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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 차세대 항암제 택솔, 만병통치약인가?

자연에서 찾아낸 보물, 택솔(Taxol). 전세계 항암제 관련학자의 반수 이상이 식물에서 유래한 항암 물질 택솔에 매달려 있다.

최근 택솔(taxol)이라는 새로운 항암제가 등장해 암을 치료하는 의료인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항암제가 처음 세상에 등장한 것은 1946년이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독가스인 겨자가스(mustard gas)에 노출된 군인 가운데서 림프선 및 골수기능이 억제되는 현상이 관찰됐는데 이를 계기로 질소겨자(nitrogen mustard)가 항암제로 개발됐다.

그후 지금까지 수십여종의 항암제가 등장해 사용되고 있지만, 택솔만큼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킨 항암제도 없을 것이다. 일부 매스컴의 과장된 보도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 항암제가 모든 암을 치유할 수 있는 만암통치약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 약제가 이렇게 큰 관심을 끌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새로운 항암제의 등장을 절실하게 느끼던 차에 택솔이 개발됐다. 1946년 질소 겨자가 항암제로 처음 임상에 도입된 이후 길지 않은 세월동안 수많은 항암제가 개발됐지만, 1970년대 시스플라틴(cisplatin)이 개발된 이후 이렇다 할 후속타가 없었다. 암에 대한 치료성적은 항암제의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꾸준히 향상됐다. 시스플라틴이 등장하고 나서는 항암제 치료만으로 전신에 퍼진 고환암 환자를 완치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고형암의 경우 이러한 치료만으로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따라서 새롭고 획기적인 항암제의 등장을 손꼽아 고대하고 있었다.

둘째는 택솔의 항암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항암제로는 치료할 수 없었던 난소암, 유방암 환자에 대해서도 이 약은 뚜렷한 효과를 보여주었다.

셋째로 택솔의 항암작용 메커니즘이 매우 특이해 기존의 항암제와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새로운 작용 메커니즘은 이 항암제가 기존의 항암제의 효과를 보완하거나 기존의 항암제에 대한 내성을 극복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넷째로 택솔은 자연에 존재하는 식물로부터 추출된 물질로 그 동안 인공합성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환자치료를 위한 충분한 양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훼손이 불가피했고, 이러한 이유로 자연의 파괴를 반대하는 환경론자들과 이 항암제의 사용을 절실하게 원하는 많은 암환자 및 의사들이 이 약제의 개발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기 때문에 택솔은 더욱 더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주목나무의 껍질 추출물

지금부터 택솔의 개발 과정을 따라가면서 이 항암제가 과연 어떠한 약제인지 살펴 보기로 하자. 1960년대 초반 미국의 국립암연구소는 새로운 항암물질을 개발하기 위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식물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 준 천연의 치료물질을 찾아내는 것이다 최근 환경훼손 및 오염으로, 더 늦기 전에 유용한 치료물질들을 건져야 한다는 긴박감이 더해져 그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1960년대에만 약 3만종의 천연물질이 검색됐다.

이렇게 수집된 식물중 미국 서안에 자생하는 주목나무(Taxus brevifolia)의 껍질 추출물이 뛰어난 항암효과를 나타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64년 경부터는 미국 리서치 트라이앵글연구소(Research Triangle Institute)의 월(Wall) 박사 등을 중심으로 해 주목나무로부터 항암효과를 갖는 물질을 분리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오랜 연구 끝에 1971년 이들은 항암물질을 순수정제해 그 구조를 확립했다. 연구자들은 이 물질을 택솔(taxol)이라 명명했다(이후 이 항암제의 일반명은 paclitaxel로 지어졌고, 널리 알려져 있는 taxol이라는 이름은 이 약제를 만들어내는 미국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사의 상품명이 되었다).
 

(그림) 택솔의 구조


이 항암제는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매우 복잡하고 특이한 구조를 가진 택산환(taxane ring)에서 사슬(side chain)이 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러한 택산 구조는 택솔 이전에 천연물에서 보고된 바가 없었으며, 아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식물의 독특한 대사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물질이 주목에서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왜 필요한지는 아직 알 수 없다. 1971년에 그 구조가 밝혀졌지만, 이 물질이 임상적으로 유용한 약제가 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제시된 것은 1979년이었다. 그 당시 호로위츠(Horowitz) 박사 등은 택솔의 특이한 작용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항암제가 암세포를 죽이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대다수의 항암제는 세포의 모든 단백질 암호를 저장하고 있는 DNA를 직접 또는 간접으로 공격, DNA의 복제를 방해하거나 이로부터 유래하는 단백질 생성을 방해해 암세포를 죽인다. 또 세포분열의 중기에 형성되는 방추사(mitotic spindle)에 작용해 암세포를 죽이기도 한다.

방추사는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다가 세포분열의 중기에 염색체를 세포의 양극으로 끌고 가기 위해 형성되는 단백질의 가닥이다. 튜뷸린(tubulin)이라는 단량체(monomer)의 단백질이 중합(polymerization)돼 형성되는 물질이다. 세포분열시 염색체가 끌려가기 위해서는 이 튜뷸린이 중합(polymerization) 되는 것 못지 않게 탈중합(depolymerization)과정도 원활하게 이뤄줘야 한다.

택솔은 이 튜뷸린에 작용, 중합한 튜뷸린이 탈중합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암세포를 세포 분열의 중기에서 멈추게 한다. 이렇게 도중하차한 암세포는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이러한 택솔의 작용 메커니즘은 튜뷸린에 작용하는 과거의 항암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이다. 빈카 알칼로이드(vinca alkaloid) 콜키친(colchicin)과 같은 튜뷸린 작용 항암제가 튜뷸린의 중합을 가로 막아 방추사가 형성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항암효과를 발휘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작용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이렇게 특이한 작용 메커니즘으로 미뤄 볼 때, 택솔의 내성 역시 기존 항암제의 내성과는 다르게 나타날 소지가 크다. 따라서 기존의 항암제에 내성을 가진 암세포라 하더라도 택솔에는 내성을 가질 가능성이 적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택솔은 임상적으로도 유용한 항암제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이렇게 고무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택솔은 물에 잘 녹지 않는 성질 때문에 실제 환자에게 투여하는데 문제가 많아 임상시험이 지연됐다. 1983년에 이르러서야 임상시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약제의 임상독성을 평가하고 적정용량을 결정하는 제1상 임상시험에서 많은 환자들이 택솔에 대한 과민반응을 보였다. 그 후 택솔 투여 전에 항(抗) 히스타민제를 미리 투여하거나, 택솔의 투여시간을 연장하는 방법으로 과민반응을 줄이거나 예방할 수 있게 되었다.

1985년 이래 현재까지 많은 암환자를 대상으로 택솔의 항암효과를 평가하는 제2상 및 제3상 임상시험이 시행되고 있다. 여기서 택솔이 난소암 및 유방암에 특히 효과가 있으며, 폐암 두경부암 그리고 위암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고무적인 사실은 택솔을 기존의 항암제에 내성을 보이는 환자에게 투여해도 전혀 항암제 치료를 받지 않았던 환자와 같은 정도의 약효를 보였다는 점이다.

이렇게 좋은 임상시험 결과가 얻어졌지만 실제로 암환자에게 도움이 되려면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다량의 택솔을 얻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수의 주목나무 껍질이 필요하고 따라서 자연의 훼손이 불가피해진다. 또 택솔을 분리하는 과정도 결코 용이하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택솔을 인공적으로 합성하려는 노력이 오래 전부터 착수돼 왔다. 그러나 택솔의 구조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수의 비대칭적인 탄소원자들을 가진 택솔의 완전 합성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돼 왔다.

한편 택솔의 구조 중에서 13번 탄소원자에 에스터(ester) 결합으로 연결된 사슬(side chain)이 항암효과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이어서 사슬이 없는 택산환은 미국산 주목나무 껍질 이외에도 주목나무와 속(Taxus)은 같지만 종이 다른 여러 종의 식물에서 직접 얻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주목나무와 동속이종인 유럽산 주목나무(Taxus baccata)의 경우, 잎에서 택산환이 추출되기도 했다. 이들로부터 택산환만을 갖고 있는 물질(baccatin-III 또는 10-deacetylbaccatin-III)을 추출하고, 여기에 항암효과를 발휘하는데 필수적인 사슬을 인공적으로 붙여 택솔을 반합성하는 방법이 1990년대에 이르러 개발됐다.

이러한 반합성 방법을 활용하면 잎에서 원료를 채취하기 때문에 껍질에서 원료를 채취하는 방법에 비해 나무를 훼손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 큰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택솔생산에 따른 자연훼손의 문제는 약간 해소됐다. 더 나아가서 최근에는 미국의 몇몇 그룹이 택솔의 완전합성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매우 희망적인 소식이지만 이러한 완전합성이 경제적인 면에서도 성공적일지는 더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임목육종연구소에서 주목나무 잎과 씨눈을 조직배양해 택솔을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한다. 현재 미국의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사에서 독점 제조 판매하고 있는 택솔의 값이 엄청난 것을 고려할 때, 임목육종연구소의 성공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이고, 향후 경제적인 측면에서 그 가치가 높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에 들어 프랑스의 롱프랑 로라 회사에서 택솔과 비슷한 항암제인 택소테어(taxotere는 이 회사의 상품명이며, 일반명은 docetaxel)를 개발했다. 이것은 유럽산 주목나무(Taxus baccata)의 잎에서 추출한 물질로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택솔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실제 효과도 비슷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식물검색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돼 현재 임상적 이용을 눈앞에 둔 항암제가 또 하나 있다. 이것은 중국에 주로 자생하는 한 나무(Camptotheca accuminata)의 잎에서 추출된 약제로 이름은 캠프토세킨(camptothecin)이다. 이 약제의 작용 메커니즘 또한 특이하다. 이 약은 DNA 복제에 필수적인 한 효소(DNA topoisomerase I)의 기능을 방해한다. 이 약 또한 택솔처럼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만한 특성을 갖고 있지만, 택솔만한 관심을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항암작용 메커니즘이 기존의 항암제와 완전히 다른 택솔을 얻기 위해 주목나무를 대량으로 심어 재배하고 있다.


택솔 또한 내성 발생이 문제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택솔은 천연물로부터 암치료제를 얻으려는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선각자적 판단과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실로 개발된 새로운 메커니즘의 항암제이다. 앞으로 택솔은 기존의 항암제와 더불어 암치료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 항암제가 모든 종류의 암에 또 모든 암환자에 효과가 있는 만암통치약은 절대 아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다른 항암제와 마찬가지로, 환자의 많은 암세포 중에는 처음부터 또는 치료 도중에 택솔에 대한 내성을 갖게 되는 암세포가 생기기 때문이다. 즉 암세포의 항암제에 대한 내성이 택솔에서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암세포가 항암제에 대한 내성을 갖게 되는 원인은 다양하다. 암세포들은 개개의 항암제에 대해 다른 내성을 나타낼 수 있다. 또 항암제의 종류와 무관하게 암세포가 여러 종류의 항암제에 동시에 내성을 갖기도 한다. 이것을 다약제 내성(multidrug resistance)이라 한다. 이 다약제 내성은 암세포가 한 가지 약제에 내성을 갖게 되었을 때, 이전에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구조나 작용 메커니즘이 다른 여러 약제에 동시에 내성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실제 암환자에서 관찰되는 현상, 즉 한 항암제의 효능이 상실되면 다른 항암제를 복용해도 뾰족한 효과를 얻지 못하는 현상을 다약제 내성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다약제 내성을 유도하는 대표적인 물질이 P-당단백(P-glycoprotein)이다. 암세포의 세포막에 당단백으로 이뤄진 배출펌프 (P-당단백)가 많이 만들어지게 되면 이 배출펌프가 세포내로 들어 온 항암제를 세포 밖으로 배출한다. 결국 이 과정을 통해 세포내 항암제의 농도가 감소해 암치료 효과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항암제에 대한 내성이 이 P-당단백에 의해 내성이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필자는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포호(Fojo) 박사와 택솔이 내성을 갖게 되는 원인을 추적했는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택솔의 항암표적인 암세포내 튜뷸린에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 택솔이 튜뷸린에 작용할 수 없게 되어 내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또 이러한 튜뷸린의 구조적인 변화는 튜뷸린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통해 일어났다.

설령 P-당단백과 같은 배출펌프가 없어도 암세포는 새로운 항암제의 공격을 받은 후 살아남을 수 있다. 이는 대부분의 암세포는 죽더라도 돌연변이 등을 통해 항암제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는 세포가 하나라도 만들어지면, 이 내성세포가 분열을 계속하고 결국 환자는 암으로 죽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항암제의 개발 못지 않게 항암제애 대한 내성을 일으키는 원인을 찾아서 이를 예방하거나 극복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약제내성 메커니즘에 대해 많은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특히 P-당단백에 의한 다약제 내성 메커니즘의 실체는 상당부분 드러나게 되었다. 이를 토대로 약제 내성을 극복할 수 있는 물질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현재 이 내성조절 물질을 이용, 다약제 내성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이뤄져 일부에서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암의 정체가 완전히 밝혀져 이를 근원적으로 치료하는 획기적인 방법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암치료의 모든 방법이 총동원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약제내성 메커니즘의 연구를 통해 기존 항암제의 내성을 극복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새로운 항암제를 개발하고, 새로운 방법의 암치료, 즉 면역요법이나 유전자치료 등을 개발해 이들을 상호보완적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택솔은 이런 면에서 유망한 또 하나의 항암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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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강윤구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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