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의 조상이라는 생각은 1987년 레베카 칸 미국 UC버클리 연구원(현 하와이대 인류학과 교수)팀이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으로 바뀌었습니다. 세계 각지의 현생인류가 갖고 있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는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왔거든요(2011년 11월호 인터뷰 ‘한중일은 하나의 인류’ 참조). 유전학자들이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의 조상이 될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된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현생인류가 태어난 장소와 시간을 따져 보니, 최초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15만 년 전 이내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그보다 오래 전부터 살았기 때문에 우리의 조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 연구 이후, 유전학자들이 대거 인류의 진화를 밝히는 데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이런 연구 대부분이 현재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유전자를 이용해 이뤄졌습니다. 오늘날의 유전자를 타고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셈입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유전자에서 시간을 유추하려면 간단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유전자 복제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수 즉 ‘돌연변이’는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중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현대 유전학에서 가장 중요한 이론인 ‘중립설(중립진화이론)’입니다.
돌연변이 ‘시계’가 개발되다
중립설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겠습니다. 생물의 유전자 부분(단백질을 만드는 부분)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났다고 해봅시다. 만약 그 돌연변이가 생물이 살아가는 데 해롭다면 생명체는 후손을 남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로운 돌연변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집니다. 반대로 삶에 유익한 돌연변이라면 그 생물체가 많은 후손을 남기겠지요. 유익한 돌연변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종의 모든 개체에게 퍼지고, 더 이상 돌연변이가 아니게 될 것입니다(모두 똑같은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이 돌연변이라고 알아볼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유전자 부분에 일어난 돌연변이는 사라져버리거나 알아볼 수 없게 돼, 오늘날 우리가 구분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알아볼 수 있는 돌연변이는 없는 걸까요. 단백질을 만들지 않는 부분 즉 비번역(noncoding)DNA에서 생겨난 돌연변이는 가능합니다. 비번역 DNA는 삶에 도움도 해도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후손을 많이 남기거나 적게 남기는 ‘선택’과무관합니다. 사라지지도 않고 전체 개체에 퍼지지도 않은 채 남게 되죠. 이 돌연변이의 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오직 시간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돌연변이는 우연히 그 빈도수가 늘어나거나 줄어듭니다. 이 말을 반대로 하면, 만약 돌연변이의 빈도 패턴을 알 수 있다면 그 생물 집단이 겪은 시간의 역사를 추적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중립설입니다.
한편 유전학자들은 이상한 점을 하나 더 발견했습니다. 사람의 유전자가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유전학자들은 이것도 중립설로 해석했습니다. “인간 유전자의 다양성이 적은 이유는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태어난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요. 인간이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오랫동안 각지에서 살아왔던 여러 화석 속 인류는 현생인류에 포함되지 않고 ‘친척’이 됩니다. 즉 직접적인 조상이 아니지요. 네안데르탈인이 바로 그 예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나왔습니다.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인들의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아프리카인의 유전자가 가장 다양성이 높았습니다. 다양성이 높을수록 태어난 지 오래 됐으니,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는 결론도 추가로 나왔습니다. 이것이 ‘약 15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현생인류가 태어났다’는 ‘완전대체론(아프리카기원론)’이 부상한 계기입니다.
‘돌연변이 시계’가 흔들리다
유전학을 이용한 초기 인류진화 연구는 모두 미토콘드리아 DNA를 이용했습니다. 당시 기술로는 30억 개의 염기서열로 이뤄져 있는 거대한 핵 DNA를 다루기 힘들었거든요. 하지만 미토콘드리아 DNA는 1만 5000개 미만이며 자료도 풍부하고 쉽게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핵 바깥쪽에 있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도 개체에 아무 영향이 없다고 생각했지요. ‘중립적’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1990년 말부터 중립설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를 따라 유전됩니다. 이 말은 만약 아들만 낳고 딸을 낳지 않으면 그 미토콘드리아의 계통은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그 계통이 지니던 고유한 돌연변이도 함께 사라지겠죠. 즉 과거에는 우리가 현재 관찰할 수 있는 것보다 미토콘드리아 DNA의 돌연변이보다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돌연변이 수를 바탕으로 추정한 그 생물 집단의 탄생 시점이 사실은 더 오래됐다는 뜻입니다. 돌연변이 수는 인류 진화의 역사를 밝힐 ‘시계’였는데, 그게 눈금이 부정확한 시계가 돼버린 셈입니다.
중립설이 부딪힌 더 큰 비판은 따로 있었습니다. 중립설은 비번역 DNA부분의 돌연변이가 개체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가설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연변이가 개체의 삶과 번식(재생산)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온 것입니다. 이전에는 전체 게놈 중에서 유전자가 차지하는 부위가 크지 않고 대부분은 의미가 없는 DNA 뭉치 즉 ‘쓰레기(정크)’라고 생각했습니다. 쓰레기는 개체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으니, 중립설과 잘 맞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쓰레기 DNA가 다른 유전자들을 조정하거나 신호를 주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과학동아 2013년 1월호 특집 ‘네오 DNA’ 참조). 돌연변이는 유전자에 있지 않더라도 삶에 유익한 영향을 미치거나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택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고, 역시 ‘돌연변이 시계’의 눈금은 부정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핵 밖의 DNA로서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미토콘드리아 DNA가 사실은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2000년대 이후 밝혀졌습니다. 핵 밖에서 신진대사를 조절한다는 것이지요. 당시 이런 연구 결과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학계에서 술렁대던 그 긴장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 뒤돌아보면, ‘세포의 에너지 공장’인미토콘드리아가 중립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 우스꽝스럽지만, 당시에는 중립설이 그만큼 막강했습니다.
인류의 기원 수수께끼는 제2라운드로
이제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해 기원을 거슬러간 수많은 연구들을 재검토 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더구나 유전학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DNA에서 시간을 유추하는 게 아니라, 아예 화석에서 직접 DNA를 추출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와 피를 섞었고, 유럽인의 경우 유전자의 4%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라는 사실이 2010년 밝혀졌습니다. 현생인류가 최근에 아프리카에서 기원해 다른 모든 인류 화석종과 아무런 유전자 교환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더 이상사실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70만 년 전의 말 화석에서 DNA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가 발표됐습니다. 그렇다면 70만 년 전의 인류 화석에서 DNA를 추출하는 일도 시간 문제가 아닐까요. 우리는 유전자로 시간여행을 할 뿐 아니라, 유전자를 이용해 직접 그 조상을 만나는 정말 놀라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윤신영
일러스트│김정훈
이상희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미국 미시건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2001년부터 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은 고인류학이며 인류의 두뇌 용량의 변화, 노년의 기원, 성차의 진화 등을 연구하고 있다. 암벽화, 화살촉 등 유적을 자료화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shlee@ucr.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