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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에 묻는다] 공각기동대 vs. 생명창조자의 율법

◇안 어려워요 

 

(※편집자 주 본문은 해당 작품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다면 먼저 작품을 찾아보기를 권합니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는 오랜 진화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습니다. 어떤 생명체는 의식을 갖출 정도로 진화했고, 그중에서도 우리 인간은 문명을 건설할 수 있을 정도의 지성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기계도 점점 복잡해지다 보면 저절로 의식이 생길 수 있을까요?

 

●공각기동대 

공각기동대는 일본의 만화가 시로 마사무네의 SF만화입니다. 원작 이후에 여러 차례에 걸쳐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최근에는 2017년에 스칼릿 조핸슨이 쿠사나기 역을 맡은 할리우드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이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겁니다. 고스트(육체를 움직이는 의식) 해킹을 통한 테러와 암살, 기억 조작 등이 가능한 세계에서 쿠사나기는 공안 9과의 다른 요원들과 함께 비밀리에 여러 사건을 해결합니다.

 

조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외를 담당하는 부서인 6과 과장 나카무라가 찾아옵니다. 나카무라는 회수한 로봇의 내용물을 넘겨달라고 9과에 요구합니다. 9과 과장인 아라마키가 이유를 묻자 나카무라가 사정을 설명합니다. 
로봇에 들어 있는 존재는 뛰어난 해커로 알려진 ‘인형사’입니다. 6과는 계속해서 인형사를 추적해 왔고, 행동 패턴을 조사해 인형사가 기밀 로봇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유도했던 것이죠. 아라마키는 6과가 인형사의 고스트만 확보하고 본체를 암살했다고 추측합니다.
그때 갑자기 로봇이 입을 엽니다. 본체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는다며 처음부터 본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로봇 안으로 들어온 건 의도적이었다고 말합니다. 
인형사는 깜짝 놀라는 인간들에게 자신은 인간도 인공지능도 아닌 정보의 바다, 즉 네트워크에서 발생한 생명체라고 주장하며, 망명을 신청합니다.

 

인형사는 일본 외무성이 합법적이지 않은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기업의 뒷조사나 정보 수집, 공작 같은 일들이죠. 그런데 이 해킹 프로그램이 네트워크를 돌아다니면서 기업 데이터나 게임과 융합하다가 자의식을 갖게 된 겁니다. 
프로그램이 갑자기 자신이 생명체라는 소리를 하자 외무성은 오류로 판단하고 인형사를 네트워크에서 분리해 로봇 몸으로 옮겼던 거죠. 인형사를 그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비밀을 누설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소멸한 줄 알았던 인형사는 쿠사나기의 뇌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이후 대테러 작전에서 소년을 죽여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 쿠사나기가 도주할 때 인형사가 쿠사나기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생명체로서 네트워크에 자손을 남기고 싶으니 자신과 완전히 융합해 달라는 겁니다. 쿠사나기는 인형사의 제안을 수락한 뒤 광대한 네트워크의 세계로 떠납니다.

 

 

●생명창조자의 율법 

 

생명창조자의 율법은 영국의 SF작가 제임스 호건의 1983년 장편소설입니다. 지구에 아직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기 전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에 외계 우주선이 착륙하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외계 우주선은 무인탐사선으로, 스스로 공장을 짓고 다양한 로봇을 생산하도록 돼있습니다. 그런데 착륙하기 전에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로봇의 설계도가 불완전했고, 결국 로봇들은 마치 생명체처럼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진화하게 됩니다.

 

 

타이탄의 로봇들은 오랜 세월 동안 진화를 거듭하며 자의식을 획득했고, 지구의 탐사선이 도착했을 때쯤에는 지구의 중세 시대와 비슷한 문명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만든 존재를 생명창조자라 부르며 숭배하는 종교를 갖고 있으며, 왕과 최고 성직자의 지배를 받습니다. 교리와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은 불경한 일입니다.
티르그는 타이탄의 크로악시아 왕국에서 사는 교사입니다. 어느 날 재판에서 세상이 둥글다고 주장한 친구를 변호한 티르그는 자신을 잡으러 온 병사들을 피해 좀 더 자유로운 왕국인 카르토지아로 도망칩니다. 크로악시아의 병사들에게 따라잡혀 위기에 놓인 티르그는 타이탄에 착륙한 인간들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합니다. 
타이탄의 로봇들은 기계가 아닌 존재(인간)와 그 존재에게 봉사하는 생물(인간의 기계)에 놀라움을 느낍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던 겁니다.

 

 

사실 타이탄에 착륙한 인간인 잠벤도르프는 우주비행사가 아닙니다. 초자연 현상을 꾸며 돈을 버는 유명한 사기꾼이죠. 애초에 잠벤도르프가 우주 탐사선에 타게 된 건 우주 환경이 초능력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치 빠른 잠벤도르프는 고위층의 인간들이 로봇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타이탄의 자원을 착취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챕니다. 이들은 전제주의 국가라 통제하기 쉬운 크로악시아가 타이탄을 통일할 수 있도록 무기를 제공해 돕고 있었습니다. 
잠벤도르프는 능숙한 사기술을 이용해 생명창조자의 전령인 척하며 계시를 내립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 서로 죽이지 말 것이며, 이웃을 도울 것이고,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등의 교리를 가르치죠. 잠벤도르프의 활약 덕분에 음모는 분쇄되고, 음모를 꾸민 자들은 실각하고 맙니다. 그리고 타이탄의 로봇들은 밝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 지성이 있는 기계가 저절로 생길 수 있을까?
 

 

진화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도 있다


이번 호에서는 인간(그리고 외계인)의 손을 벗어나 저절로 자의식을 얻은 존재가 등장하는 작품을 다뤘습니다. 지금 우리가 활용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스스로 학습하며 발달할 수 있지만, 아직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혹시 지금 이 순간 아무도 모르게 인터넷 네트워크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 
공각기동대의 인형사가 처음부터 의식을 가진 인공지능 프로그램이었던 건 아닙니다. 아마 학습이 가능하고 어느 정도 자율성을 지닌 해킹 프로그램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네트워크 속에서 다른 여러 프로그램과 융합하면서 점점 복잡해졌고 자의식이 생겨났습니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현재 과학자들이 개발 중인 인공지능 프로그램도 더 복잡해지다 보면 저절로 의식을 갖게 될까요?
불가능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진화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기본 원리는 간단합니다. 먼저 프로그램이 임의로 알고리즘을 여러 개 만든 뒤 이미지 인식과 같은 간단한 일을 시킵니다. 프로그램은 알고리즘의 성과를 비교해 가장 뛰어난 결과를 낸 알고리즘을 골라낸 뒤 코드를 살짝 지우거나 변화시켜 ‘변종’을 만들어냅니다. 성과가 나쁜 알고리즘은 도태시키고요. 그리고 이 변종까지 포함해 다시 위의 과정을 반복합니다. 계속 반복되면 인간이 아무것도 입력하지 않아도 알고리즘이 진화하며 점점 좋아집니다. 아주 오랫동안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중에 어떤 프로그램이 될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소개한 적은 없지만, ‘시뮬레이션 가설’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초월적인 존재가 만든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라는 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이 컴퓨터 속에서 사는 인공지능이 되는 셈이죠. 혹은 먼 훗날 인간의 문명이 그런 수준에 도달한다면, 우리가 그런 시뮬레이션 세상을 만들지도 모릅니다. 
생명창조자의 율법을 쓴 제임스 호건의 또 다른 작품인 ‘별의 계승자’ 4권 ‘내부우주’에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강력한 양자컴퓨터 내부에서 우연히 정보로 이뤄진 우주가 생겼고, 그 속에서 의식 있는 생명체가 살고 있습니다. 이들의 의식이 현실 세계의 육체를 장악하면서 사건이 벌어지죠.
그런데 인공지능은 하드웨어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아무리 소프트웨어가 스스로 진화하고 복잡해져도 하드웨어를 인간이 발전시켜주지 않으면 고도의 인공지능이 생기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생명창조자의 율법에 나오는 기계 생명체는 재료만 무기물일 뿐 지구의 생명체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화했습니다. 불완전한 설계도가 유전자 역할을 하면서 돌연변이를 만들어내고, 자연 선택의 원리에 따라 진화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로봇공학이 발전한다면, 스스로 복제해 자손을 생산하는 로봇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생명창조자의 율법과 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죠. 
물론 우리는 적절한 환경에서 생명과 지능이 탄생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모릅니다. 지구에 생명체가 생겨난 게 굉장히 확률이 낮은 우연이었을 수도 있죠. 그렇다면 우리가 아무리 터전을 만들어 준다고 해도 저절로 의식과 지능이 생기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언젠가 인공이든 아니든 다른 생명체를 볼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202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고호관 작가
  • 에디터

    이영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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