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터미네이터가 돌아왔다. 1984년 개봉한 영화 ‘터미네이터’의 6번째 시리즈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가 10월 30일 개봉한다. 이번 영화에서 눈에 띄는 점 중 하나는 1편부터 고정 출연 중인 ‘원조’ 터미네이터 T-800(아널드 슈워제네거)의 피부 노화다. 과연 노인의 모습을 한 T-800이 매 영화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첨단 터미네이터를 막아낼 수 있을까. 터미네이터 신작의 관전 포인트를
과학적으로 짚어봤다.
▲ 영화 ‘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에는 신경 로봇 ‘Rev-9’가 악역으로 등장한다.
관전 포인트 1 T-800은 늙었을까?
영화 ‘터미네이터’는 2029년 미래에 인류를 지배하는 인공지능 스카이넷이 인류 저항군의 핵심 인물을 죽이기 위해 과거로 터미네이터를 보내고, 인류 저항군 역시 그를 지키기 위해 작전을 벌이는 액션 SF영화다. 이번에 개봉하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1991년 개봉한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 이후의 이야기다.
2편은 2029년 미래에 있는 스카이넷이 저항군의 수장인 존 코너를 어린 시절에 제거하기 위해 터미네이터 T-1000을 과거로 보내는 내용이다. 이때 미래의 존 코너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T-800을 보내는데, 결국 어린 존 코너와 T-800이 싸움에서 이겨 스카이넷의 개발 자체를 막고 예정돼 있던 심판의 날도 막아낸다.
이러한 28년 전 영화 속 T-800은 울퉁불퉁한 근육의 탄력 넘치는 ‘핫바디’를 가지고 있었다. 참고로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갈 때는 생체조직만 통과할 수 있다는 독특한 설정을 두고 있다. 그래서 미래 로봇이 과거에 도착했을 때는 늘 알몸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 속 T-800은 세월을 정통으로 맞았다. 슈워제네거는 여전히 카리스마 넘치지만, 피부는 쭈글쭈글 탄력을 잃었고 턱에는 흰 수염이 가득하다. 로봇이 늙는 게 가능한 일일까.
스티브 박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시간에 따라 사람처럼 노화가 일어나는 전자피부를 제작할 수는 있다”면서도 “연구자들이 굳이 성능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재료를 개발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기술적으로 피부 노화를 구현할 수는 있지만, 굳이 할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이 문제는 2014년에도 제기됐었다. 슈워제네거는 미국 MTV와 인터뷰에서 “금속 소재의 뼈대를 가졌지만 인간의 육체로 덮여 있으니 껍데기가 노화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다만 인간보다는 노화 속도가 느릴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전자피부는 ‘늙는다’기보다는 ‘닳는다’는 표현이 맞다. 오랜 시간 사용하면 처음보다 두께가 얇아진다거나 찢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훨씬 견고한 전자피부를 개발하는 것이 언젠가는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사람의 피부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전자피부를 만드는 것이 더 큰 과제다. 웨어러블 장비를 만드는 등 활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전자피부가 촉감을 느끼게 만드는 연구도 한창이다. 박 교수팀은 최근 압력과 진동을 감지하는 센서 여러 개로 사람처럼 촉감을 느끼는 전자피부를 개발해 나노기술 분야 국제학술지 ‘스몰’ 8월 16일자 표지논문으로 실었다. doi: 10.1002/smll.201901744
▲ 이번 영화에 등장한 T-800(오른쪽)은 제작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나 피부가 자글자글한 것이 특징이다.
관전 포인트 2 Rev-9는 불사신일까?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창시자인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28년 만에 제작자로 참여하고, 영화 ‘데드풀’의 팀 밀러 감독이 연출을 맡은 이번 영화는 다른 시리즈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액션을 선보인다. 특히 미래에서 온 ‘슈퍼 솔져’ 그레이스(맥켄지 데이비스)와 최첨단 기술력으로 무장한 터미네이터 Rev-9의 대결이 기대를 모은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매화 새로운 최첨단 터미네이터를 등장시켜왔다. 그중에서 가장 혁신적인 터미네이터를 꼽으라면 단연 2편에 처음 등장한 액체금속 로봇 T-1000일 것이다. T-1000은 반으로 갈라도 다시 붙고, 포탄을 맞아도 금방 상처를 회복한다. 손끝은 언제든 날카로운 무기로 변신할 수 있다.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Rev-9도 이렇게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불사신’이다. 그리고 Rev-9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자기복제도 가능하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로봇이 분열해 2개의 로봇이 되고, 이렇게 탄생한 복제 로봇은 원래 로봇과 똑같은 크기와 모양을 하고 있지만,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소병록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 로봇그룹 수석연구원은 “물성을 제어하는 기술이 관건”이라며 “변형과 복제가 가능한 로봇을 구현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성이란 경도와 강도, 질량과 무게처럼 물질이 가진 모든 특성을 뜻한다. 금속이 상태가 변하면 물성의 일부가 변하는데, 어떻게 변했느냐에 따라 제어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가령 고체금속이 열이나 화학반응으로 녹아 액체금속이 되면 질량은 그대로여도 강도가 낮아진다. 이 상태에서 강도를 기존처럼 높이는 기술이 현재로서는 없다.
그런데 소 수석연구원은 기술 발전에 낙관적이다. 터미네이터 2편이 나올 당시에는 용융된 금속이 원래 모양으로 복구되는 기술이 없었지만, 현재는 자기 치유 기술이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올해 5월 브람 판데르보르흐트 벨기에 브뤼셀자유대 교수팀은 열가역적 중합체로 만든 젤리처럼 부드러운 로봇 손을 공개했다. 이 로봇 손은 상처가 나서 찢어져도 새로운 결합을 형성하는 반응을 일으켜 원래 모양으로 복구된다. doi: 10.1109/ROBOSOFT.2019.8722781
또 2017년 한국화학연구원은 황 화합물을 열가소성 폴리우레탄에 더해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복분해반응’이 잘 일어나게 하는 신소재를 개발했는데, 이 신소재는 기존 소재보다 기계적 강도가 2배 이상 크고, 절단 후 붙이면 2시간 만에 달라붙어 원래 강도를 75% 이상 회복한다. doi: 10.1002/adma.201705145
관전 포인트 3 ‘증강된 기계-파이터’는 사이보그?
이번 영화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캐릭터는 미래에서 온 슈퍼 솔져 그레이스다. 그는 최첨단 터미네이터와 맞먹는, 인간으로는 볼 수 없는 대단한 신체 능력을 갖고 있어 사이보그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예고편에서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저항군 수장인 존 코너의 어머니다)조차 그를 사이보그로 착각한다.
하지만 연출을 맡은 밀러 감독은 영국 영화 잡지 ‘엠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그레이스는 기계가 아니라, ‘증강된 기계-파이터(enhanced machine-fighter)’라고 설명했다.
증강된 기계-파이터와 사이보그의 경계를 나누기는 쉽지 않다. 사이보그는 기계적 요소가 결합된 생명체를 뜻하는 말로, 넓은 의미로는 손상된 뼈나 관절을 인공 뼈나 인공 관절로 대체한 사람도 포함된다. 이번 영화에서 그레이스는 기계를 이용해 신체 기능을 최대한 회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신체 능력을 업그레이드한 경우에 해당한다.
소 수석연구원은 “사이보그가 로봇과 싸워 이기려면 인간과 기계를 잇는 인간-기계 인터페이스(MMI)도 중요하다”며 “자신의 능력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도록 판단하고, 기계 장치에 명령이 빠르게 전달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게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심판의 날 그 후, 인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 PDF에서 고화질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