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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에서 死神을 쫓아내다

수술의 비밀 ➊ 소독




무서운 통계가 있다. 1874년 파리에 있는 병원에서 절단 수술 후 사망률은 60%에 달했다. 영국 에딘버러의 병원에서는 수술 후 사망률이 43%, 미국 펜실베이니아 병원에서는 24.3%에 달했다. 영국의 유명한 수술의 존 에리쉔이 조사한 결과다.

수술의 대가로 불렸던 오스트리아의 의사 테오도르 빌로스는 5년간 163건의 절단 수술을 시행했지만 무려 75건의 환자가 사망했다. 당시 사람들은 수술 뒤 사망률이 높은 이유가 병원에서 새로 병을 얻었기 때문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병원 질환’이나 ‘유행성 궤양’이라고 불렀다. 적어도 도시의 큰 병원이나 전쟁터의 병원은 ‘가장 건강하지 못한’ 공간이었다.

높은 사망률은 병원 자체에 대한 회의를 불러 왔다. 마취학의 선구자였던 영국의 제임스 심슨은 지방 작은 병원이 큰 병원보다 절단 수술 후 사망률이 낮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1848년 병원의 ‘밀집한 조건’이 비위생적 환경을 만들고 있으며 큰 병원보다 작은 건물이나 개인 방에 환자를 수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위 ‘호스피탈리즘’(Hospitalism, 병원제일주의)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수술대에서 환자가 사망할 확률이 워털루 전장에서 영국 병사가 사망할 확률보다 더 높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손만 씻었을 뿐인데

이처럼 수술 후 사망률이 높은 원인은 상처에 감염된 세균과 그로 인한 패혈증때문이었다. 지금에야 당연한 상식이지만 당시는 아니었다. 18세기 들어 상처 고름(세균과 싸운 흔적)과 병원 질환을 설명하는 이론은 장기 이론(miasma theory, ‘부패한 물질에서 나오는 나쁜 공기’를 뜻함)으로 수렴됐다. 장기 이론에 따르면 주변 환경, 부패한 물질, 병든 육체 및 고름 등에서 장기(miasma)가 발생해 환자를 다시 감염시켰다.

장기를 예방하려면 환기와 청소가 우선이었다. 병동을 비우고 화학물질을 이용해 ‘청결’하게 만드는 방안을 병원에 권고했다. 병원을 설계할 때도 환기가 우선순위 였고, 병원 옆에 새로 병동을 세우는 것은 공기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어서 피했다. 나중에는 환기보다 상처에서 생기는 부패가 더 큰 원인으로 지적됐다. 1840년에는 병원에서 열병이 심하게 유행하면 옷을 갈아입고 부검을 중단하도록 권고했으며, 더 심해지면 의료 행위 자체를 중단했다.

상처가 악화되는 진짜 원인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소독의 중요성은 점점 부각됐다. 1847년 중반 오스트리아 빈 일반병원에 근무하던 산과의 젬멜바이스는 산욕열(출산후 걸리는 심한 열병)을 탐구하면서 손씻기가 산욕열 발생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젬멜바이스는 자신의 병원에서 일반의사 병동이 산파 병동보다 산욕열 발생이 높은 점에 착안했다. 그는 산욕열이 일반 의사가 사망환자를 부검한 뒤 손을 씻지 않고 그대로 진료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결론을 내렸다(시체를 부검한뒤 손도 씻지 않고 다음 환자를 보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시대였다).

젬멜바이스는 신속히 손씻기 정책을 도입했고, 이후 빈 일반병원의 산욕열 사망률은 18%에서 1.2%로 극적으로 감소했다. 젬멜바이스는 ‘동물성 부패물질’이 의사나 환자를 통해 옮으며 이 부패물질과 접촉해 산욕열이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다. 다른 이론도 있었는데 르메르는 피가 공기에 노출되면 ‘고름 소체’가 반응해 발효가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이를 막기위해 젬멜바이스는 클로린이라는 화학물질을 이용한 소독을 시작했고, 르메르는 사포닌을 이용하여 상처의 화농성(고름이 생겨나는 과정) 진행을 막았다고 보고했다. 르메르는 석탄산을 소독용품으로 도입한 최초의 의사였다. 아직까지 세균이 상처 화농화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소독의 중요성은 점점 커졌다.





석탄산으로 수술실을 소독하다

소독이 공식 법칙으로 확립된 데는 영국 글래스고우대 교수이자 유망한 외과의였던 죠셉 리스터의 공헌을 뺄 수 없다. 장기 이론과 경합하던 세균 이론(germ theory)이 일련의 실험으로 증명되기 시작한 것도 소독법 확립의 주요 배경이 됐다. 1859년 파스퇴르는 유기체 혼합물 이라 할지라도 가열한 이후 일정한 조작을 하면 공기가 드나들어도 부패 현상 없이 보존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16년 뒤 영국의 존 틴달은 멸균된 공기 속에 유기체 혼합물을 부패 없이 보존해내면서 세균 이론을 증명했고 자연발생설은 완전히 근거를 잃게 되었다.

리스터는 세균 이론이 증명되기 전부터 염증과 화농화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상처가 부패한 환자로 가득찬 곳에서 생산되는 공기의 불순한 상태”가 화농화의 원인이며 공기나 산소보다는 ‘상처로부터 나오는 썩은 고름’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믿었다.

당시 글래스고우 진료소에 자신의 병동을 갖고 있던 리스터는 자신의 이론을 실험에 옮기기 시작했다. 우선, 환기와 청결을 통해 진료소의 위생 환경을 개선했다. 고름이 나오는 상처를 갖고 있는 환자들은 격리했고, 환자와 환자 사이를 오고가는 의사, 간호사, 간병인 모두 비누와 물로 깨끗이 손을 씻게 했다. 악명 높았던 글래스고우 진료소의 환경은 빠르게 개선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썩은 고름’ 자체를 막는 일이었다. 리스터는 상처의 부패와 화농화의 원인이 자연 유기물의 부패와 발효라고 유추했지만,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상처를 개방하거나 완전히 막아 봤지만 고름을 막는 데는 실패 했다.

파스퇴르의 발견, 즉 세균 이론은 막힌 고리를 잇는 계기가 되었다. 리스터는 상처의 부패와 화농화가 공기에 있는 작은 미생물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미생물이 상처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거나, 상처 조직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미생물을 죽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크레오소트를 소독약품으로 도입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대신 1865년 8월 복합 골절을 입은 11살 소년에게 석탄산 소독법을 처음으로 시도해 수술했고,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수술에 성공한 뒤 리스터는 이렇게 적었다. “소독법이 완전히 도입된 뒤 더 이상 내 병동에서 상처와 농양으로 공기가 오염되지 않게 되었다. 병동 조건은 그대로지만 성격은 완전히 새롭게 바뀌었다. 단 한 건의 농혈도, 괴저도 발생하지 않았다.”

소독법이 성공하면서 수술 범위도 늘어났다. 리스터는 일련의 결과를 모아 1867년 BMJ라는 의학학술지에 ‘수술 행위에서 소독 원칙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해 소독의 원칙을 확립하게 된다. 그가 만든 소독의 원칙은 다음과 같았다.

1) 수술 동안, 수술 후 세균이 상처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2) 상처 속 세균이 퍼져서는 안 된다.

3) 상처 밖 혹은 근처의 세균은 제거해야 한다.

4) 수술 도구, 드레싱, 집도의의 손은 석탄산으로 세척해야 한다. 리스터는 분무기로 석탄산을 뿌리는 방법을 이용해 복부 수술에도 성공했고, 이는 당시 청결법으로 수행한 난소 제거술보다 사망률이 25%나 낮았다.






이제는 수술해도 죽지 않아

당시 많은 외과의들이 스폰지나 손씻기를 이용한 청결법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러나 리스터가 소독법을 도입 했을 때만 해도 세균 이론을 둘러싼 논쟁이 진행 중이었다. 세균 이론에 대한 반감 혹은 거부감은 리스터식 소독법을 수용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앞서 병원 내 감염을 연구한 제임스 심슨 역시 주요 반대자였다. 그는 리스터의 세균(박테리아)을 ‘신화적 곰팡이’라고 불렀다. 많은 이들이 리스터의 세균론이 ‘상상’일 뿐이며 그의 방법을 ‘석탄산 방법’이라 폄하했다. 리스터의 방법이 널리 수용된 것은 10년이 지나서였다.

리스터의 소독법은 근대 외과학 발전의 시금석이 되었다. 병원의 이미지 개선뿐 아니라 병원 시스템이 성장하고 근대화된 중요한 계기였다.

소독법의 정립을 통해 병원은 비로소 ‘환자의 상처로부터 생긴 나쁜 공기로 가득한’ 공간이 아니라 세균 전파를 막는 소독 장비가 갖춰
진, 환자들을 더 잘 수용할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물론 리스터의 소독법만이 이를 일군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많은 의사들이 청결법을 이용했고 수술 및 병원 환경은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소독법이 일구어낸 것은 세균 전파를 막으면 더 나은 수술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약속, 즉 의학과 병원이 준 생명에 대한 약속이었다. 소독법을 통해 수술은 비로소 자신의 생명을 맡길 수 있는 의술이 됐다.







편집자 주
과학동아는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과 ‘수술의 비밀’ 3회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수술이 지금처럼 의학의 꽃으로 거듭난 과정과 의학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최은경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인문의학으로 박사를 받은 뒤 현재 서울대병원 의학역사 문화원 연구교수로 있다.
식민지 시대 결핵에 관해서 박사논문을 썼으며 질병사와 근현대 의료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leesy1318@gmail.com


이미지 출처│KBS, 위키미디어, istock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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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김상연 | 글 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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