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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우리는 ‘양(陽)의 온도’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절대영도(영하 273.15℃, 0K)에서 무한히 뜨거운 ‘무한 온도’까지가 바로 양의 온도다. 우리는 절대영도보다 낮은 온도는 없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독일 루드비히 막시밀리언대와 막스플랑크 연구소 양자광학부 공동연구팀은 약 10만 개의 칼륨 원자를 수 nK(나노 캘빈, 1nK는 10억 분의 1K)까지 냉각시킨 뒤 실험적 조작을 거쳐 ‘음의 온도’ 상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언뜻 들으면 상식을 깨는 연구처럼 들린다. 그러나 뜻밖에도 연구팀은 “음의 온도가 무한대의 온도보다 더 뜨거운 상태”라고 밝혔다. 무한대보다 더 뜨거운 상태를 왜 음의 온도라고 부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온도의 정의부터 점검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온도는 뜨겁고 차가운 정도를 나타내는 물리량이다. 그런데 미시세계를 다루는 물리학자들의 온도 정의는 다르다. 이들에게 온도란, 계를 구성하는 입자가 갖는 운동에너지의 평균값을 의미한다. 평균값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건, 곧 입자의 운동에너지가 다양하다는 뜻이다.

 

 

『지난 1월 4일 학술지 ‘사이언스’는 절대영도에 가깝게 냉각시킨

칼륨 원자를 ‘음(陰)의 온도’ 상태로 만든 독일 연구팀의 실험결과를 소개했다.


음의 온도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0보다 작은 실수를 ‘음수(陰數)’라

부르는 것처럼, 음의 온도는 절대영도보다 더 낮은 온도일까.』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처럼 입자도 에너지를 공급받으면 가장 낮은 에너지 준위부터 시작해 점점 높은 에너지 준위를 채워가기 시작한다. 각각의 에너지 준위에 얼마나 많은 입자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루드비히 볼츠만이 1866년에 제시한 ‘볼츠만 분포’다. ‘맥스웰-볼츠만 분포’라고도 한다.

절대영도는 모든 입자의 운동에너지가 0이 돼 움직이지 않는 상태다. 당연히 모든 입자가 바닥에너지 준위에만 존재한다. 운동에너지가 0보다 작아질 수는 없으므로 절대영도보다 온도를 더 낮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에너지를 공급해주면 입자가 점차 높은 에너지 준위를 채우기 시작한다. 무한의 에너지를 공급하면 모든 에너지 준위가 입자로 차 있는 ‘무한온도’가 된다. 이때 무질서도(엔트로피)가 최대가 된다. 그런데 만약 이 상태에서 에너지를 더 투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마침내 음의 온도의 세계가 열린다.

온도계를 거꾸로 뒤집는 기묘한 방법

연구팀이 말한 ‘음의 온도’란 모든 에너지 준위에 입자가 고르게 가득 찬 무한 온도를 넘어서, 높은 에너지 준위에 있는 입자가 낮은 에너지 준위에 있는 입자보다 더 많아진 특이상태다. 거꾸로 된 볼츠만 분포라고 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자연계에는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상태가 존재하려면 에너지가 높은 상태가 에너지가 낮은 상태보다 더 안정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구팀은 이런 기이한 상태를 어떻게 만들어냈을까. 정말 무한 온도를 넘어서기 위해 무한보다 많은 에너지를 투입한 것일까. 무한은 말 그대로 무한이기 때문에 ‘무한보다 많은 에너지’는 어불성설이다. 연구팀은 “음의 온도를 만들기 위해선 원자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의 상한선이 필수”라며, “자연에는 상한선이 없기 때문에 음의 온도를 만들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쓴 방법이 상한선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기 위해서는 구멍을 막으면 된다. 더불어 독의 크기가 작다면 더 적은 양의 물로도 가득 채울 수 있다. 연구팀은 먼저 레이저 냉각기술을 이용해 진공 챔버 속 칼륨 원자 약 10만 개의 온도를 수백 μK(마이크로 캘빈, 1μK는 100만 분의 1K)까지 낮췄다. 그리고 증발냉각 기술로 높은 에너지의 입자를 선별해 걷어내고 수백 nK 수준까지 다시 한 번 더 온도를 낮췄다. 이 정도로 극저온이 되면 입자는 상전이를 거쳐 보스-아인슈타인 응축(BEC) 상태가 된다. 보스 아인슈타인 응축 상태란 고체, 액체, 기체, 플라스마처럼 물질의 한 가지 상태로 거의 대부분의 입자가 에너지가 가장 낮은 바닥상태에만 존재하는 상태다.

그 다음에는 간섭레이저 빔을 이용해 특정 운동에너지를 가지는 원자만이 채울 수 있는 광격자(optical lattice)를 만들었다. 연구팀은 무한히 다양한 운동에너지를 가질 수 있는 원자가 극저온에 가까운 몇 개의 한정된 운동에너지만 가지게 했다. 밑 빠진 독의 구멍을 막은 동시에 채워야 할 독의 크기를 최대한 작게 만든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온도는 입자들의 운동에너지뿐만 아니라 입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치에너지와 입자끼리 서로 끌어당기는 힘에도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연구팀은 자기장과 레이저를 이용해 높은 (운동)에너지 준위의 입자가 낮은 위치에너지를 갖고, 또 낮은 (운동)에너지 준위의 입자가 높은 위치에너지를 가지는 환경을 인공적으로 만들었다. 이것을 ‘안티트랩’이라고 한다. 또 입자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인 반데르발스 힘의 양자적 효과가 서로 밀어내는 척력을 일으키도록 함께 특수조작했다. 온도와 관련한 물리적인 요소들을 거꾸로 뒤집은 결과, 연구팀은 온도가 낮아질수록 뜨거워지는 이상한 음의 온도 체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자연의 법칙을 어긴 것 인가, 또 다른 법칙을 찾은 것인가
 
음의 온도 체계에서 가장 뜨거운 온도는 바로 음의 절대영도다. 반대로 음의 온도 체계에서 가장 차가운 온도는 음의 무한 온도다. 온도가 낮아지는데 어떻게 뜨거워질 수 있을까.

신용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음의 온도 체계에서 온도가 낮아질수록 뜨거워지는 까닭은 온도를 표기하는 방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이런 혼란을 줄이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온도에 역수를 취한 값을 쓴다”고 설명했다.

온도(K)에 역수를 취하고 -1을 곱하면 우리가 잘 아는 양의 절대영도는 -∞가 되고, 음의 절대영도는 +∞가 돼 어느 쪽이 더 뜨겁고 차가운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또 무한 온도는 양의 온도 체계 관점에서 보든, 음의 온도 체계 관점에서 보든 0이 된다. +1/∞, -1/∞ 모두 0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별개인 것 같던 양의 온도 체계와 음의  온도 체계를 하나로 매끄럽게 연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진 에너지가 클수록 안정적이란 이상한 특성은 어떨까. 이것도 온도처럼 ‘표기법’에서 비롯한 오해일까. 연구에 참여한 사이먼 브라운 박사는 이 특이한 성질을 언덕 꼭대기에 몰려있는 구슬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아래 그림). 이 구슬은 최대의 에너지를 가졌으며 안정한 상태인 음의 온도의 입자들에 대한 비유다. 브라운 박사는 “이 구슬이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는 건 이미 더이상 증가할 수 없는 ‘최대의’ 운동에너지를 갖고 있어 비탈을 내려가면서 운동에너지를 더 흡수할 수 없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음의 온도 세계에만 있는 에너지의 상한선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 열효율 100%의 열기관과 암흑에너지

오늘날 쓰는 자동차 엔진의 열효율은 25~35% 정도다. 열효율 100%를 내는 가상의 열기관을 ‘카르노 기관’이라 한다. 연구팀은 “음의 온도에서 열효율 100%의 엔진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음의 온도에서는 열기관이 열을 바깥으로 발산해 더 차가워지는 법이 없으며, 오히려 차가운 바깥으로부터 열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팀은 “음의 온도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음의 온도 시스템 안에서는 열효율 100%의 열기관을 쓸 수 있을지 몰라도, 음의 온도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신용일 교수는 “이번 실험의 최대 의의는 0.7초 이상 음의 온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또 신 교수는 “미시적인 물리분야에서 0.7초 정도면 상당히 거시적인 시간”이라며 “이전까지 불가능했던 실험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실험장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우주가 팽창하는 원리와 관련된 ‘암흑 에너지’ 연구다. 암흑 에너지는 그로 인한 힘이 중력과 반대인 서로 밀어내는 척력의 에너지다. 과학자들은 암흑에너지가 음압의 성질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데, 음의 온도 세계에서는 이론적으로 이 음압을 관찰할 수 있다.

이상기체 방정식 PV=nRT를 보면 T(온도)가 음수일 경우 P(압력)가 음수가 된다. 음의 온도의 기체를 용기에서 꺼내면 사방으로 흩어지는 대신 음압 때문에 한 점으로 수축한다. 이석천 고등과 학원 연구원은 “음의 온도에서 암흑 에너지의 성질로 추측되는 음압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암흑에너지가 이상기체인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독일 연구팀의 실험으로 물리학자들은 이제 흥미로운 실험대 하나를 더 얻었다. 새 실험대에서 나올 앞으로의 연구가 기대된다.

201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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