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은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가 태어난 지 25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장송곡 레퀴엠을 미완으로 남겨둔 채 1791년 12월 5일 35세의 짧은 생을 빈에서 마감했다. 지금도 세계는 그의 선율 속에 빠져 있으며 새해부터 그를 기념하는 행사들이 대대적으로 열리고 있다.
모차르트를 이용한 수익 사업의 하나가 ‘모차르트 효과’다. 모차르트 효과는 최근 혼수상태에 빠진 샤론 이스라엘 총리를 깨우기 위해 이용되기도 했다.
‘모차르트 효과’는 1993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고든 쇼 교수와 위스콘신대 프랜시스 라우셔 교수가 ‘네이처’에 발표한 ‘음악과 공간추리력’이라는 논문에서 비롯됐다. 연구팀은 대학생 36명에게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장조‘를 들려주고 공간추론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점수가 높아졌다고 발표했다.
언론이 이 결과를 대서특필하면서 모차르트 효과라는 말이 생겼다.‘ 복잡한 계산으로 만들어지는 바흐의 음악과는 달리, 자유롭고 활달하며 창의적인 모차르트의 음악이 창조력과 관련된 뇌부위를 좋아지게 한다’는 식의 설명이 뒤이었다. 미국의 음악가 돈 캠벨은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내용을 담은‘모차르트 효과’란 제목의 책 2권과 모차르트 음악 편집 CD 10여 장을 내놓아 큰돈을 벌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의구심을 품은 이들이 여럿 있었다. 실험이 지능 전반에 걸친 것이 아니라 공간 추론 부문에 한정돼 있으며, 대학생에게 효과가 있었음에도 어린이에게 나타난다고 확대 주장됐기 때문이다. 또 몇몇 그룹이 같은 실험을 반복했으나 모차르트 효과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버드대 채브리스 교수는 모차르트 효과 관련 논문을 추적한 결과, 조용한 상태일 때와 모차르트 음악을 들을 때 지적 능력에서 별다른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1999년부터 모차르트 효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로 자리잡았다.
쇼와 라우셔 교수는 모차르트 음악에 전혀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생쥐들도 모차르트 음악을 들려주면 미로를 더 빨리 빠져 나온다는 실험을 통해 이를 반박했다. 그러나 모차르트 효과를 지지하는 연구들은 대부분 쇼나 라우셔 교수와 함께 연구하는 그룹에서 나왔다.
이후 쇼 교수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모차르트 음악을 듣는다고 반드시 똑똑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으며, 라우셔 교수도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일시적, 제한적으로 공간 추리력이 향상된다고 주장했을 뿐이라며 한발짝 물러섰다. 그러나 캠벨은 학계의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음악이 두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차르트 효과의 진위는 앞으로 다양한 실험으로 검증될 필요가 있지만 장삿속 때문에 지나치게 과장되는 것은 우려할 만 하다. 특히 모차르트 효과가 제한적인 연구 결과에 사람들의 상상력이 덧붙여진 후 음반 회사들의 상업적 이해로 과장돼 미디어를 통해 확산됐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미궁 속 모짜르트의 사망 원인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모차르트의 재능을 시기한 살리에리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실제 공식 사망진단서에는 급성 속립진열(발열과 발진을 동반한 급성질환)로 기록돼 있으며, 류머티스성 열병, 심장질환, 신장결석, 선모충병, 독살 등 150여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죽음에 관한 가설이 제시돼 있다.
최근 오스트리아에서는 250주년 기념 행사와 함께 그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최첨단 과학기법인 DNA분석을 실시했다. 이번 분석을 주도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법의학연구소의 발터 파르슨 박사는 모차르트의 것으로 추정되는 DNA를 분석했지만 사망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모차르트의 사망 원인을 더 알아내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바로 DNA 분석을 실시한 두개골 자체의 신뢰성이다. 모차르트의 시신은 직접 매장한 묘지 관리인인 요제프 로트마이어가 장례 뒤 10년이 지난 후에 직접 도굴했다고 한다. 이후 여러 경로를 거쳐 유골은 1902년 모차르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 재단에 안치됐다.
하지만 모차르트 무덤의 정확한 위치가 확인되지 않을 정도로 사후 관리가 소홀했던 탓에 두개골의 주인이 누구인지 불확실한데도 로트마이어의 말만 믿고 모차르트의 유골이라고 확신해온 것이다. 그래서 법의학연구소 측은 이번에 모차르트 가족묘에서 발굴한 2구의 친척 유골과 문제의 두개골간 DNA 대조 작업을 벌였으나, 하나가 일치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의혹을 풀기는 커녕 더 많은 의혹만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