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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벌써 학교에 다닌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죠. 대견하기도 했고요.


입학식을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가끔 교육과 관련된 방송을 즐겨보곤 하는데 때마침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가 있는 부모를 위한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격려하는 방법 등에 대한 내용을 기대했지만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애국가를 미리 가르쳐야 한다’ ‘한글을 가르쳐야 한다’ 등의 내용이 TV 화면을 스쳐지나갔습니다.

잠시 생각이 갸우뚱 했습니다. 아이를 챙겨주는 건 부모의 도리가 맞지만 학교에 가면 배울 수 있는 것을 미리 부모가 가르쳐야 한다니. 그럼 학교에서는 무엇을 하는 걸까요. 그리고 부모가 다 가르쳐 버리면 아이들은 무엇을 스스로 깨우치는 걸까요.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다른 아이는 할 줄 아는 것을 우리 아이가 못한다는 것을 느끼면 아이의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내용입니다. 조금 의아했습니다. 이 말은 쉽게 풀이하자면 다른 아이가 할 줄 아는 만큼은 미리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아이만큼’이라는 기준도 모호한데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에 비해 무언가를 못한다는 것을 참지 못하는 우리나라 부모들 특유의 조바심도 반영됐겠죠. 그렇지만 수학을 더 잘하는 아이도 있고, 수학은 못하지만 친구들과 갈등을 잘 풀어나가는 아이도 있습니다. 재능이나 능력, 사회성이 똑같을 수는 없으니까요.

한편에선 국립국어원이 지난 3월 초 신조어를 정리해 발표했습니다.

 


이 중 눈에 띄는 몇가지가 있었습니다. 펭귄부부(가족의 생활 방식을 모두 어린 자녀에게 맞추는 부부), 등골 백팩(부모에게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될 만큼 비싼 책가방) 등이 그것입니다. 왜 이런 용어들이 인터넷에서 회자돼 신조어로 정리됐을까요.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맞추다 보니 다른 아이가 매고 다니는 고가의 가방을 아무리 비싸도 덥석 사주는 세태를 풍자한 것이겠지요. 취학 전 자녀에게 ‘다른 아이만큼’ 가르쳐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런데 남극의 황제펭귄이 이 소식을 들으면 서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펭귄이 한겨울 평균 기온이 영하 20℃인 남극의 혹독한 추위에 자식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다는 점에선 펭귄부부라는 말이 분명 그럴듯해 보입니다. 발 위에 알을 올리고 수컷 펭귄들이 최대한 몸을 붙여 거대한 ‘토처(일종의 방패)’를 만들어 찬 바람을 막으면 암컷은 추위를 뚫고 바다로 나가 먹이를 사냥해 돌아오죠.

하지만 펭귄의 생태는 혹독한 생존 조건에서 자식을 부화시키고 먹을 것을 주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입니다. 각자 발 위에 알을 품고 차가운 눈보라 속에서 의연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눈물 겨울 정도죠. 먹을 것과 입을 것, 놀 것들이 넘치고 풍요로운 우리 인간들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물론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최고의 가치가 돼버린 사회와 남극의 혹독한 겨울이 다를 바 없다고 반박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극한의 환경에서 자식을 챙기는 것과 극한 경쟁의 사회에서 자식을 챙기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자식의 모든 일에 부모가 관여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판단하고 삶을 헤쳐 나가는 지혜와 용기, 세상은 살아갈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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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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