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젠, 디메틸카보네이트, 프로필렌옥사이드…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지만 쉽게 와닿지 않는다. 무언가 만드는 데 필요한 물질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름이 어렵다. 굳이 이들의 용도를 풀어보자면 용매제, 공업 원료, 의약, 농약, 화학제품 등 다양한 분야에 녹아들어가 우리 삶을 보다 편리하게 바꿔주고 있는 물질이다. 이들은 석유화학 공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지지만 공정만으로 가능하진 않다. 이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촉매. ‘촉매홀릭’에 빠져 친환경 대체에너지 및 고효율 에너지의 밑바탕을 만들고 있는 분자촉매 반응공학 연구실을 찾았다.
촉매만으로 부가가치 만들다
“촉매가 활용되지 않는 석유 화학 반응은 거의 없어요. 촉매만 잘 만들어도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지요.” 갑자기 생겨난 기술도 아니고 불현듯 발견된 기술도 아닌 촉매만으로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송인규 교수. 그는 진정한 ‘촉매홀릭’이다.
“학부 때 연구자를 어렴풋이 꿈꾸다가 좋아하는 선배들이 촉매 반응에 탐닉하는 것을 보고 함께 관심을 갖게 됐어요. 수업시간에도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촉매에 빠져들었지요.”
촉매는 그리스어로 ‘분해하다, 파괴하다, 중매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화학 반응시 자신은 소모하지 않고 반응속도를 빠르게 유도하거나 줄이는 것이 촉매의 사전적 의미다.
촉매의 부가가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석유화학 제품은 원료인 원유에서 다양한 화학반응 및 합성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 촉매를 활용하지 않으면 상업적으로 가치가 없다. 원하는 화학물질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제조해 내야 하는데 촉매 반응이 없다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송 교수는 “우리나라는 촉매 제조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미국 등 선진국에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석유화학 공정 기술은 놀라볼 정도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특히 나노기술이 촉매에 도입되면서 기술이 보다 빨리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세대 에너지에 집중
연구실이 진행하는 연구 중 먼저 눈에 띄면서도 친숙한것은 바로 수소 제조다. 아직 상용화를 논하기에는 이르지만 수소연료전지 차량은 차세대 에너지를 동력으로 하는 미래 자동차다. 수소연료전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지의 기본구조 뿐만 아니라 원료가 되는 수소를 끊임없이 공급해야 한다. 이 수소를 만들어내는 데 바로 촉매가 활용된다.
물을 분해하면 수소를 얻을 수 있을 텐데 굳이 촉매까지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 물을 분해할 때 일반적으로 전기분해 방법이 활용된다. 그러나 전기분해를 시키면 투입되는 전기에너지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수소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다. 앞서 언급한 상업적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분자촉매 반응공학 연구실은 현재 수소를 만드는 촉매 반응을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천연가스가 공급, 운반되는 파이프라인에 촉매반응을 유발하는 개질기를 부착해 수소를 제조하는 게 기본이다. 연구실에는 실물의 1000분의 1크기인 수소 제조 개질기와 파이프라인 등을 갖추고 있다.
쓸모없고 유해한 물질에 새 생명을
송 교수 연구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촉매 반응을 연구하면서 무슨 자부심인지 되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연구실은 쓸모없고 유해한 물질을 쓸모있는 물질로 바꾸는 연구를 하고 있다. 지구상에 있는 쓸모없는 폐목재나 유해한 이산화탄소를 유익한 화학물질로 되바꾼다.
우선 폐목재를 이용해 벤젠이나 벤젠의 치환제인 톨루엔 등 석유화학 제품을 얻는 연구를 하고 있다. 폐목재에는 리그닌이라는 성분이 존재하는데 폐목재의 20~30%를 차지한다. 고분자 형태로 존재하는 리그닌을 촉매로 분해해 얻는 연구다.
송 교수는 “폐목재는 자연에 존재하며 쓸모없는 데다가 식량자원도 아니기 때문에 촉매 기술로 유용한 물질로 바꾸는 것”이라며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분자촉매 반응공학의 보람이고 가치”라고 말했다.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유용한 용매용 화학물질을 얻어내는 것도 연구실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이산화탄소에 메탄올 촉매 반응을 일으켜 디메틸카보네이트를 만들거나 페놀을 이용해 디페닐카보네이트를 만들어낸다. 이들은 휴대전화나 휴대용 기기에 들어가는 리튬이온배터리의 전해액으로도 쓰인다.
세계적 경쟁력 갖추는 게 목표
“내년까지 우리 연구실에서 SCI급 논문을 총 300편까지 늘리는 게 목표입니다.” 송 교수의 말이다. 자부심 못지않게 욕심도 대단하다. 지난 2004년 8월에 문을 연 연구실은 현재까지 200여편이 넘는 SCI급 논문을 배출했다. 10년째가 되는 내년엔 300편을 채운다는 게 목표다. 이를 통해 촉매 기술만큼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춰 촉매기술의 선진국을 따라잡겠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과산화수소수 제조다. 연구실은 산학협력을 통해 과산화수소수를 제조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석유화학 원료인 프로필렌옥사이드를 만드는 데 과산화수소수가 필수적인 촉매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프로필렌옥사이드는 식품의 살균제에 쓰이거나 자동차 부동액의 재료인 프로필렌글리콜 등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과산화수소수를 제조하는 기술은 일부 선진국에서만 보유하고 있다. 산소와 수소 반응으로 만들어지는데 물로 만들지 않고 과산화수소수로 만드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실은 특히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헤테로폴리산 촉매를 연구실을 대표하는 타이틀로 삼았다. 헤테로폴리산 촉매는 다양한 금속을 치환해 특성을 조절할 수 있어 최근에 각광받고 있다.
“비록 우리나라가 출발은 늦었을지 모르지만 빠르게 따라잡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일부 선진국이 보유한 기술을 우리 것으로 만들고 있죠. 촉매 기술에서만큼은 국내 유일무이한 연구실인 만큼 사명감을 갖고 연구원들과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험실을 뒤로 하며 마지막으로 강조한 송교수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