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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생명체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콘택트

우주기원을 향해 던지는 질문

과거는 빛의 속도로 우리에게서 멀어진다. 과거를 비춘 빛은 빠른 속도로 우주 공간을 가르며 먼 우주로 내달린다.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먼 과거가 거기에 있다. 태양계의 9개 행성을 지나 우리은하를 벗어나면 80년대 그룹 퀸의 목소리가 들리고, 다른 은하를 거쳐 오리온성운의 아름다운 구름을 벗어날 때면 케네디에 관한 뉴스와 비틀즈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 몇초 사이에 빛은 인류의 과거를 관통하고, 시간과 공간은 융합돼, 어느새 한 소녀의 눈동자 안에 그 모든 것이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콘택트’(Contact)는 이렇게 시작한다.

칼 세이건이 시나리오 작성

어려서부터 별을 바라보며 우주에 관해 궁금해 하던 소녀 엘리 애로위(조디 포스터)는 밤마다 무선통신(HAM)을 통해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응답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소녀는 자라서 천문학자가 되고, 여전히 외계에 존재하는 생명체를 찾는데 몰두한다. 주위의 눈길과 따돌림에도 불구하고 외계생명체와의 교신을 열망하던 엘리는 어느날 드디어 베가성으로부터 메시지를 받게 된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개막식 때 히틀러는 자신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처음으로 전파방송을 시도했는데, 이 신호를 받은 외계의 고등문명이 지구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메시지를 해독한 결과, 외계생명체와 교신할 수 있는 우주선의 설계도임이 밝혀진다. 드디어 우주선이 완성되고 엘리가 우주선에 탑승한다. 과연 엘리는 외계생명체와 접촉할 수 있을 것인가? 외계인은 왜 그녀를 택했으며, 그녀에게 무엇을 전하려 했을까?

영화 ‘콘택트’는 칼 세이건의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코스모스’의 저자로 유명한 칼 세이건은 평생을 외계생명체를 찾는데 노력했다. 1979년 그는 ‘카사블랑카’라는 영화사로부터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SETI)계획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그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결국 60페이지 분량의 1차 스토리 라인을 만들었다. 그 속에는 영화 ‘콘택트’의 초고와 함께, 외계인이 과연 존재할 것인가, 만약 존재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낼 것인가, 지구인이 그들과 맞닥뜨린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에 관한 진지한 상상이 담겨 있었다. 그 후 시나리오는 살을 더해서 1985년 소설로 출간됐고, 우여곡절 끝에 17년만에 영화로 완성된 것이다.

영화에는 외계생명체와의 교신에서부터 전세계인들의 다양한 반응과 정치인들의 이해분쟁이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영화는 초반부에서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SETI 계획과 그것을 수행 중인 전세계 천문대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1959년 과학자 필립 모리슨과 주세페 코코니는 어느 정도 지능을 가진 존재라면, 성간 전파 신호를 통해 은하 전체와 교신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성간 전파 신호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더라도 보낼 수 있으며, 비교적 초보적인 기술을 통해서도 가능하기 때문에, 외계인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한다면 그 방법을 채택하리라고 그들은 추측했다.

그 후 미국 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는 지름 26m 접시 안테나가 달린 전파 망원경으로 태양과 비슷하게 생긴 두 별을 향해 1백50시간이나 신호를 수신했다. 1960년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수행 중인 이 계획을 ‘오즈마 계획’이라고 한다. 이것이 SETI의 효시다.

오즈마 계획은 별다른 신호를 포착하지 못했지만, 그 후 과학자들에 의해 폭발적으로 추진돼 1991년에 이르러서는 약 50회의 전파 탐사가 이루어졌다. 영화 ‘스피시즈’나 ‘인디펜던스 데이’ ‘화성 침공’에서 외계인의 존재를 확인하는 체계도 바로 이 프로젝트에 의한 것이다.
 

엘리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과학자 켄트 킬러스(왼쪽)와 파머. 켄트는 실제로 나사(NASA)에 근무하는 과학자다.


사실감의 극치

영화에는 SETI 계획의 무대인 아레시보 천문대와 천체관측망원경 VLA가 자주 등장한다. 푸에르토리코에 소재한 아레시보 천문대는 세계 최대 전파망원경을 보유하고 있는 천문대다. 주로 가시광선 영역의 빛을 수신하는 광학망원경과는 달리, 전파망원경은 수 메가헤르츠(MHz)에서 수백 기가헤르츠(GHz)까지 수신할 수 있다. 따라서 수백배 넓은 전자파 스펙트럼을 수신할 수 있기 때문에, 외계로부터 들어오는 신호(전자파)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아레시보 망원경은 고정형 금속 그물을 자연 그대로의 둥근 골짜기에 덮어서 만들었는데, 영화 속에 그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우주에서 전자파를 방출하는 전파원이 점이 아닌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구경합성’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여러 전파 수신 안테나(전파망원경)를 한 줄로 줄지어 세운 뒤, 상대적으로 다른 거리와 방향으로 움직여 그 간격을 변화시키면서 관측하는 방식이다. 각각의 수신 안테나가 받아들인 정보를 종합하면 전파원의 정확한 분포도를 구할 수 있고, 하늘의 영상, 즉 ‘전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현재 가장 효율이 좋은 구경합성 망원경이 바로 미국 뉴멕시코주 소코로 사막에 있는 VLA다. VLA(Very Large Array)는 지름 25m의 포물면 안테나가 무려 27개나 줄지어 서있다.

아레시보 천문대와 VLA뿐 아니라, NASA 본부와 플로리다 케이프 타운의 우주선 발사기지 통제소, 러시아 우주 정거장 미르호 등을 완벽하게 재현한 장면들이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여기에 빌 클린턴까지 영화에 등장해 사실감은 극에 달한다. 저멕키스 감독은 1996년 8월 백악관 뜰에서 화성 운석 발견에 관해 논평하던 클린턴의 기자회견 장면을 컴퓨터로 합성해, 백악관 브리핑실에서 우주로부터 온 메시지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는 장면으로 감쪽같이 바꾸어 놓았다.

영화는 과학적인 자세를 잃지 않고 철저히 이성적으로 외계인의 존재를 증명해 가면서, 외계생명체와의 접촉이 인류에게 주는 충격을 종교적·철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믿는 엘리는 과학으로 우주 탄생의 신비를 풀 수 있다고 믿는 여성 과학자다. 그녀를 사랑하는 종교철학자 파머 존스는 신의 존재를 믿으며, 과학과 이성으로는 결코 베일에 싸인 우주의 신비를 풀 수 없다고 믿는다. 그들은 각각 과학자와 신학자로서 자신의 논리로 우주의 탄생과 기원을 설명하고자 한다.

과학자인 엘리에게 관찰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자의 첫 번째 계명과도 같은 것이다. 관찰할 수 없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신은 우주의 탄생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허구의 존재일 뿐이다.
 

우주선에서 놀랍도록 아름답고 환상적인 만남을 갖는 엘리. 낭만적인 외계 생명체와의 접촉은 칼 세이건의 꿈이기도 하다.


과학과 종교의 논쟁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면, 언젠가는 신을 도입하지 않고도 우주에 관한 물음에 해답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엘리는 무신론자였던 칼 세이건의 의견을 대변하고 있다. 그녀는 이 넓은 우주 공간에 생명이 우리뿐이라면 ‘공간 낭비’라고 역설한다. 생명은 어디에서든 환경만 만족되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파머는 증명할 순 없지만 존재하는 것이 있다고 믿는 종교철학자다. 예를 들면 사랑이 그렇다. 사랑은 존재하지만 심장 박동이나 맥박의 증가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파머에게 신도 그러한 존재다. 존재한다고 증명할 순 없지만, 자명하게 우주를 지배하고 우리 곁에 있다고 믿는다. 그동안 과학기술은 인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떠들었지만, 환경 오염과 자연 파괴로 우리를 불행하게 내몬 측면도 있다.

그들의 지적 공방은 우주선에 탑승할 지구인 대표를 선발하는 과정에서도 계속된다. 엘리는 “외계생명체를 만나면 무엇을 물어보겠느냐”는 질문에 “어떻게 멸망하지 않고 진보할 수 있었느냐고 묻겠다”고 답한다. 지적인 과학자로서 그럴듯한 대답이다. 곧바로 심사위원 중 한명인 파머는 후보인 엘리에게 묻는다. 신의 존재를 믿느냐고. 인류의 95%는 어떤 형태로든 절대자의 존재를 믿고 있다. 그렇다면 무신론자인 엘리가 지구인을 대표하는 탑승자가 될 자격이 있느냐고.

결국 엘리는 탑승자가 되지 못하고 만다. 그러나 외계로부터 온 메시지는 종교인들을 동요하게 만든다. 어떤 종교 집단은 외계에서 온 신호가 ‘신의 메시지’라고 주장하며, 천국은 신의 영역이므로 우주선으로 신과 접촉하는 일은 죄악이라고 여긴다. 한 광신도의 테러로 인해 우주선의 첫번째 발사는 무산되고, 우여곡절 끝에 엘리는 우주선에 탑승한다.

그녀는 웜홀을 지나 초광속 우주여행을 통해 외계인과 접촉한다. 웜홀을 지나면서 황산비와 죽음의 가스로 가득 찬 우주는 시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고, 성운으로 가려진 우주의 본질이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외계생명체는 엘리를 위해 그녀의 기억(의식)을 복사(반영)해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녀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이 광활한 우주에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18시간이나 계속된 외계생명체와의 접촉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구인들에게 우주선은 아무 일 없이 그냥 땅으로 떨어져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외계생명체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무엇도 그녀의 말을 증명하지 못한다. 그녀는 청문회에서 사람들에게 말한다. 증명할 순 없지만 존재한다고. 파머는 그녀가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삶의 공허함은 만남으로 채워진다

파머는 엘리에게 나침반을 선물한다. 나침반은 여행자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도구다. 주위의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한 방향만을 가리키기 때문에, 망망대해를 홀로 여행하는 사람에게 좋은 길잡이가 된다. 영화에서 그들은 여러 차례 나침반을 서로 주고 받는다. 외계생명체와의 ‘접촉’은 영화에서 인류의 ‘나침반’이 된다. 인간은 어떻게 탄생해 이 자리에 서게 됐으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영화 ‘콘택트’는 우리에게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해 묻고, 왜 여기에 존재하는가에 대해 반문한다. 그 해답을 얻지 못하는 한, 삶이란 외롭고 공허한 것이다.

그러나 공허함은 만남으로 채워진다. 영화는 결코 우리가 혼자가 아니며 수십억년을 멸망하지 않고 진보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외계생명체를 찾기 위한 노력은 결국 '우리의 기원'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배가성(Vega)

거문고 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 태양으로부터 거리가 약 26광년 떨어져 있다. 우리에게는 칠월 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서로 만난다는 전설에 등장하는 '직녀별'로 더 익숙해져 있다.

영화 '콘택트'의 과학적 오류 세가지

'콘택트'는 천문ㆍ우주 분야를 매우 과학적으로 다룬 영화다. 그러나 영화에서 발견되는 몇가지 '옥에 티'가 있다.

①과거의 역사가 빛의 속도로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첫 장면에서, 목성을 지날 때쯤 수년 전 방송이 흘러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 목성 근처에 도달한 빛을 포착한다면, 몇 시간 전의 방송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빛이 목성까지 도달하는데는 몇시간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②엘리는 라디오파 망원경에서 수신한 내용을 듣기 위해 헤드폰을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 영역은 20kHz를 넘지 않는데 반해 망원경은 20kHz이상의 주파수를 다루기 때문에, 헤드폰으로 듣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칼 세이건도 헤드폰을 사용하자는 감독의 아이디어에 반대했다고 한다.

③엘리가 외계로부터 온 신호를 포착하자 통제실의 동료에게 핸드폰으로 알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전파망원경이 있는 천문대에서 '전파(radio wave)를 이용하는'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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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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