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의 능력을 재기 위한 시도에는 적어도 네 가지 흐름이 있다. 물론 각기 독립적이 아니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우선 정신현상을 지성 감정 의지 등 몇 가지 능력으로 분류하여 기술하려는 18세기의 능력심리학이 있다. 두번째로는 인간 정신의 개인차를 신체의 계측에 의해 동정하려는 신체 계측적 접근도 18세기 말 이후에 이루어졌다.
셋째 19세기 중반 이후 대두한 정신물리학은 감각이나 지각을 물리학적 방법으로 재려 했고 이는 심리학의 직접적인 뿌리가 되었다. 넷째로 교육현장에서 학력부진아와 지적열등아의 분류에 쫓기던 교육의학 관계자들이 머리 능력을 재기 위한 시도를 했다.
능력심리학의 주장은 1백년이 채 안되는 사이 다른 학자에 의해 부정됐다.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이 두번째 접근. 골상학이나 두개계측학이 포함된다.
골상학은 F.J. 갈에 의해 19세기 초엽, 두개계측학은 P. 브로카에 의해 19세기 중엽 이후에 발전했다. 범죄자의 생물학적 소인을 연구한 C. 론브로조의 접근도 관련된다. 그들의 주장은 지능같은 것이 인간의 내부에 있고 그것들은 무언가 형태로 그 외부(즉 몸)에 나타나고 있으므로 계측에 의해 잴 수 있다는 것이다.
골상학은 마음의 기능이 뇌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도 국재한다고 주장한 점이 새로웠다.
두개계측학은 인간의 지성의 개인차를 정량화하려 했다. 두개용량(뇌의 크기)이 클수록 지능이 높다고 여겼다. 두개계측에 열을 올리던 브로카는 브로카 언어영역에 그 이름을 남긴 저명한 뇌생리학자다. 그가 측정에 건 집념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자면 우스꽝스럽기조차 하다.
당시 사회에서는 바람직한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을 구별하기 위한 방법 개발이 중시 되고 있었다. 많은 경우 두개계측의 결과는 미리 상정된 서열(남성>;여성>;흑인과 같은 서열)을 뒷받침하는데 사용됐다.
게다가 머리가 좋은 인간일수록 머리가 크다는 일반적 인상은 측정을 하면 할수록 지지 되지 않는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그러나 두개계측학이 부정되기까지는 재미있는 일화가 여럿 있었다. 어떤 저명한 대학교수는 자신이 죽은 후 뇌를 계측해줄 것을 희망했다. 그의 뇌가 크면 두개계측학 가설을 검증 하는 게 됐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뇌는 평균보다 작았다. 그러나 가설은 파기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뇌가 작은 만큼 우수한 교수가 아니었다고 결론이 나 버린 것이다.
정신물리학은 긴 시간 논의 대상이 된 정신의 문제를 해결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당연히 인간의 지성을 잴 것도 기대됐다. '멘탈테스트'라는 이름으로 반응 시간등의 감각과정을 실험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잘 진전되지 않았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좋은 사람이 꼭 세상에서 말하듯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요소주의적인 접근은 실패해갔다.
지능검사를 직접 준비하게 된 것은 교육적 의학적인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근대 유럽에서는 국민 모두가 초등교육을 받는 제도가 확립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가 있었던 것. 여기에는 두 종류가 있다. 공부를 하면 되는데 하지 않는 아이와 열심히 공부해도 쫓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전자는 질책이나 격려가 효과를 볼지도 모르지만 후자는 특별한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할 것이다.
프랑스에는 정신병자를 그 족쇄에서 해방시킨 의사 P. 피넬 이래 정신이상이나 지체 등의 카테고리에 분류되는 사람에 대해 비교적 인도적인 대처를 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나 이 카테고리 분류는 의사가 행하는 데, 매우 자의적이었다. 그같은 상황 아래서도 어린이들을 특별학교로 갈라 보냈다.
지능검사의 창시자 A. 비네
이 문제에 심리학자 A. 비네가 뛰어들었다. 그는 히스테리의 인격변환이나 피암시성 연구, 혹은 정신물리학적 연구 등을 널리 행해왔다. 지능에도 관심을 가지고 두개계측학이나 정신물리학에 기초한 연구도 했는데,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는 지적 열등아의 분류기준이 선험적이고 그 판단과정 이 자의적임에 더해 자칫 그 판단이 아이들의 실태보다 부모의 면접이나 부모의 의향에 영향 받는다는 사실을 우려, 어린이의 실태를 객관적으로 재기 위한 검사수속을 작성했다. 1905년의 일이다.
그가 직접 참고로 한 것은 의사 브랑의 연구다. 몇가지 질문을 준비하여 어린이들에게 시행하고 그 회답에서 진단을 하는 스타일을 만든 것은 브랑이다. 또 지적 장애아를 위해 식민지에서 인턴을 하고 있던 의사 T. 시몬의 협력을 얻어 2백명 이상의 지적 장애아와 접촉하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었다.
비네식 검사의 특징은 과제항목 및 그 채점 기준을 철저하게 경험적인 것으로 채택한 점이다. 이는 수많은 작은 과제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연령의 어린이는 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한 살 연상의 아이에게는 가능한 과제를 많은 예비작업을 통해 수집했다.
그것도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과 같은 것은 될 수 있으면 버렸다. 가령 7세 수준의 문제로는 '다섯개의 숫자를 복창한다'는 것이 있다.
비네의 독창성은 지적열등의 판단기준을 정상아수준과의 비교에 둔 데 있었다. 열등하거나 지체되고 있다고 할 때 무엇에 비해 그렇다고 할 수 있는지의 기준을 보통아의 지적인 발달과정에서 찾은 것이다. 또한 다른 접근과 달리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것 자체가 성공의 요인이 됐다고 말할 수도 있다.
놀라운 일이지만 그 당시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지적으로 발달한다는 생각이 거의 없었다. 가령 어떤 지적 작업을 두살바기와 네살바기에게 시켰을 때 그들이 다른 결과를 보였을 경우 현재와 같이 지적 발달이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지 않고 성격의 차이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네의 성과는 대상의 관찰이나 경험적 작업을 쌓아 이루어진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교육이 요구하는 과제와 프랑스 정신의학과 결합돼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삽시간에 전세계로 퍼졌다.
그의 검사에는 부산물이 있었다. 그것은 지적열등아 분류 이외에 아이들의 지적발달 정도를 파악히는데 사용된다는 점이다. 즉 검사를 받은 어린이 각자에 대해 '정상아에 비해 몇세 몇개월의 수준'이라는 수치가 부여된 것이다. 그리고 지체아를 치료하고 지능을 증가시키는데 검사의 목적이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머리의 좋고 나쁨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심리학, 혹은 그 전신이 추구해온 과제였다.
그 뒤 IQ는 독일의 인격심리학자 W. 슈테른이 제창했다. IQ를 수학적 공식으로 나타내면 지능지수(IQ)=정신연령(MA)+생활연령(CA)이 된다. 가령 정신연령이 3세아 수준일 경우 실제 생활연령이 4세인가 혹은 9세인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이를 잘 지표화하는 슈테론의 제안 자체는 납득이 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개인의 지적 수준이 단 하나의 수치로 표현되게 되어 비교되기 쉽다는 부작용을 낳았다.
미국에서 비네의 지능검사를 번안하고 아울러 IQ를 도입한 것은 L.M,터먼이다. 그러나 비네 검사의 번역자들과 수입자들은 애초에 비네가 가졌던 입장과는 달리, IQ검사는 유전적 계승에 의해 고정된 변화불가능한 양을 측정한다고 보았다.
개인의 비교는 집단의 비교로 발전했다. 사회계층이나 성별에 의한 지능 비교, 이민 출신국의 비교 등··· IQ가 낮은 집단은 열등한 집단이 되고 사회진출이나 미국 이민을 제한받게 되었다.
육군 신병에서 하사관후보를 선발하기 위해 성인을 대상으로 앙케이트식 지능검사를 개발한 것은 R.M.야키스다. 앙케이트 방식의 도입은 대량 데이터의 수집과 그 통계적 분석에 길을 열었다. 인자분석이라는 수학적 수법에 의해 지능 그 자체의 존재를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또 쌍둥이의 IQ가 꽤 상통한다는 데이터를 날조하기까지 하여 유전론을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재미로 보는 역대위인들의 IQ
IQ가 높으면 높을수록 머리가 좋은 것인가. 가령 IQ 1000인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존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세 때 10세정도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혹은 7세 때 70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IQ가 1000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상식에서 벗어난다. IQ가 높으면 높을수록 머리가 좋다는 이미지에는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른바 '위인'들의 과거 전기에서 그 사람의 IQ를 추정한 심리학자가 있었다. 터먼의 제자인 C.M.콕스가 그다. IQ가 머리의 좋고 나쁨을 나타내는 지표이므로 과거의 위인은 IQ 가 높을 것이라는 순환론적 사고에서 행해진 작업이었다.
그의 연구는 흥미거리로는 꽤 인기를 끌었다. 누가 IQ 얼마로 추정되었는가는 통속적인 의미에서 관심거리였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분명 과거의 위인들은 평균치인 100보다는 높은 IQ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그에 따르면 희대의 석학 괴테의 IQ가 180으로 가장 높다. 천재 음악가인 모차르트가 150인데, IQ와는 또다른 차원의 재능도 측정기준의 일부가 되었는지는 미지수다. 철학자 데카르트도 150 정도의 IQ를 가진 것으로 나왔다.
나폴레온의 IQ는 135로 측정됐다. 진화론으로 근대 생물학의 기초를 닦은 다윈의 IQ도 135 정도로 나왔다. 음악가 바그너, 화가이자 당대의 천재로 알려졌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역시 135 정도의 IQ 를 가졌을 것으로 추측됐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125로 평균보다 상당히 높다.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꾼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는 105에 불과해 평균보다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추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