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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돼지는 사람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동물이다. 일단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버리는 부분이 없다. 그런 돼지에 대한 유전정보를 완벽하게 해독한 연구가 지난해 과학학술지 네이처 11월 15일자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
돼지의 유전자를 해독한 곳은 한국을 포함한 8개국의 과학자들이 모인 ‘돼지유전체해독 국제컨소시엄’이다. 이들은 6년 전부터 돼지의 유전자 전체, 즉 돼지 게놈을 분석해 발표했다. 돼지 게놈은 19쌍의 염색체와 약 2만 6000개 유전자(게놈정보분석 결과 중 아직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변할 수 있다), 26억 개의 염기쌍으로 이뤄졌다. 참고로 인간 게놈은 23쌍의 염색체와, 약 2만 5000개의 유전자, 30억 개의 염기쌍으로 이뤄져 있다.
인류와 함께 진화한 돼지
이 연구에서 사용한 돼지 품종은 암컷 듀록이다. 듀록 품종은 성장이 빠르고 육질이 우수해 산업적으로 중요한 돼지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돼지 한 마리가 아니라 체세포 복제를 통해 유전적으로 100% 동일한 돼지 여러 마리를 확보해 연구를 진행했다.
이번에 밝혀진 돼지 게놈을 통해 여러 가지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흥미로운 소식은 돼지의 진화 과정이다. 세계에 존재하는 야생 돼지의 유전 정보를 분석하면 돼지의 조상은 약 350만~530만 년 전인 신생대의 초기 플라이오세(Pliocene) 때 동남아시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 때문인지 지금도 동남아시아에는 다양한 형태의 돼지가 많이 살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돼지는 여러 형태로 분화했다. 동남아시아에서 출발한 돼지는 유럽, 아시아 및 아프리카 대륙으로 서식지를 확장했다. 이때만 해도 야생돼지였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 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야생 멧돼지의 가축화가 진행되면서 인류와 동행을 시작했다. ‘가축 돼지’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 뒤로 인간의 이동과 상업 활동으로 돼지가 없었던 호주, 남북아메리카 및 기타 여러 섬에도 돼지가 서식하게 됐다.
돼지는 현재 지구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살고 있는 대형 포유동물이다. 국제식량기구(FAO)의 가축종다양성정보에 등록된 1200여 가축 돼지 외에도 멧돼지), 덤불돼지, 수염돼지 등 다양한 야생돼지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각각 형태나 생리학적 특징이 다르며 이러한 정보와 유전자의 관계를 밝혀낸다면 농업과 생명과학 연구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실제로 인간은 지방형, 베이컨형 및 살코기형 등 용도에 따라 돼지를 다양하게 개량해왔다. 예를 들면 1800년대에는 지방이 많은 돼지일수록 가격이 높았다. 돼지 지방에서 글리세린을 분리해 비누와 초를 만드는 수요가 매우 많았으며 돼지 지방을 요리용 기름으로 사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 석유가 발견되며 이러한 수요는 사라졌고, 인류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베이컨이나 살코기를 많이 얻기 위해 돼지는 허리가 긴 날씬한 모습으로 개량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특정 표현형을 만들 수 있도록 돼지의 유전자가 변했기 때문에일어났다.
이번 돼지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과학자들은 돼지의 표현형과 유전자의 상관관계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또 지구의 다양한 환경 속에 적응하여 고유한 형태 및 생리학적 특성을 보유한 수많은 돼지과(Sus family )에 속하는 동물의 생물학적 다양성을 이해하거나 산업적인 활용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게다가 진화적 관점에서 고래소목(Cetartiodactyla )에 속하는 소, 돼지, 하마, 고래 등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돼지가 특히 주목받는 것은 장기이식이나 신약개발 때문이다. 돼지는 인간에게 장기를 이식해 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동물로 간주된다. 이는 돼지의 생리학적, 해부학적 특징이 인간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또 돼지는 다산성이며 임신기간이 114일로 상대적으로 짧고 밀집사육이 가능해 쉽게 대량생산을 할 수 있다.
이런 특징 덕분에 돼지를 의학과 생명과학 모델로 활용하는 연구도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낭포성섬유종의 치료법을 개발할 때 돼지 모델에서는 인간과 동일한 질병 증상이 나타나지만 생쥐 모델에서는 인간과 유사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치매와 같은 퇴생성 뇌질환도 생쥐 모델은 인간과 다르게 나타난다. 최근 국내에서도 질병 치료를 위한 돼지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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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코보다 더 개코 같은 돼지코, 비밀은 유전자에
게놈 분석 결과 돼지는 후각 유전자가 매우 발달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냄새를 인지하는 후각기능 유전자가 돼지에서 진화속도(유전자의 변화속도)가 매우 빨랐던 것이다.
후각 시스템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이 생존하고 집단생활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또한 짝짓기를 할 때 파트너를 선택하거나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차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리차드 액셀과 린다 벅은 포유동물의 후각 수용체 유전자를 발견해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후각시스템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콧속의 비강에 있으면서 냄새를 맡는 후각상피세포층과 뇌에서 후각을 담당하는 부위인 후각신경구(후구)다. 포유동물은 머리 형태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진다. 후각상피세포층은 지지세포, 기저세포 및 후각신경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후각신경세포가 화학물질을 인식하면 활성화돼 뇌의 후각신경구로 전기자극을 전달한다.
후각상피세포층에는 매우 많은 수의 후각신경세포가 존재한다. 각각의 후각세포 표면에는 다양한 형태의 후각수용체 단백질이 붙어 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수용체 단백질이 각각 서로 다른 화학물질에 반응한다. 즉 어떤 후각수용체가 활성화되느냐에 따라 다른 냄새를 구분하거나 냄새를 잘 맡게 된다.
동물이 냄새를 맡을 때는 몇 가지 신경세포수용체의 신호가 합쳐져 특정패턴을 이루고 이러한 패턴에 맞춰 고유한 냄새 코드가 작동한다고 알려져 있다. 즉 다양한 냄새를 맡기 위해서는 후각수용체 단백질이 다양하게 필요하다. 이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유전자 수가 많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후각은 포유동물의 생리기능에서 가장 많은 유전자가 관여하는 시스템이 된다.
참고로 포유동물이 다양한 물질을 탐지하는 또다른 시스템이 면역이다. 면역 시스템은 냄새 분자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병원체와 이물질을 인식해 제거하기 위해 진화했다. 면역은 일정한 수의 유전자를 서로 재조합해 다양한 형태의 면역단백질을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후각수용체 유전자는 다르다. 재조합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유전자 하나가 냄새(화학물질) 하나를 담당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따라서 동물의 후각 능력은 후각수용체 유전자의 수와 밀접한 상관이 있다. 돼지의 후각수용체 유전자 수가 약 1300개 정도(기능을 잃어버린 유전자까지 포함한다)로 약 1100개 정도인 개보다 많은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이다. 인간은 기능을 유지한 후각수용체 유전자의 수가 약 400개로 포유동물들 중에서는 가장 적다. 즉 인간의 후각은 유전정보 차원에서 퇴화상태에 있다.
돼지가 이처럼 후각수용체 유전자가 많다는 사실은 돼지가 후각 기능이 매우 발달한 동물임을 유전자 차원에서 증명한 것이다. 유전자만 보자면 개보다 돼지가 더 냄새를 잘 맡는다고 할 수 있다. 이 결과는 프랑스 농부들이 돼지의 후각을 이용해 야생 송로버섯을 찾는 것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될 것이다. 또 돼지는 돼지만이 갖고 있는 후각수용체 유전자가 다른 동물보다 더 많았다. 이는 돼지가 살아가는 데 후각이 단순히 냄새를 맡는 것만이 아니라 또다른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증거이다.
인간의 경우 연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여러 가지 요소 중 후각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연구가 있다. 후각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은 연애할 때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며 만나게 되는 이성의 수도 작다는 조사도 보고 된 바 있다. 돼지의 경우 좀더 연구가 필요하지만 짝짓기에서 후각이 큰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어류나 조류의 후각수용체 유전자 수다. 이들은 코를 통해 환경 정보를 감지할 필요가 육상동물보다 적다. 복어나 제브라피쉬, 닭의 후각수용체 유전자 수를 살펴보면 기능을 유지한 유전자의 수가 각각 44, 102 및 82개로 포유동물과 비교하여 상당히 적다. 양서류인 개구리도 기능을 가지는 후각유전자 수가 440개 정도로 육상동물과 어류의 중간 정도다. 후각수용체 유전자가 동물의 적응환경에 따라 얼마나 잘 변하는지 보여준다.
돼지의 후각수용체 유전자는 산업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게 사용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사람 코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전자코’를 개발하고 있다. 전자코는 사람이 직접 맡기 어려운 유독가스, 해로운 음식이나 공기 중 오염물질의 검출 등에 이용될 수 있다. 돼지에게서 발견된 1300여개 후각수용체 단백질의 기능이 밝혀진다면 전자코를 비롯해 다양한 바이오 센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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