 그 과정에서 감염을 피하기 위한 기제를 발달시켰다. 냄새나고 불결한 것, 정상범위를 벗어나 독특한 모양을 한 것을 보면 느끼는 역겨움과 혐오감이 대표적인 감염 방어기제다. 이런 불쾌한 감정은 인간으로 하여금 감염 위험이 있는 것들을 재빠르게 피하게 한다. 오늘은 이 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혐오는 독재를 옹호한다?

혐오와 역겨움은 잘 활용하면 우리를 지켜주지만 반대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혐오가 다른 인간을 향할 때 특히 그렇다.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거나 감염의 위험을 지각하게 되면 낯선 사람을 이유 없이 기피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특히 외국인은 아주 쉬운 혐오의 대상이 된다. 또 다른 연구는 사람들이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감이 커진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두 가지 현상 모두 본인이 정상이라고 여기는 기준이 있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잠재적 감염원으로 지각하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다.

이렇게 공포는 익숙지 않은 존재를 꺼리게 하는 반면 이미 익숙한 존재는 더 좋아하게 만든다. 감염 공포가 존재할 때 자신이 속한 집단을 향한 선호와 편향이 더 높아진다. 민족주의나 국수주의 같은 집단 행동성향이 강해지고 자기가 속한 집단에 높은 충성심을 보이며 다수의 의견에 쉽게 찬성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감염 공포는 권위주의, 독재, 집단주의 체제 및 정부를 옹호하게 한다는 연구도 있다. 세균, 기생충 등의 위협이 잦았던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많고 권위주의적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더 높았다. 병균이라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강력한 통치자가 나타나 억제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평소에 역겨움에 약한 사람도(소위 비위가 약한) 권위주의, 강자에 의한 지배, 종교적 근본주의, 민족중심주의, 집단주의, 보수주의를 더 옹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문제는 이런 혐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갑작스레 나타나며 상당히 강력하게 우리를 조정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공포가 확산될 때 혹시 각종 차별과 억압이 함께 퍼져나가지는 않는지 사회구성원들은 사회를 꼼꼼하게 감시해야 한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나를 위협하는 바이러스

메르스가 확산되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의 혐오는 어디쯤 와있을까. 소수의 반응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사회의 혐오도 심상치 않다. 우연한 접촉으로 인한 감염임에도 감염자들을 이기적이고 도덕성이 낮은 사람으로 매도한다. 마치 그들이 일부러 병에 걸려 다른 이를 감염시키려고 행동한 것처럼 과도한 비난을 하고 심지어 ‘그 인간은 죽어도 싸다’, ‘죽으려면 혼자 죽지’ 등 저주 같은 말을 SNS를 통해 내뱉는다. 부모가 의사라는 이유로 자녀들이 유치원과 학교에서 놀림을 당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런 반응을 보면 사람들은 메르스 환자를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위협하는 메르스 바이러스 그 자체로 여기는 것 같다.

환자를 바이러스, 벌레, 짐승 등의 열등하고 더러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현상, 그러니까 사람을 인간 이하로 격하하는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비인간화(dehumanization)’라고 한다. 대수롭지 않은 현상 같지만 비인간화를 가만히 두고 봐서는 절대 안 된다. 이것은 매우 위험하다. 역사적으로 비인간화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순간은 인종청소라고 불리는 잔혹한 학살의 현장이었다. 다른 이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고 잔혹하게 살해하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으로 이 논리가 쓰였다. ‘그 사람은 병균, 벌레, 오물 같은 더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잔혹하게 죽여도 된다’는 식이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치닫지는 않으리라 믿지만, 미리 예방하는 것이 사회를 위해서 좋은 일이다.

부주의한 행동이 있을 뿐 세상에 죽어도 싼 사람은 없다. 누구든지 감염이 일어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개인의 이성이 충분히 작동하기 어려운 긴박한 상황에서 얼마든지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감염자들이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누구보다 힘들게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이 땅의 환자들이 병보다 자신을 향한 각종 혐오나 차별과 싸우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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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영 작가
  • 에디터

    송준섭 기자
  • 일러스트

    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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