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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을의 슬픈 감정노동, 상처입은 좌뇌 자극하자

감정노동이란 말이 부쩍 많이 회자되고 있다. 요즘은 어느 직업이나 서비스가 좋지 않으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므로 누구나 어느 정도 감정노동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몸을 쓰는 직업 중에서도 극한직업이 있는 것처럼 감정노동도 마찬가지다. 정말 이 세상에는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 거기에는 요즘 흔히 말하는 ‘갑의 횡포’를 부리는 사람들도 포함된다. 고객의 모든 불평과 불만을 들어주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소위 ‘진상’은 재앙에 가깝다.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진상인 갑을 만난다면 상대방의 분노와 피해의식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분노나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마치 불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불쏘시개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불이 더 커지듯이 그들은 자기 분노에 조금이라도 반발하면 더욱 분노를 키워갈 뿐이다. 그들이 그처럼 절제가 안 되는 이유는 스스로 권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갑의 입장에 서면 을에게 힘을 행사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공격성과 무관하지 않다. 더욱이 공격성은 자기를 유지하려는 본능의 하나로 무의식적으로 행사할 가능성마저 있다.

대뇌피질을 지배하는 변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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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승객을 보살펴야 하는 비행기 승무원은 감정노동이 심한 직업이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우리나라의 리더들이 조직경영에서 재무와 안전의 중요성은 깨닫고 있으면서 인간관계의 중요성은 아직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것이 큰 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요즘 감정노동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갑의 횡포에 무방비로 노출된 감정노동자들로서는 마치 불이 자기 몸에 옮겨붙는 것 같은 상처를 받는다. 이때 조금이라도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들은 상처를 덜 받는다. 그러나 자기 입장을 이야기할 수 없고 오로지 상대방의 분노와 불평불만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더불어 불안, 분노, 피해의식, 두려움, 공포 등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런 감정은 우리 뇌에 작용해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킨다. 온몸이 아프고, 근육이 긴장되면서 뒤틀리고, 심장이 빨리 뛰고, 소리에 민감해지고, 소화가 안 되고, 잠이 안 오고, 식욕이 없어진다.

스트레스가 만성이 되면 우리 몸의 면역계에 문제가 생긴다.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적으로 삼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해결하고자 한다. 그런데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면역계 자체에 문제가 생긴다. 흔히 스트레스가 모든 병의 근원이라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더욱이 인간의 뇌에서 감정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인간의 대뇌는 크게 세 부위로 나뉜다. 먼저 우리가 인간으로서 고도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기억력, 집중력, 판단력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이다. 그리고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와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로 생존할 수 있도록 먹고 마시고 눈 뜨고 잠자는 일을 담당하는 뇌간이 있다.

그런데 이 셋 중에서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가 가운데에 자리잡고 대뇌피질과 뇌간 사이에서 정보를 주고받는 작용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뇌피질(이성)에서 변연계(감정)로 명령을 내리는 네트워크보다 반대의 네트워크가 더 발달돼 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프로이트가 말한 ‘생각이 엔진이라면 감정은 가솔린’이고, 루소의 ‘생각이 인간을 만들어간다면 감정은 인간을 이끌어간다’는 주장이 입증된 셈이다.

예를 들어, 위험에 처했을 때 내가 무엇 때문에 위험에 처했는지, 어떻게 해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가 먼저 생각나지 않는다. 오직 그 순간에는 온몸이 차가워지고 심장이 빨리 뛰고 머릿속이 하얘질 뿐이다. 불안이란 감정은 우리 몸에 작용해 그런 반응을 일으킨다. 그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하게 된다.

특히 변연계는 감정, 성욕, 동기, 공격성, 기억, 학습, 후각 등을 담당하는 중추다. 즉, 감정이 학습에도 영향을 주고 기억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감정이 계속 상처받는다면 그 개인의 삶 또한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핵심 심리인 나르시시즘에도 감정이 주는 영향은 지대하다. 언어폭력이 육체폭력보다 더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마음의 환기가 필요해
인간은 감정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또한, 긍정적인 감정, 기쁨, 즐거움, 희망 등을 느낄 때 우린 행복하다. 반대로 우울하면 이런 긍정적 감정이 가장 먼저 없어지면서 분노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다.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가면우울증’이나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에 걸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속으로는 어떤 감정을 느끼든 상관없이 겉으로는 계속해서 친절하고 웃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성형외과에서 입꼬리를 올리는 수술을 받거나 미소교정기를 사용하면서까지 웃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도 아닌데 그런 상황에 놓여야 하니 당연히 마음에 상처를 입고 우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자신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생긴다. 더욱이 그동안 감정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못했으므로 “뭐, 그 정도 일을 가지고 힘들어 해” 하며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거나 회피하다 보니 상처는 더 깊어진다. 그런 상태가 깊어지면 겉으로는 명랑한 모습으로 가장하고 웃고 떠들지만 속으로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있는 가면우울증을 앓게 되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로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에서 일하는 청소년들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들 역시 고스란히 감정노동의 힘겨움에 노출돼 있다. 특히 감정적으로 가장 변화가 극심한 청소년 시기에 그와 같은 경험은 그들의 성장과 발전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청소년기는 뇌의 발달이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분노나 두려움과 같은 감정의 조절이 어렵다. 따라서 이 시기에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으면, 충동적인 성향이 생겨 의도치 않은 사고를 저지를 수 있다. 그러므로 청소년 시기에는 특히 불필요한 감정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주위에서 도와줘야 한다.

또한, 청소년 시기에는 무엇보다도 감정의 중요성을 알고 절제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감정노동을 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경험하는 분노를 어떻게 표현하고 절제할 것인가도 익혀야 한다. 성장기에 그러한 부정적인 경험들이 뇌의 발달과 연관된다는 보고도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신선한 공기로 환기시켜야
성인 역시 감정노동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치유 방법을 알아야 한다. 크게는 감정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기업과 우리 사회에서 그 방법을 고민해야겠지만, 이 지면을 통해서는 개인이 쓸 수 있는 치유방법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방법의 하나로 ‘마음의 환기’가 있다. 방 안의 공기를 환기시키지 않으면 답답해지는 것처럼 마음도 때때로 묵은 먼지와 공기를 내보내고 새롭고 신선한 공기로 갈아 넣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화 관련 증후군으로 화병이 있다. 화병은 자기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다. 그래서 화병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온몸에 불이 돌아다니는 것 같다”, “마음에 돌멩이가 자리 잡은 것 같다”고 한다. 불안장애, 우울장애, 신체화장애(뚜렷하게 어디가 아프거나 병이 있지 않은데도 병적 증상이 나타나는 것)가 합쳐져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시골에 가 보면 거름을 모아둔 두엄더미에서 시간이 지나면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거름이 안에서 차곡차곡 쌓인 채로 썩다 보면 생기는 현상이다. 화병 역시 그러한 현상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감정 노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일수록 이 화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안으로는 차곡차곡 상처가 쌓여 썩어 가는 데도 겉으로는 “맞습니다, 고객님” 하다 보니 자신에 대한 무력감, 직업에 대한 회의, 분노와 피해의식에 병들어 가는 것이다. 더 나쁜 건 그것을 자신도 모르게 가족이나 그 밖의 가까운 주위 사람들에게 쏟아냄으로써 2차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좌뇌 자극으로 치유 가능
언젠가 직업상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해야 하는 일을 하는 부서의 팀장을 상담한 적이 있다. 부탁을 거절당하는 경우 온갖 욕을 퍼붓고 협박까지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참아야 하는 직원들에게 ‘우리 일이 그렇지 뭐’하고 말았다고 했지만, 수위가 점점 높아지니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하는지 상담을 청한 것이다.

그때 권유한 것도 마음의 환기였다. 직원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치유될 테니 한 번 그 방법을 써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효과가 놀라웠다고 한다. 단지 힘들다는 이야기를 서로 털어놓은 것뿐인데, 괴로움이 반이상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우리 뇌는 좌뇌에 언어 중추가 있다. 그런데 우울증에 걸리면 좌뇌의 기능부터 감소한다. 우울증 환자가 어려움을 털어놓고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등을 말로 하다 보면 좌뇌 전체가 자극을 받아 우울증이 낫곤 한다.

물론 감정노동자를 배려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서로 감정을 존중하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을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감정의 어원은 ‘움직이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movere’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동기부여인 ‘motivation’의 어원도 같은 ‘movere’라는 점이다. 인간의 감정을 먼저 움직여야 동기부여도 가능하다. 먼저 상대의 감정을 존중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갑을 관계도 사라지지 않을까.


양창순_mind-open@mind-open.co.kr
연세대 의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양창순 신경정신과, 대인관계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진실한 마음을 얻는 법’을 비롯해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2009년 2월에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주역과 정신의학을 접목해 두 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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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양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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