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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세상을 속인 과학 사기극

만우절 기획







웹툰 중에 ‘무한동력’이라는 만화가 있어. 무한동력을 연구하는 한 기술자와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생활의 에피소드를 그린 작품이야. 무한동력 혹은 영구기관이라고 불리는 기계는 연료나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아도 영원히 움직일 수 있는 동력장치를 말해.

누구나 잘 아는 ‘에너지보존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결코 손실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뀌지. 문제는 에너지의 형태인데, 어떤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일부가 전혀 엉뚱한, 필요없는 형태로 바뀌는 경우가 많아. 예를 들어 화석연료에 에너지가 100만큼 있다면 이 화석연료를 이용해 전기 에너지를 만들 때 전기에너지는 20만 만들어지고 80이 열 에너지로 바뀌는 거지. 에너지 효율이 20%밖에 안되는 셈이야. 영구기관은 에너지 효율이 100%야.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에너지 효율을 50%도 못 만들어. 바꿔 말하면 영구기관을 개발하는 사람은 돈과 명예를 동시에 얻는 ‘대박’을 낼 수 있는 거야.

 

1872년, 미국에는 존 킬리라는 사람이 있었어. 기술자와 자본가 등을 모아서 1만 달러를 출자해 ‘킬리 모터회사’를 설립한 인물이지. 킬리 모터회사는 영구기관을 개발하는 회사였어. 설립자인 킬리는 물의 ‘공감적 진동’을 이용하면 에너지가 많이 발생한다며 ‘양동이 하나만큼의 물이 세계를 바꾸는 힘을 가졌다’고 주장했어. 물의 공감적 진동이 뭐냐고? 나도 모르겠으니까 묻지마. 예나 지금이나 사기꾼들은 온갖 그럴싸한 말을 갖다 붙여서 설명하잖아. 하나씩 따지고 들면 무슨 소리인지 당최 모르겠고 말이지. 여튼, 회사를 세운 지 2년 만에 킬리는 필라델피아에서 내로라하는 부자들을 모아서 본인이 영구기관이라고 주장하는 킬리 모터를 공개 실험하고 투자를 받았어. 웃기는 건 그 누구도 킬리 모터를 정밀하게 조사하지 않았다는 거야. 투자자들은 1898년 킬리가 사망한 뒤에야 킬리 모터는 바닥 아래 숨겨진 압축공기 탱크를 이용해 영구기관처럼 보이게 만든 기계란 것을 알게 됐지. 하지만 어쩌겠어, 자신들을 속인 킬리는 20년 가까이를 사치스럽고 즐겁게 산 뒤 사망한 후였는 걸.

킬리처럼 ‘그럴싸한’ 말로 사람을 속일 수 있는가 하면 권력을 등에 업고 우기는 일도 있어. 말도 그럴싸한데 힘으로 억누르니 믿기 싫어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거지. 구 소련의 과학자 트로핌 리센코 말이야. 1898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그는 소련의 농업을 파탄낸 생물학자야. 1929년 ‘춘화처리’라는 방법으로 봄에 심을 수 있는 밀 종자를 만들 수 있다고 발표했어. 원래 밀은 겨울에 심어서 추운 겨울을 지나야만 봄에 싹을 틔우거든. 그런데 굳이 겨울을 나지 않아도 밀을 기를 수 있게 한다는 거지. 게다가 이 종자는 세대가 지나도 이 형질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고 리센코가 주장했)으니 농가 입장에서는 아주 귀가 솔깃해지는 방법이었어. 리센코는 스탈린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1930년대에는 자신만의 학술지를 만들기까지 해.




문제는 리센코가 멘델의 유전법칙을 정면으로 반박했다는 거야. 후천적으로 얻은 유전 형질이 유전된다고 주장했거든. 멘델 유전학자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며 리센코는 자신의 이론이 당시 소련의 국가 철학인 변증법적 유물론(헤겔의 정신철학과 마르크스의 물질론을 적당히 장점만 섞어서 만든 그럴듯한 철학)에 부합한다고 주장했어. 리센코를 지지한 소련 정부는 1948년 리센코의 이론을 정식으로 채택하고 소련 과학아카데미에 있던 멘델 유전학을 따르는 과학자들을 모두 쫓아냈지. 각종 학술지와 교과서에서 유전학 관련 내용을 싹 없애며 소련에서는 유전학 연구가 발도 못붙이게 만들었어. 농업 정책에 리센코의 연구가 적용됐고, 당연(?)하게도 소련의 농업은 점점 쇠퇴하게돼. 제대로 된 연구 결과가 아니었으니 곡물 생산이 증가할 리가 없잖아.

그래도 다행(?)인 건 킬리와는 달리 리센코는 살아있을 때 사실이 밝혀졌어. 스탈린이 사망하고 뒤를 이은 흐루시초프 내각이 실각하면서 힘을 잃고 소련에서 추방당했지. 아주 나~중에 리센코가 개발했다는 춘화처리는 봄에 씨앗을 뿌리기 전에 겨울용 밀 씨를 물에 담근 뒤 냉동시켜서 마치 씨앗이 겨울을 보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것이 밝혀졌어. 심지어 본인이 개발한 것도 아니고 원래 농부가 사용하던 전통방식이었대.

알면서 속이는 것은 정말 악질이지만 본인이 죽을 때까지 사실이라고 믿고, 주장하던 것이 알고보면 거짓말인 경우도 있어.

르네 블론로라는 프랑스 물리학자가 있어. 유명한 물리학자인 마리 퀴리, 피에르 퀴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지. 블론드가 살던 시기는 프랑스와 독일이 서로 물어뜯지 못해서 안달이 난 상황이었어. 그런 상황에서 1895년, 독일의 과학자인 빌헬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지. 세상에 모든 일 중에서 단 하나라도 독일에 뒤쳐지고 싶지 않았던 프랑스로서는 매우 약이 오르는 일이었을 거야. 물론 프랑스에는 마리-피에르 퀴리가 있었어. 1898년 폴로늄을 발견하는가 하면 1902년에는 라듐을 발견하고, 그 공로로 1903년 노벨 화학상을 받기도 해. 하지만 프랑스 과학자는 자신들이 독일보다 잘하는 것은 당연하고 독일에서도 발견한 특별한 광선을 자신들이 발견하지 못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1903년, 르네 블론로가 N선을 발견했거든.

블론로가 N선을 발견한 뒤 프랑스에서는 1903~1906년사이에 300여 편의 N선 관련 논문이 출간됐어. 블론로의 동료는 N선이 인체의 신경계에서, 소르본대의 한 물리학자는 뇌의 중추에서도 N선이 방출된다고 발표했지. 아마 뢴트겐의 X선이 인체를 통과한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찾아낸 것일지도 몰라.

블론로의 발견 이후 상황은 좀 웃기게 돌아가기 시작했어. 영국 물리학회에서 N선을 검증하기 위해 미국의 물리학자인 로버트 우드를 보냈거든. 우드는 블론로의 실험실에서 실험장치 부품을 몰래 바꾸거나 제거하면서 블론로의 실험을 견학했어. 실험장치를 고장내도 블론로는 여전히 N선이 보인다고 주장했지. 우드는 N선을 발견한 것은 허위사실이라는 보고서를 네이처에 보냈어. N선과 관련된 수많은 논문을 쏟아내던 프랑스 과학자들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든거야.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는 당연히 반발했고, 프랑스 최고의 물리학자에게 주는 상인 ‘르콩트 상’의 1904년 수상자로 블론로를 선택해. 1903년에 노벨상을 받은 피에르 퀴리가 있는데도.

지금 N선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우드의 보고서 이후로 N선 열풍(?)은 사그라 들었거든. 가장 안타까운 것은 블론로 자신이야. 블론로는 죽는 날까지 자신이 N선을 발견했다고 믿었어. 결국 그는 심각한 우울증과 정신착란으로 세상을 떠나. 자신의 연구와 국가를 사랑한 과학자의 서글픈 최후가 아닐 수없어.





블론로의 최후는 가슴이 짜~안해지니까 이번엔 만우절에 어울리는 조금 유쾌한 이야기를 해볼까. 과학자에게는 최고의 영예라는 노벨상 수상자도 실수할 때가 있어. 1906년 불소에 관한 연구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화학자 앙리 무아상에 대한 이야기야. 20세기 초반, 과학의 패러다임이 바뀔 만큼 세상이 격변하는 시절에 노벨화학상을 받을만한 연구를 할 만큼 뛰어난 과학자였지. 불화수소칼륨을 물에 녹인 뒤 전기분해를 이용해 불소를 분리해냈거든.

노벨상 이후 무아상은 전기를 이용해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거나 분리하는 연구를 계속하게 돼.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개발한 강력한 전기를 이용해 인공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표해. 들어보면 매우 그럴싸 해. 다이아몬드는 탄소가 고온, 고압의 환경에서 분자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이야. 무아상은 자신이 개발한 강력한 전기로 철과 탄소를 섞어 녹인 뒤, 찬물에 빠른 속도로 식히면 철이 수축하면서 탄소에 강한 압력을 가해 다이아몬드를 만든다고 주장했어. 그리고 남아있는 철은 산을 이용해 녹이면 다이아몬드만 남는다는 거지. 노벨상을 받은 화학자가 하는 주장이었고, 여기에 감히 토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 똑같이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의 물리학자 퍼시 브리지먼을 제외하면 말이야.

브리지먼은 고압 물리학의 대가야. 초고압 상태에서 이용할 수 있는 기술 개발로 194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어. 브리지먼은 무아상의 방법으로는 인공 다이아몬드를 만들 정도로 강한 압력이 나올 수 없다고 설명해. 즉 무아상의 방법을 이용해 다이아몬드를 만들었다고 주장해온 다른 과학자들이 다 사기를 치고 있다는 걸 증명한 거지. 무아상의 영예를 위해서 조금 변명을 해주자면, 그가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조수가 무아상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몰래 다이아몬드를 집어넣었기 때문이라는군. 스승을 기쁘게 해주는 것도 좋지만, 하마터면 무아상이 살아있을 때 망신을 당할 뻔했지 뭐야.

 

2013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기획·글 오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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