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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안데르탈인이야!”

만약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우선 네안데르탈인에 대해 잘 몰라 칭찬인지 흉인지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유럽 대륙에서 약 50만 년 전부터 2~3만 년 전까지 살던 친척 인류입니다. 먼 아시아에서 나고 자란 한국 사람에게는 낯선 것도 무리가 아니지요. 혹시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떠올릴 수 있다면 ‘나를 원시인이라고 부르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구체적으로 네안데르탈인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아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판단이 잘 안 설 것입니다.

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다릅니다. 아주 큰 모욕감이나 분노를 느낄 테니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럽 사람들에게 네안데르탈인을 닮았다는 말은 ‘넌 짐승이야’라는 말과 같았습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인류 친척인데, 왜 심한 욕의 주인공이 됐을까요.



창피한 친척

네안데르탈인은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간하기 전부터 발견됐습니다. 처음엔 괴상한 뼈 모양 때문에 관심을 모았지요. 하지만 이내 우리 현생인류와 관련이 있는지, 있다면 조상인지 여부를 놓고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제가 대학원 과정을 다니던 1990년대 미국 미시건대도 논쟁의 중심지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고인류학계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와 관계가 있다는 주장과 없다는 주장이 대립했습니다. 학계에서는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 강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연구는 주로 화석을 통해 이뤄졌는데, 네안데르탈인 화석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 현생인류의 인골에서도 보였습니다.

자연히 네안데르탈인과 인류가 별로 관련이 없다는 ‘반대파’는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은 학계 밖에서 일어났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는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관계가 없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은 밖에 내놓고 말하기 창피한 친척이었지요. 서구 사람들이 네안데르탈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세기 초, 프랑스 라 샤펠 지역에서 발견된 화석 한 점입니다. 두개골과 몸통, 팔다리 뼈가 남은 이 화석의 주인공은 좀 구부정한 모습을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이가 들고 생활이 험해서 관절이 망가졌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발견 당시에 사람들은 다르게 받아들였습니다. 둔하고 구부정하며 멍청한 모습이라고 낙인을 찍었지요. 화석이 발견된 다음 해인 1909년에 영국 런던에 퍼진 네안데르탈인의 상상도는 바로 이런 낙인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구부정한 몸, 털로 덮인 피부, 입은 반쯤 벌어져 있고 게슴츠레한 눈은 우락부락하고 둔한 눈두덩에 가려 있습니다. 이마는 좁고 뒤로 납작하게 누워 있습니다.
 

식민지 원주민을 의식한 투박한 외모

그런데 이런 외모, 어디에서 많이 본 듯 하지 않나요. 바로 유럽 사람들이 생각했던 식민지 사람들, 즉 ‘미개한 원주민’의 모습입니다. 서양 사람들에게 네안데르탈인은 무식하게 힘으로 동물을 잡아 먹고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동굴 속을 헤매던, 사람이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다가 훤칠한 이마와 강한 턱, 굳게 다문 입을 가진 멋진 외모의 크로마뇽인(유럽인의 조상이라고 생각한)에게 밀려나 멸종되고 말았고요.

서양 사람들에게, 크로마뇽인은 세련된 사냥 기술과 언어, 문화를 지닌 진정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유럽인이 식민지 사람들을 문명화시켰다는 논리와 닮지 않았나요. 이렇게, 서양 사람들이 네안데르탈인을 바라본 시선에는 이들이 식민지 원주민을 바라보던 시선이 스며 있었습니다. ‘넌 네안데르탈인이야’라는 말이 욕처럼 들린 이유를 짐작할 수 있지요. 이런 인식은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1990년대에는 유전학을 이용해서도 증명되는 듯 했습니다. 스반테 패보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박사팀이 네안데르탈인 화석에서 직접 추출한 DNA를 분석해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DNA가 다르며 전혀 섞이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를 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의 조상일 수 없다는 뜻이지요. 미토콘드리아 DNA 1만 3000개의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와 핵 DNA 100만 개를 분석한 결과도 같았습니다. 이제 네안데르탈인은 인류의 친척이 아니라는 사실은 거의 기정사실처럼 됐습니다.



네안데르탈인도 말을 했다?

그런데 다시 10년 뒤, 세상을 놀라게 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패보 박사가 더 혁신적인 방법으로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을 추출해 분석한 것입니다. 30억 개가 넘는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대작업이었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유전자에 영향을 남겼으며, 유럽인들 역시 4% 정도는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유럽인들은 네안데르탈인의 피를 물려받은 후손이었습니다(과학동아 2011년 3월호 특집 ‘안녕! 네안데르탈인’ 참조)!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유전자의 중요성입니다. 어쩌다 섞인 불필요한 유전자가 아니라 각각 후각, 시각, 세포분열, 정자 건강성, 평활근 수축 조절 등을 담당하는 생존에 필수적인 유전자들이었습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언어와 관련된 폭스피투(FOXP2) 유전자입니다.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최근 이 유전자가 발견된 후, 학자들은 과연 네안데르탈인에게도 이 유전자가 있을지 관심을 가졌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이 말을 할 수 있었는지, 만약 한다면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는지는 오랜 논쟁 주제였거든요.

네안데르탈인이 말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FOXP2 유전자가 인류와는 다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연구 결과는 학자들을 한번 더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의 FOXP2 유전자는 현생인류와 똑같았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정말 말을 했던 것일까요.
학자들은 다른 연구에 돌입했습니다. 현생인류는 대뇌가 좌우 비대칭입니다. 이것은 언어가 특히 좌뇌와 관련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좌우 비대칭 뇌는 몸의 좌우 중 자주 쓰는 쪽을 만듭니다. 그래서 오른손잡이나 왼손잡이처럼 한손잡이가 생깁니다.

만약 네안데르탈인이 한손잡이라는 사실을 알면 뇌가 언어를 쓸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데이비드 프레이어 미국 캔자스대 인류학과 교수팀이 연구한 결과,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와 마찬가지로 9:1로 오른손잡이가 많았습니다. 정말 언어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입니다.






당신 안의 네안데르탈인, 내 안의 동남아시아인

연구를 통해 차츰 드러난 네안데르탈인의 모습은 더 이상 짐승처럼 울부짖는 미개한 원시인이 아니었습니다. 도구를 사용했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사냥을 하고 채집을 했습니다. 적갈색 안료를 사용해 몸을 치장할 줄 알았으며, 죽은 사람을 정성을 들여 매장하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사람 못지않게 유창한 말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현생인류의 독창적인 발명품이라고 생각했던 동굴 벽화 역시 네안데르탈인이 먼저 시작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역사는 한 바퀴 돈다고 하지요. 대표적인 네안데르탈인 유적지이자 20세기 인종주의의 최고 온상이었던 독일에서는 최근 네안데르탈인을 조상으로 인정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나는 네안데르탈인입니다(Ich bin ein Neandertaler)’라고 쓴 로고가 여기저기 걸려 있습니다. 인종 편견이 서린 시선, 식민지를 향한 멸시의 시선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가 됐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한국도 조상에 대한 관심이 큰 나라입니다. 자랑스런 민족의 자손임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합니다. 자랑스러운 조상은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조상은 무엇일까요. 학교에서는 한민족의 조상이 동북아시아인 시베리아에서 왔다고 배웁니다. 그런데 만약, 실은 동남아시아에서 왔다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거부감이 들까요.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거부감이 혹시 지금 한국인들이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갖고 있는 편견에서 나온 것은 아닐지를요. 그렇다면, 20세기 초 유럽인들이 네안데르탈인을 보며 갖던 편견과 무엇이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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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윤신영 | 글 이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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