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에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행인을 발견해 놀란 적은 없는가. 대낮에는 훤하게 보이지만, 빛이 사라지면 우리 눈은 맥을 못춘다. 우리 눈은 가시광선이라는 빛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에도 또다른 종류의 빛이 있다. 바로 사람이 내는 적외선이다. 수백℃ 이하인 물체들은 적외선을 방출한다.
적외선을 이용하는 장비 가운데 대표적인 예로 야시경(night vision)이 있다. 밤에도 물체가 내놓는 적외선을 포착해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장비다. 별도로 빛을 비출 필요가 없기 때문에 군사적인 용도로 많이 사용돼 왔다. 최근 적외선 영상은 여러 가지 군사적 용도에서 벗어나 의료 영상, 치안과 인명 구조, 비파괴검사, 우주 관측 등에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
마이크로단위 가공기술 필요
KAIST 전자전산학과 이희철 교수가 이끄는 적외선 영상센서 연구실에서는 적외선을 검출해 영상을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적외선 감지 분야의 연구는 군사적인 목적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핵심기술에 대해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 고유기술을 개발하는 일은 중요하며, KAIST 적외선 영상센서 연구실에서도 중요한 몫을 감당하고 있다.
연구실에서는 수은(Hg)과 카드뮴(Cd), 그리고 텔루륨(Te)으로 구성된 화합물반도체를 이용해 적외선 감지소자를 제작하고 있다. 이 화합물반도체는 적외선의 빛을 흡수해 전기신호로 바꾸기에 매우 적합하지만, 열잡음과 이물질을 잘 처리해야 하는 어려움도 가진다. 최근 적외선 영상센서 연구실에서는 2차원 배열 형태의 적외선 감지소자를 시험·제작하는데 성공했다.
적외선 감지소자에는 또다른 형태가 있다. 적외선을 받으면 물체의 온도가 올라가는데, 이같은 사실을 이용해 만드는 열형 감지소자가 그것이다. 적외선 영상센서 연구실에서는 열형 감지소자를 제작하기 위해 온도(열)의 작은 변화에 전류 변화가 큰 강유전이나 고유전 세라믹 물질의 박막형태를 연구하고 있다. 또한 이 박막을 지지하는 동시에 기판으로 전기신호를 보내기 위해 미세가공기술인 MEMS(미세전자기계시스템) 기술이 적용된 구조체가 필요하다. 박막은 30-50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 크기의기둥같은 구조체를 사이에 두고 기판 위에 붕 떠있는 형태가 된다. 적외선 영상센서 연구실에서는 이같이 3차원 구조를 갖는 적외선 감지소자를 제작하기 위해 새로운 공정을 개발·시험중이다.
적외선 감지소자는 적외선 신호를 전기신호로 변환 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적외선을 내는 물체를 보기 위해서는 전기신호가 다시 영상신호로 바뀌어야 한다. 이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부분이 바로 신호취득 회로다. 기판에 위치한 신호취득회로에서는 신호를 증폭 하거나 신호를 영상신호로 묶는 등 다양한 신호처리 기능을 한다.
광학장치는 폴란드와 국제협력중
적외선 영상시스템은 적외선 감지소자, 신호취득회로 외에도 적외선 렌즈와 필터를 이용한 광학장치, 적외선 감지소자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밀용기와 냉각장치, 그리고 영상신호를 외부로 출력하거나 디스플레이하도록 하는 회로 부분이 포함된다. 적외선 영상센서 연구실에서는 폴란드 바르샤바 군사기술대 전자공학과와 국제협력을 통해 광학장치를 개발중이다. 냉각기밀용기와 시스템회로는 적외선 영상센서 연구실 출신의 졸업생이 설립한 벤처회사인 (주)한꿈 엔지니어링과 함께 개발되고 있다.
앞으로 적외선 영상센서는 의료영상 분야에도 중요하게 쓰일 전망이다. 예를 들어 적외선으로 인체의 온도 분포를 측정해 류머티스나 유방암을 진단할 수 있다. 무릎관절의 온도 분포로 류머티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며, 암세포와 정상세포의 온도차를 유방암 진단에 이용할 수 있다.
현재 적외선 영상센서 연구실에서는 이희철 교수를 비롯해 인도공대의 방문교수 1명, 연구원 1명, 박사과정생 7명, 석사과정생 6명이 국방·의료·산업용 적외선영상을 구현하기 위해 적외선 감지소자 개발을 목표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