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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에서 가장 오래된 뱀은 무엇일까.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게 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 뱀이 아닐까. 그렇다면 뱀의 캐릭터는 원래부터 남을 해하는 것일 테다. 또다른 의문은 뱀은 처음부터 다리가 없었을까라는 것. 몸보다 훨씬 두꺼운 먹이를 어떻게 한입에 삼키고 소화할 수 있을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뱀은 징그럽거나 무섭기보다는 오묘한 동물이다.



뱀은 정말! 무섭다

‘영리함’, ‘남을 해하려는 성격’, ‘욕심’…. 옛 사람들이 뱀 하면 떠올린 이미지다. 먹잇감이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다가가 자르거나 물어
뜯지도 않고 한 입에 꿀꺽 삼키는 장면이 뇌리에 선명하게 와 닿는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강원도 치악산 상원사에는 뱀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 훗날 ‘은혜 갚은 까치’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이야기다.
 
‘한 나무꾼이 산길을 가다가 뱀에게 잡아먹히려는 꿩을 구한다. 그 날 밤, 나무꾼은 길을 잃고 젊은 여인의 외딴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된다. 젊은 여인은 낮에 나무꾼이 죽인 뱀의 원수를 갚으려는 암컷이었다. 나무꾼에게 암컷 뱀은 절의 종이 울리면 살려준다는 조건을 거는데, 그 순간 울린 종 덕분에 나무꾼은 목숨을 건진다. 낮에 구해준 꿩이 몸을 던져 종을 울리고 죽은 것이다.’

전래 동화 ‘흥부 놀부’에서도 뱀이 등장한다. 흥부 집 처마에 집 지은 제비 새끼를 잡아먹으려는 역할이다. 작고, 연약한 새끼를 한 입에 삼켜버리는 모습 때문인지 탐욕스럽고, 욕심이 많은 성격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인간은 왜 뱀을 무서워할까.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2011년 11월 13일 온라인 판에는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가 실렸다. 사람의 DNA에 뱀에 대한 공포가 각인돼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토마스 헤드랜드 미국 댈러스 닐 국제연구소 연구원과 해리 그린 미국 코넬대 연구원은 초기 인류가 뱀에 대한 공포를 얻게 된 경로를 찾기 위해 필리핀 원주민인 아그타 네그리토스 족의 사냥 기록을 분석했다. 아그타 족은 원시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초기 인류와 뱀의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데 주목했다. 뱀에 대한 공포가 DNA에 각인될 정도라면 그만큼 많은 공격을 받은 흔적을 찾아야 한다. 초기 인류 연구를 통해 증명하기는 어려워 초기 인류와 유사한 생활을 하고 있는 아그타 족의 사냥 기록을 분석한 것이다.

연구 결과 아그타 족은 뱀이나 뱀의 먹이를 사냥할 때 뱀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뱀과 먹이 경쟁을 하느라 자주 공격을 당해 두려움이 반복되었고, 뱀은 두려운 존재라는 기억이 원시 인류에게 각인되었다는 의미다. 연구 결과가 맞다면 사람이 뱀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뼛속까지 새겨진 공포 때문일 것이다.












뱀은 원래 다리가 있었다?

뱀의 체형은 신비하다. 닮은 동물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길쭉한 몸뚱이가 특히 그렇다. 태어나서 뱀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 뱀을 보여주면서 어디 사는 동물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생김새만을 놓고 보면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몸의 형태만으로 보면 갈치나 뱀장어, 곰치 같은 길쭉한 물고기와 닮았다. 하지만 지느러미가 없다. 머리를 보면 도마뱀과 닮았지만 다리가 없다. 그렇다고 날개의 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땅 속에서 살기에는 땅을 파기조차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뱀은 바다에 사는 바다뱀종류까지 포함하면 극지방과 섬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살고 있다.

다양한 환경에 뱀이 적응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전문가들은 뱀의 ‘다리’ 때문이라고 말한다. 있지도 않은 다리 때문에 다양한 환경에 적응했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파충류의 진화 과정을 들여다보자.

뱀이 처음부터 다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뱀을 비롯한 파충류는 고생대 석탄기(3억 6000만 년~2억 8600만 년 전)에 등장한 원시 파충류에서 분화됐다. 최초로 등장한 파충류는 거북이다. 약 2억년 전인 중생대 지층에서 거북의 상징과 같은 ‘등갑’ 화석이 발견됐다. 다음에 등장한 것은 도마뱀이다.

도마뱀과 뱀이 갈라진 시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주장이 논란 중이다. 첫 번째는 중생대 말인 백악기에 도마뱀에서 뱀이 새로운 갈래로 갈라졌다는 주장이다. 사하라 사막의 백악기 지층에서 발견된 원시 뱀인 라파렌토피스 데프렌네이(Lapparentophis defrennei ) 뼈 화석은 백악기에 뱀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다른 학설은 고생대 말 원시 도마뱀에서 아예 도마뱀과 뱀이 서로 다른 갈래로 진화했다는 주장이다.

어느 쪽이든 뱀의 조상인 고생대 원시 도마뱀에 다리가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원시 도마뱀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처럼 다리가 사라져 바다와 들, 사막과 같은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게 됐을까. 원시 도마뱀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도마뱀과 다리가 없는 뱀을 비교하면 다리의 유무 뿐만 아니라 머리뼈, 피부(혹은 비늘), 눈꺼풀, 귀에 이르기까지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불필요한 다리를 ‘버렸다’

뱀의 진화에 대한 힌트는 도마뱀의 일종인 장지뱀, 지렁이 도마뱀을 통해 얻을 수 있다. 2011년 5월 19일자 네이처에는 독일 메셀 화석 유적지에서 뱀의 조상으로 보이는 도마뱀 화석을 발견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이 지층은 4700만 년 전인 신생대 제3기 지층이다. 물론 신생대는 이미 도마뱀과 뱀이 갈라진 뒤다. 그러나 도마뱀처럼 생긴 장지뱀과 뱀처럼 생긴 지렁이 도마뱀의 화석 연구를 통해 뱀의 진화 경로를 살필 수 있다.

지렁이 도마뱀은 땅 속에 사는 도마뱀의 일종이다. 뱀처럼 긴 몸을 가졌으며, 다리가 심하게 퇴화되어 얼핏 보면 뱀처럼 보인다. 땅 속에서 주로 살았기 때문에 다리가 불필요해졌다. 땅속에 들어가 살게 되면서 퇴화한 기관은 다리만이 아니다. 귓구멍은 흙이 들어가기 때문에 없어
졌으며 햇빛을 막기 위한 눈꺼풀도 없어졌다. 도마뱀이지만 현재 뱀의 특징적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셈이다.

반면 장지뱀은 뱀이라고 이름이 붙었지만 도마뱀의 일종으로, 중생대 말인 백악기에 등장했으며 비늘이 뱀과 매우 흡사하다. 메셀 화석 유적지에서 발견한 화석은 바로 장지뱀과 지렁이 도마뱀을 합친 형태였다.

전체 몸길이가 7cm 정도 되는 이 도마뱀은 현재 파충류보다 더 두꺼운 형태의 두개골을 가졌다. 또 지렁이 도마뱀처럼 바깥귀가 닫혀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앞다리와 뒷다리가 몸통에 비해 작다는 것이다. 연구를 이끈 요하네스 뮐러 독일 함부르크훔볼트대 박사는 이를 다리가 퇴화하는 첫 단계라고 설명했다.









‘머리에서 꼬리 끝까지’ 뱀은 강하다!

다리가 없는 뱀이지만 어떤 동물보다도 서식지 분포가 넓다. 어미를 잡아먹는다는 별명이 있는 살모사(물론 실제로 어미를 잡아먹는 것은 아니다)는 호주와 극지방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서식한다. 이미 살모사 한 종만으로도 전세계를 아우르고 있다.

뱀이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머리에서 꼬리 끝까지 담겨 있는 신체의 비밀 때문이다.

뱀의 커다란 입은 제 몸 크기의 네 배가 넘는 먹이도 거뜬히 삼킨다. 머리뼈와 턱뼈가 관절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유연한 근육과 인대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먹이를 목구멍으로 넘기면 어깨뼈가 없기 때문에 먹이가 수월하게 소화기관으로 넘어간다. 그동안 척추에 연결된 갈비뼈가 한껏 벌어져 먹이가 긴 몸을 지나가는 데 무리가 없다.

먹이 크기에 맞춰 위 또한 거대하게 늘어난다. 뱀은 가늘고 긴 몸에 맞게 대부분의 내장이나 기관은 길고 가늘게 생겼지만 소화와 관련된 위와 장은 신축성이 매우 좋다. 일단 커다란 먹이를 삼키면 오랫동안 다른 먹이를 먹지 않아도 버틸 수 있다.

땅 속에서 밖으로 나오면서 진화한 비늘도 다양한 환경에서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비늘이라고 말하지만 뱀 비늘은 피부에 더 가깝다. 물고기처럼 비늘이 하나씩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입부터 꼬리 끝까지 하나로 연결된 겉 피부가 비늘 모양으로 주름 잡혀 있기 때문이다. 허물을 벗을 때 조각조각 벗겨지지 않고 통째로 벗을 수 있는 이유다.

비늘은 습도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한다. 단백질의 일종인 젤라틴으로 된 비늘은 ‘밀봉코팅’한 상태기 때문에 습기 변화에 강하다. 외부에서 과하게 들어오는 습기를 막을 뿐만 아니라 몸속의 습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붙잡는다. 보통 동물이라면 수분 부족으로 말라버릴 사막에서도 거뜬히 살아가는 이유다. 파충류가 살기 어려운 극한 환경이 아니면 습도와 상관없이 8~35℃ 환경에서는 어디서나 살아간다.

비늘의 역할은 습도 조절에만 그치지 않는다. 일정한 방향으로 나 있기 때문에 다양한 환경에서 쉽게 움직일 수 있다. 비늘이 난 방향에 따라 바닥과의 마찰력이 달라져 꿈틀거리며 움직이면 마찰력이 적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머리를 원하는 방향으로 향하고 몸을 움직이기만 하면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400개가 넘는 갈비뼈는 뱀의 움직임을 돕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거대한 먹이를 먹었을 때 잔뜩 벌어지는 것은 물론 자신의 몸을 180°에 가깝게 꺾을 수도 있다.

유연한 몸을 스프링처럼 사용하면 하늘도 날 수 있다. 황금나무뱀은 갈비뼈의 탄성을 이용해 나무 위에서 뛰어 오른 뒤, 공중에서 몸을 S자로 움직여 날아간다. 날다람쥐가 팔다리에 난 넓은 막을 이용해 글라이더처럼 비행하는 반면 뱀은 자신의 몸을 꼬아서 글라이딩을 한다. 이렇게 날아가는 거리는 무려 100m.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뱀도 있을 정도로 가늘고 긴 몸으로 움직이는 데 한계가 없다(물뱀은 바다뱀의 일종으로 강이나 개울에서 헤엄치는 뱀은 물뱀이 아니다).

뛰어난 환경 적응력 덕분에 뱀은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물이다. 물론 도심에서 보기 어려워졌지만 뱀은 분명 유연함 속에 강함을 감추고 있다. 수많은 신화와 설화에 등장했고, 때로는 두려움을 줬고 때로는 지혜의 상징으로 존경을 받기도 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뱀띠 해 계사년. 뱀이 지닌 변화무쌍함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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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오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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