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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연의 정원이 그토록 아름다운 까닭은

과학동아가 선정한 이달의 책

햇병아리 교사시절, 가르치고 마주치는 400여 명의 학생들은 제각기 다른 궁금증과 고민을 갖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제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는 과잉행동장애(ADHD)를 갖고 있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과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는 학생도 있었다. 진도를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학생도 있었다. 상황은 더 다양하게 펼쳐졌다. 우연찮게 보게 된 학생의 가방에서 학교에 가져와서는 안 되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기도 했다. 학부모 상담기간에 찾아온 어떤 어머니는 선물이라며 종이가방을 무작정 책상에 던지고 달려 나가는 바람에 졸지에 학부모와 전력질주 레이스를 하기도 했다. 교육학 책에는 나와 있지 않은 상황들이다. 그럴 때 원로 교사의 한마디는 교육학 책 한 권보다 훨씬 값진 해답이었다. 오랜 세월 경험으로 얻은 혜안을 듣는 즐거움도 크다. 어떤 분야이건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할 때, 멘토의 역할을 하는 원로가 함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요즘 멘토링이 대세인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사실 꼭 만나지 않더라도 책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으면 좋은데, 이공계 인사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과학을 이끄는 나침반’은 반가운 책이다. 30년 동안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연구원의 길을 걸어온 저자 이규호 박사가 자신이 그동안 꾸준히 연구하면서 느낀 소회를 적고 있다. 연구업적을 거창하게 써 놓지도 않았다. 자신의 연구분야인 분리막 연구 내용을 직접 쓴 내용은 두 장(章), 10여 쪽에 불과하다. 그보다 대덕연구단지가 처음 자리 잡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공계 원로로서 느낀 바를 담담히 적었다.
 

저자의 회고는 소소한 일상부터 거창한 국가적 논의까지 종횡무진이다. 몸담았던 한국화학연구원에는 과학기자들 사이에도 칭송(?)이 자자한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저자는 이 정원이 유달리 잘 가꿔진 이유를 회고한다. 설립 초창기에 들어온 시설과장은 애정을 갖고 조경을 꾸몄다. 전문가에게 조경 계획을 맡기고, 손수 서울에서 나무를 분양 받아 심었다. 그 때가 1978년이다. 이후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잘 가꿔진 조경은 초창기보다 더욱 풍성하고 멋스러워졌다. 하지만 몇 년 공사만으로 가능했을까. 사실 비결은 시설과장의 30년 무한애정이었다. 그는 예산이 부족해 정원을 더 가꿀 수 없자 직접 주말마다 산으로 들로 나가 야생화와 나무를 찾았다. 울릉도만 7번을 다녀올 정도라고 했다. 기록에는 초기 3년 동안의 공사와 유명 전문가의 설계만 남아 있다. 시설과장의 이름은 담당 공무원으로나 기록돼 있을까. 하지만 정말 정원이 좋아 모으고 가꾼 결과 화학연의 정원은 오늘날의 풍성함을 자랑할 수 있게 됐다.

교육이나 국가 정책을 논하는 데에서도 비슷한 생각이 보인다. 고등학생의 봉사활동을 연구원에서 하자는 주장이 예다. 모두가 학생 시절에 경험해 봤듯, 봉사활동은 대개 그 기관에 ‘민폐’다. 연구원에서 중고등학생의 봉사활동을 받아주면 사실 연구원 입장에서는 힘이 더 든다. 하지만 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연구원의 봉사가 되겠지만, 그 결과 학생의 경험도 늘어나고 연구원도 미래의 연구원을 키우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의 연구원이 그 정도의 역량은 갖길 기대한다고 썼다.

대덕연구단지에서의 생활뿐만 아니라, 미디어와의 관계, 정치, 국가 과학정책 등에 대한 조언도 가볍지 않다. IMF 때 도입된 정년 축소나 프로젝트 기반 시스템 도입 때문에 연구환경 안정성이 무너지면서 우수한 연구원이 연구소를 떠날 때 느꼈던 안타까움도 절절하다. 블랙박스처럼 속이 보이지 않던 연구단지 속에서 치열하고 꾸준히 연구하는 연구원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이공계를 꿈꾸는 누군가 혹은 이공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에게 30년 동안 연구원의 역사와 함께한 저자만큼 좋은 멘토가 있을까 싶다. 그야말로 저자 자신이 과학자이자, 과학계 후배들의 나침반이다.

한 컵의 과학

지구를 구하는 허당 비법 지구를 구하고 싶은 미래의 영웅은 주목하자. 또는 멸망의 구렁텅이에서도 굳이 살아남겠다는 사람도 눈을 똑바로 뜨자. 여기 블랙홀을 통과하거나 지진을 겪고도 살아남는 법이 있다. 허리케인을 멈추는 법,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하는 법, 순간이동 기술, 영원히 사는 비법까지 담고 있으니 세계 정복을 꿈꾸는 사람 손에는 들어가지 않도록 필히 주의해야 한다.

다만 고백(?)해둬야 할 게 있다. 여기 나온 비법 중 상당수는 허당이다. 예를 들어 물리학자가 제안한 ‘블랙홀 생존법’을 보자. 간단하다. 블랙홀을 통과하는 여행자의 허리에 훌라후프처럼 뭔가 물질 고리를 두르고 통과하면 된다. 블랙홀을 통과할 때는 위아래로 잡아당기는 조석력 때문에 사람이 살 수가 없는데, 고리를 두르면 좌우로 잡아당기는 힘이 생겨서 조석력을 상쇄해 준다. 과학적이다. 우리는 블랙홀을 통과할 비법을 얻었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허당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허리에 두른 훌라후프 질량이 소행성 정도가 돼야 한다. 도대체 어떤 물질이 그런 질량을 낼 수 있을까. 자칫하다간 훌라후프 자체가 또다른 블랙홀이 될지 모르겠다. 게다가 그래 봤자 늘어나는 수명은 0.1초밖에 안된다. 저자는 “원래 그냥 들어가면 0.1초 만에 죽는데, 0.1초를 더 사니 수명이 2배가 됐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지만, 그렇게 매력적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언뜻 들으면 ‘썰’만 푸는 책이 아닐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모두 진지한 과학자가 진지하게 내놓은 해법들이다. 잡지처럼 톡톡 튀게, 황당하고 발랄하게 설명하고 있기에 가벼워 보일 뿐이다. 게다가, 정말 ‘허당’이면 또 어떤가. 신나고 재밌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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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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