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이 미국에 출장 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차안에 간장게장 두고 내렸는데 차 키 갖고 가버리면 어떡해요? 저거 다 상하겠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남편의 대답. “아차, 깜빡했네. 지금 차에 가봐. 열어줄 테니까.” 아니, 미국에서 한국에 있는 자동차의 문을 연다고? 원격 시동기의 신호가 태평양을 건너갈 정도일까. 곧이어 남편이 만지작대는 것은 스마트폰. 몇 개의 버튼을 누르자 거짓말처럼 자동차 트렁크가 열린다. 최근 자동차 광고에 등장하는 한 장면이다.
‘오너’가 아니면 멈춰버린다
수천km 떨어진 곳에서도 자동차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스마트폰을 활용한 원격제어 기술 덕분이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일종의 컨트롤센터인 텔레매틱스센터에 신호를 보내면 센터가 자동차에 내장된 네트워크 단말기를 무선으로 조작해 차량 문을 연다. 실제로 현대차가 올 상반기 출시한 뉴싼타페 차량에 이 서비스(블루링크)를 선보였다.
다른 기능은 무엇이 있을까.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라고 보면 된다. 더운 여름날 땡볕에 주차된 차량을 타야 한다면 끔찍한 열기에 고개를 저을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탑승 10분 전에 에어컨을 원격으로 켜놓으면 된다. 차량에 탑승한 뒤 번거롭게 내비게이션을 조작하거나, 출발한 후 목적지를 검색하는 등의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폰에서 목적지를 검색한 뒤 그 정보를 차로 보내놓기만 하면 된다. 운전석에 앉으면 차량의 디스플레이에 목적지가 뜨고, 자동으로 길안내가 시작된다.
어린시절 누구나 이런 꿈을 꾼 적 있을 것이다. 자신의 물건이 자신만 알아봐주기를 바랐던 꿈. 내가 조작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로봇 장난감.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오너’를 알아봐주는 자동차 시대도 열리고 있다.
누군가 내 차량을 훔쳐서 멀리 달아나고 있다. 믿을 건 GPS와 3G네트워크(WCDMA)가 통합 연결된 ‘샤크’ 안테나뿐이다. 일단 도난 차량 신고를 한다. 경찰은 텔레매틱스센터에 차량 위치 조회를 요청해 도난 차량의 최종 위치를 확인한다. 여기까지는 평범하다. 텔레매틱스센터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은 이제부터다. 텔레매틱스센터는 데이터 명령을 통해 도난당한 자동차의 속도를 서서히 떨어뜨린다. 차량 내부의 네트워크 단말기를 통해 감속 명령을 내리면 엔진은 스로틀밸브나 연료밸브를 운전자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닫는 방식으로 속도를 줄인다.
도난차량이 정차했다가 다시 출발하기 위해 시동을 걸 때도 시동이 걸리지 않게 할 수 있다. 차량 주인이 아닌 이상 이 차를 운전하지 말라는 의미다. 이런 기능은 텔레매틱스와 엔진시스템 연구가 동시에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특히 자동차 부품이 전자화되면서 무선으로 엔진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게 됐다.
교통사고 미리 대비하는 자동차
지난 8월 3일 유럽에서는 재미있는 자동차 규제 법안이 통과됐다. 새로운 차량에 대해 자율응급제동시스템(AEB) 장착을 의무화하는 게 골자다. 2014년부터 출시되는 신차는 의무적으로 새로운 제동시스템을 장착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안전성 평가에서 별점 5점을 받을 수 없다.
AEB시스템은 한마디로 교통사고 사전대응시스템이다. 레이더와 레이저, 비디오를 이용해 교통사고가 임박했음을 스스로 계산한다. 교통사고 가능성이 커지면 소프트웨어로 브레이크를 준비한다. 사고가 발생하는 찰나에 운전자가 조작하지 못하는 브레이크를 자동차가 스스로 조작하는 것이다. 특히 교통 정체가 심한 상황에서 앞뒤로 충돌하는 사고에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구 결과 이 시스템을 장착하면 교통사고가 27%나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전체에서 매년 교통사고 사망자 8000여 명을 줄일 수 있고 39억~63억 유로의 사고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같은 스마트 자동차는 사고 후에도 빛을 발한다. 만일 어떤 차량의 에어백이 작동했다면 그 자동차는 상당히 심각한 사고를 당했음에 틀림없다. 에어백 작동 신호를 텔레매틱스센터가 감지하면 센터의 상담원이 해당 차량의 네트워크 단말기로 운전자와 통화를 시도한다. 운전자가 의식불명이라면 센터는 즉시 119에 구조 요청을 한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만일 사고를 당한 자동차가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 에어백이 터졌다면. 한밤중이나 새벽, 자동차 통행이 많지 않은 곳에서 사고를 당했다면. 오랜 시간 방치하면 사망 사고로 이어질 일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운전습관 고치세요.”
자동차가 운전자에게 하는 말이다. 스마트 자동차에는 운전자의 차량 운행 정보가 모두 데이터로 쌓인다. 주행거리, 공회전 시간, 급감속·급가속 횟수 등 모든 운전습관이 텔레매틱스센터로 데이터화돼 보관된다. 쌓인 데이터를 분석하면 운전습관이 나오고 이 결과는 운전자에게 주기적으로 제공된다. 이를 테면 ‘공회전 시간을 줄이세요’ ‘급가속을 줄이세요’ 등이다. 언제 얼마나 차량을 운행했는지에 대한 이력 조회도 가능하다.
최근 자전거를 타던 일행을 트럭이 덮쳤던 큰 사고의 원인이 DMB 시청으로 밝혀지면서 DMB에 관한 스마트 기능도 강조되는 추세다. 일반 차량들은 주행 중 DMB 화면이 나오지 않고 음성만 나온다. 그러나 최근에는 변속기가 P(주차) 위치에 있을 때에만 DMB 시청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능도 추가됐다. 애플의 음성인식 서비스 ‘시리’가 보편화되면 자동차 내부로 음성인식 서비스가 들어올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운전에 필요한 모든 조작을 음성만으로 가능하게 만들어 운전 방해 요소를 모두 없앤다는 취지다.
전기자동차에도 꼭 필요한 스마트 기능도 선보이고 있다. 전기자동차는 급속 충전과 완속 충전 방식으로 배터리를 충전한다. 일반 가정에서 완속 충전을 할 경우 저렴한 심야 전기 요금을 이용하기 위해 자동으로 야간 충전을 예약하는 기능 등이다.
바퀴 넷 달린 거대한 스마트폰
스마트폰의 매력적인 기능을 자동차 안에서 그대로 구현할 수는 없을까. 음악, 동영상, 내비게이션, 웹브라우징 등 복잡한 자동차 인포테인먼트(information+entertainment)를 작은 기기에 모두 담은 스마트폰은 자체만으로도 자동차가 매력을 느낄 만하다. 이미 ‘미러링크’라는 기술이 국제표준규격으로 자리잡았다.
미러링크는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이나 다양한 기능을 자동차에서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자동차에서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구현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다. 애플 독자 방식인 ‘아이팟-아웃(ipod-out)’을 우선 거론해 볼 수 있다. 아이폰을 자동차 카오디오에 연결해 사용하는 방식이지만 오디오만 가능하다는 게 한계다.
두 번째는 모든 애플리케이션을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헤드유닛에 설치할 수도 있다. 이 때 스마트폰과 자동차 헤드유닛은 테더링 방식으로 연결된다. 자동차 헤드유닛이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할 때 필요한 네트워크만 스마트폰이 제공한다. 이 방식은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이나 응용프로그램을 자동차 헤드유닛이 사용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미러링크 방식은 스마트폰이 서버 역할을 하게 된다. 스마트폰의 모든 애플리케이션과 기능을 자동차 헤드유닛이 그대로 받아 구현한다.
자동차 회사들과 휴대전화 회사들은 이러한 미러링크를 지원하는 헤드유닛과 스마트폰을 이미 선보이고 있다. 알파인은 노키아와 함께 세계 처음으로 올해 초 미러링크 헤드유닛을 공개했다. 도요타도 노키아와 함께 ‘터치 라이프’라는 제품을 내놨다.
스마트폰 기능이 자동차에서 구현될 때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무엇일까. 바로 운전자의 시점을 흐리는 일이다. 여기저기 애플리케이션이 구동되면 운전자의 시선은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BMW가 가장 먼저 구현한 헤드업디스플레이(HUD)가 관심을 받고 있다.
HUD는 차량 전면 유리에 주행시 필요한 정보를 표시해 운전자의 시선 이동을 최소화하는 장치다. 국내에서는 최근 기아차가 출시한 K9 모델에 최초로 적용됐다. HUD에는 차량 속도와 도로주행시 경보 사항, 내비게이션 주행방향, 후측방 경보, 차선이탈경보시스템 등 다양한 정보가 표시된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자동차… 졸 틈도 주지 않는다
스마트카는 운전자를 그냥 두지 않는다. 안전을 위해서다. 운전자가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도록 간편한 최첨단 편의 장치들이 자동차에 속속 들어왔다.
차선이탈방지장치는 내장된 카메라가 차선을 인식해 자동차가 특정 범위를 벗어났을 때 운전자에게 경보한다. 졸음운전경보장치도 있다. 운전자의 눈을 인식한 자동차 내부 카메라가 눈 깜빡이는 속도와 초점을 인식해 졸음운전을 경보한다. 운전자뿐만 아니라 주변을 지나가는 차량의 안전도 지켜준다.
운전자 눈의 움직임과 핸들조작 상태로 음주운전 여부를 판단해 속도를 줄이거나 운전자 호흡을 통해 혈중알콜농도를 파악한 후 시동이 걸리지 않도록 하는 음주운전방지장치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 도요타가 개발한 시스템은 운전을 시작하기 전 핸들을 잡는 운전자 손의 땀 성분 등을 분석해 혈중알콜농도를 측정한다. 운전자의 눈동자 움직임을 분석해 초점이 지나치게 흔들리면 음주운전으로 판단하고 자동으로 정지하는 시스템도 일부 자동차에 적용됐다.
스마트카의 종착점은 무인자동차
현재 과학기술로 만들 수 있는 스마트카의 종착점은 무엇일까. 사람이 운전하지 않아도 스스로 도로를 달릴 수 있는 무인자동차다. 시각장애인, 지체 부자유자, 장애인 등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 차량을 운전할 수 있다. 장애가 없는 이들은 더 편하게 운전을 할 수 있다.
구글이 무인자동차를 현실로 앞당기고 있는 대표주자다. 구글카는 지난 5월 사상 최초로 일반 도로에서 운행해도 좋다는 면허를 받았다. 미국 네바다주에서는 ‘∞-001’이라고 쓴 빨간 번호판의 도요타 프리우스 모델 자동차(구글카)를 볼 수 있다. 구글카는 서버와 무선신호를 주고받으며 조작을 지시하는 컴퓨터와 레이더 센서, 비디오카메라, 물체 식별을 위한 전파 탐지기 등이 핵심 요소다.
무인 운전 실험을 진행한 사례는 많다. 유럽 자동차 부품 회사인 콘티넨털은 지난 4월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테스트를 미국 네바다주에서 진행했다. 이탈리아의 파르마대 연구팀도 전기자동차에 자동주행시스템을 결합해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중국 상하이까지 운행하는 데 성공했다. 2005년에는 미국 국방부 고등기술연구기획국(DARPA)은 세계 처음으로 미국 서부 사막을 132마일 달릴 수 있는 무인자동차 경주대회인 ‘DARPA 그랜드챌린지(Grand Challenge)’를, 2007년에는 도시를 질주하는 무인자동차 대회인 ‘DARPA 어번챌린지(Urban Challenge)’를 개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무인자동차를 개발해 온 연구자가 있다. 고려대에서 무인자동차를 개발해 온 한민홍 교수는 벤처기업 ‘첨단차’를 창업해 무인자동차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한 교수팀은 직접 개발한 차선이탈 경보장치와 졸음 경보장치 등을 바탕으로 ‘무인 주행 장치(Hands-Off Steering)’를 개발했다. 한 교수팀이 만든 무인자동차는 이미 서울과 대전을 수백 번 왕복하며 오랜 기간 테스트를 진행했다. 구글카는 지난 8월 8일 30만 마일(48만km) 무사고 주행에 성공했다. 지구 지름이 4만km인 것을 감안하면 지구 12바퀴를 무사고로 주행한 셈이다. 향후 돌발상황 대응과 장애물 인식 기능을 보강해 완성도를 높일 예정이다.
기술적인 완성도가 높다 하더라도 무인자동차가 확산되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100% 완벽한 안전성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0년 시작한 구글카 프로젝트의 경우 수백만 km의 테스트를 거친 후 이르면 5년 안에 상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무인자동차에서 운전을 하지 않고 잠을 청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무인자동차에서 맘 편하게 잠을 자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심리적으로 불안한 마음이 앞서기 때문인데 결국 완벽한 안전성을 보여줘야 무인자동차가 상용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는 더 이상 어느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운송수단만은 아니다. 스스로 안전을 지키거나 움직이는 생활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당신이 꿈꾸는 첫 차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다양한 첨단 스마트카 중에서 골라보자.
◀ QR코드를 통해 한 교수가 개발한 무인주행장치로 운행하는 운전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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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최고의 자동차, 마음을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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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교통사고·도난사고 모두 막는다
PART 3.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