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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나 졸리는 왜 유방제거수술을 받았나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10년 가까이 투병하다가 56세에 타계했다. 어머니는 첫 손주를 보고 품 안에 데리고 다닐 때까지는 살았지만, 내 다른 아이들은 외할머니의 사랑과 자애로움을 체험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지난 5월 14일자 미국 뉴욕타임스 여론면에 실린, 세계적인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기고문 ‘나의 의학적 선택(My Medical Choice)’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머니를 유방암으로 잃은 졸리는 유방암 관련 유전자 검사를 했고, 그 결과 자신도 브라카1(BRCA1)이라는 유전자가 변이형이어서 일생 동안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50%라는 진단을 받았다. 고민 끝에 졸리는 여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유방을 들어내기로 결심했고 올해 수술을 받았다.

졸리의 기고문은 큰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 CNN의 한 여성앵커는 자신도 유방절제술을 받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졸리나 이 앵커가 여성의 상징을 희생할 결심을 할 정도로 유방암에 극단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브라카1’의 실체는 무엇일까.

 

 
1994년 유방암 유전자 발견
과학자와 의사들은 오래전부터 일부 암의 경우 가족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특히 유방암과 난소암, 대장암 등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연구자들은 그 원인이 특정유전자의 돌연변이일 것으로 추정했다.

메리-클레어 킹 미국 UC버클리의 교수는 유방암 환자들의 가계도를 바탕으로 게놈을 분석한 결과 17번 염색체에 관련 유전자가 있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1990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그러자 세계 곳곳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유방암 유전자 사냥에 뛰어들었고 1994년 마침내 마크 스콜닉 미국 유타대 교수팀이 유전자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이 유전자에 BRCA1(Breast cancer 1, early onset의 줄임말로 ‘브라카원’이라고 발음한다), 즉 유방암 제1유전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듬해 새로운 유방암 유전자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고 브라카2(BRCA2)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들 유전자가 유명해진 건 브라카1이나 브라카2에 변이가 있으면 유방암에 걸릴 위험성이 대략 80%나 되기 때문이다. 보통 여성들이 5% 미만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확률이다. 하지만 이들 유전자에서 비롯된 유방암은 전체 유방암의 5~10% 수준이다. 따라서 친척 가운데 유방암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해서 미리 두려움에 떨 건 없다.

브라카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면서 변이의 종류가 수백 가지이고 그 가운데 일부만이 위험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종에 따라 다양한 변이가 있는데, 브라카1의 경우 주로 동유럽에 거주하던 아시케나지 유대인들에게서 보이는 변이가 특히 위험하다. 브라카 유전자 변이는 우성으로 유전된다. 즉 부모에게서 받은 유전자 쌍 가운데 하나만 변이형이라도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모계뿐 아니라 부계에서도 유방암 환자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아무튼 가까운 혈연관계인 사람이 유방암에 걸렸다면, 안젤리나 졸리처럼 만약을 위해서 유전자 검사를 해보는 게 좋다.
 






손상된 DNA복구 과정에 관여
브라카1과 브라카2는 우리 몸에서 원래 어떤 역할을 하는 유전자일까. 아마도 정상 유전자는 암 발생을 억제할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할 수 있다. 지난 20년 가까이 두 유전자의 역할에 대해 많은 사실이 밝혀졌지만 아직까지 규명하지 못한 측면이 많다. 그만큼 복잡하다.

유전자는 특정 단백질을 만들어 어떤 기능을 드러낸다. 브라카1 유전자가 만든 브라카1 단백질은 아미노산 1863개로 이뤄진, 꽤 커다란 단백질이다.

여러 작용을 하는데, 암과 관련해서는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과정에 참여한다. 예를 들어 DNA이중나선은 자외선이나 유해화합물에 의해 사슬이 끊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손상이 방치되면 세포는 분열을 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 이때 브라카1 단백질은 DNA 복구과정에 참여하는 다른 단백질들의 활성을 억제하거나 촉진해 정밀한 복구가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보인다. 브라카1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DNA복구가 부정확하게 일어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보면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바뀐다.

브라카1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유독 유방암과 난소암 발병만 극적으로 높아지는 이유는 아직 모른다. 아마도 X염색체의 기능 조절과 관련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참고로 이 유전자가 변이형일 때 대장암과 췌장암, 전립선암에 걸릴 위험성도 약간 높아진다.

한편 브라카2 유전자가 만드는 브라카2 단백질은 아미노산 3418개로 이뤄진 거대한 단백질로(단백질의 평균 아미노산 개수의 10배) 2010년에야 전체 단백질이 분리·정제돼 그 특성을 파악했을 정도로 연구하기가 어려운 대상이다. 브라카2 단백질 역시 손상된 DNA 복구에 관여한다. 브라카1과 브라카2 단백질은 복잡한 DNA 복구 메커니즘에 참여하는 수십 가지 단백질 가운데 핵심 역할을 하고, 둘 사이에도 상호작용한다는 증거가 있다.

안젤리나 졸리는 기고문에서 유방 조직을 없애고 임시 충전물을 넣는 8시간에 걸친 수술이 끝난 뒤 깨어나서 체액을 배출하는 튜브가 꽂혀있는 자신의 유방을 보니 ‘SF영화’의 한 장면을 연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9주 뒤 성형수술을 받고 예전의 아름다운 가슴을 되찾고 나서는 “나는 확고한 선택을 했고 내 여성성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결단에 힘이 되어준 사실혼 관계인 배우 브래드 피트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나에게 브래드 피트 같은 사랑스럽고 힘이 되는 상대가 있다는 건 행운이다. 아내나 여자친구가 나 같은 일을 겪게 된다면 남자의 존재가 그 과정에서 무척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브래드는 수술 과정에서 늘 내 곁을 지켰다.”




2013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글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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