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변형 작물을 GM 작물이라고 부른다. GM 작물은 인류에게 불어닥칠 식량난을 해결하고 환경친화적 농법을 실현시키기 위해 개발중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 경지면적의 약 30배에 달하는 넓이에서 GM 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2010년에는 우리 식탁의 80%를 차지할 전망이다.
잠 못 이루는 늦은 밤, 카페인 없는 커피나 차를 한잔 마시면 어떨까.
누군가는 새삼스런 얘기를 왜 꺼내느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 아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이 일은 꿈같은 얘기였을 뿐이다. 우리가 마시던 카페인 없는 커피는 일반 커피에서 카페인을 추출해낸 것으로, 이 과정에서 많은 향들이 제거될 뿐 아니라 때로는 유기 용매가 남아 오히려 건강에 해로울까 염려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하와이의 한 커피회사는 유전공학을 동원해 원천적으로 카페인 없는 커피나 차를 실현시키려고 한다. 유전자 이식을 통해 카페인 생합성 효소 유전자를 억제시킴으로써 커피와 차에서 아예 카페인을 처음부터 생산할 수 없게 하는 연구를 진행중이다.
청색 장미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플로리진이라는 회사는 수년 전부터 청색 장미를 개발하고 있다. 최근 이 회사는 페튜니아의 청색 색소인 델피니딘 생합성 유전자를 이식시킨 자주보라색 카네이션을 개발·판매하고 있다.
만약 청색 목화가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지금처럼 염색하지 않아도 곧바로 청바지를 만들 수 있다. 청색 목화는 염색 과정에서 야기되는 엄청난 오염을 방지할 수 있는 환경보전 작물인 셈이다.
2030년 이전 중대한 식량 위기 직면
1990년 이후 전통 육종에 활용되던 유용 유전 자원의 고갈로 새로운 품종의 개발과 생산성이 정체를 보이고 있다. 때문에 세계 곡물 생산량의 증가율은 인구 증가율을 밑돌기 시작했다. 인간의 수명 연장과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노력의 대가로 세계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말이다. 지구의 인구가 80억명이 되는 2030년 이전에 인류가 중대한 식량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따라서 인류 생존의 필수 요건인 식량 문제의 해결은 오늘날 과학자들이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한편 인구증가와 함께 가속화된 산업화로 말미암아 경지 면적은 줄고 농업 환경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더욱이 환경 보존의 필요성에 따라 비료와 농약의 사용도 제약받고 있다. 또한 화석 에너지원의 고갈로 대체 에너지 개발이 요구되고 있으며, 식량·에너지·환경 문제가 새 세기에 우리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따라서 날로 열악해지는 농업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환경친화적이고 높은 생산성을 약속할 수 있는 대체 기술의 개발이 필연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바로 유전자 변형(GM, Genetically Modified) 작물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선택으로 인식되고 있다. 즉 식량과 대체 에너지원의 공급을 증대시키고 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 환경친화 농법을 보편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선진국들은 식물연구에 대규모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식물 생명공학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집중 육성중이다.
이에 발맞춰 최근에는 한 식물의 특성을 결정짓는 유전체의 전체 구조와 이에 포함된 모든 유전자들의 기능을 밝히려는 연구가 세계적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애기장대와 벼의 경우 완전 해독된 유전체 정보를 바탕으로 식물의 형태, 개화 시기와 종자의 발달, 병해충과 환경 스트레스 내성 등 식물의 특성을 결정짓는 유전자들을 발굴하고 그 기능을 실험적으로 증명하는 대형 사업이 선진국 중심으로 진행중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유전체학 기술로 유용한 유전자원을 분자수준에서 대량 확보하는 일이 관건이다. 이 일은 GM 작물 개발의 첫번째 접근이다. 이 과정은 종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식물뿐 아니라 동물이나 미생물에서 식물체에 유용한 유전자를 발굴하는 것이다. 두번째 단계는 유용유전자를 작물에 대량으로 이식시키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전통 육종 방법을 이용해 생산성 등 농업형질을 크게 향상시킨다. 이같은 삼위일체적 접근 방법만이 인류가 당면할 식량수급과 환경보존의 열쇠를 제공한다고 예측하고 있다. 이 목적으로 미국을 위시한 많은 나라들이 유전체학을 포함한 GM 작물 육성 연구를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최초 상품화 GM 작물 연화지연 토마토
그 결과, GM 작물이 세계적으로 빠른 속도로 개발, 재배되고 있다. 최초의 GM 작물은 1983년 개발된 항생제 저항성 담배였다. 1994년에는 잘 물러지지 않는 연화지연 토마토 Flavr Savr® 가 처음으로 상품화돼 우리의 먹거리 시장에 출시됐다. 이 토마토는 단순히 세포벽의 펙틴을 가수분해하는 효소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시켜서 세포벽의 연화를 방지했다. 한때는 캘리포니아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기념품으로 사가는 수요가 더 많았다고 한다.
이후 지금까지 실용화된 작물은 제초제 저항성 콩·유채·목화, 그리고 해충 저항성 옥수수 등이 있다. 2000년에는 비타민A가 강화된 황금쌀(Golden Rice )이 개발돼 현재 상품화 단계에 있고, 저개발국가를 대상으로 이에 대한 개발 기술이 무상으로 공여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까지 1개국 이상에서 식품 또는 사료로 재배와 유통을 승인받은 경우는 15작물 68품종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구실 수준의 GM 작물 개발 사례는 다수가 보고되고 있으나 실용화 단계를 거쳐 품종으로 등록된 경우는 아직 한건도 없다.
GM 작물은 세계적으로 미국, 아르헨티나, 캐나다, 중국 등 13개 나라에서 재배되고 있다. 재배 면적은 매년 10-20%씩 증가하는 추세다. 2001년의 경우 전년도에 비해 19%가 증가한 5천2백60만ha에 이르는 면적에서 GM 작물이 재배됐는데 이는 세계 경지 면적의 약 5%, 우리나라 총 경지면적의 약 30배에 이르는 넓이이다.
GM 작물 총 재배면적에 대한 각 작물이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콩(63%), 옥수수(19%), 목화(13%) 및 유채(5%)의 순서다. 작물별 재배 면적 현황을 보면, 콩의 경우 세계 총 재배 면적 7백20만ha 중 46%를 GM 품종이 차지했으며, 목화는 20%, 유채 11%, 옥수수 7% 정도로 평균 19%가 GM 작물로 재배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유채의 62% 정도가 GM 품종이 재배될 정도다.
수입 농산물 중 콩 32% 차지
그렇다면 GM 작물은 앞으로 얼마나 빠르게 보편화될까. 세계 종자 시장의 규모는 2000년 2백10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2010년에는 3백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 중 유전공학기술을 응용한 GM 작물의 종자 시장 규모는 2000년 30억 달러에 머물렀으나, 2010년에는 2백50억 달러 규모의 시장 형성을 예측하고 있다. 이는 작물의 상당 부분, 즉 80%가 GM 작물로 대체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2010년쯤 우리 식탁의 80%는 GM 작물이 차지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기능성을 강화한 건강식품이나 의약품을 생산하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는 경우에는 그 시장 규모를 예측하기가 두려울 정도다.
국내 채소 종자 시장은 현재 약 1천5백억원(1억 달러) 규모로, 세계 시장의 0.5%를 차지한다. 이같은 세계 추세대로 간다면 2010년 국내 작물의 GM 종자 시장 규모는 2천억원으로 예상된다. 만약 우리의 자체 기술 개발이 수행되지 않을 경우에는 전량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수확량 증가 목적에서 기능성 강화로
현재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GM 작물이 이미 생활 속에 침투해있다. 1997년부터 수입 농산물에 섞여 들어오기 시작했고, 2000년에 우리가 수입한 농산물 중 GM 콩의 경우 약 32%, 옥수수의 경우 약 8.8%, 유채는 60%라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급기야는 GM 곡물의 혼입량이 3%를 넘어설 경우 이를 표시하도록 하는 규제(표기제)가 실시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21세기는 맞춤 작물의 시대가 될 것이다. 현재 재배중인 대부분의 형질전환 작물은 제초제나 해충 저항성 작물들로 생산 원가를 절감하거나 수확량을 증가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제1세대형 작물이다. 곧 닥쳐올 제2, 3세대형 작물의 경우 특정 영양 또는 건강기능성을 향상시켜 부가가치를 증가시킬 신품종이 지속적으로 개발 보급될 전망이다. 비타민A가 대량으로 함유된 황금쌀이 바로 2세대에 속한다. 원래 갖고 있지 않았던 영양분을 보강하는 면이 강화된다. 더 나아가 3세대 GM 작물은 특정 질병에 대한 저항성을 부여하는 백신 바나나 또는 토마토, 항암이나 콜레스테롤 저하 성분이 강화된 채소와 곡물이 속한다. 특정인이 앓고 있는 질병을 치료까지 할 수 있는 보다 기능적인 작물이다.
이를 실현시키는데 필요한 유용 유전자는 바로 유전체학에 근거한 대량 탐색 과정에서 발굴될 것이다. 유전자 이식 기술은 더욱 발달해 보편적이고, 효과적이며, 안전하고, 안정적인 방법으로 발전할 것이다. 결국 유용한 특성을 결정하는 유용 유전자의 확보 여부에 따라 목적 달성과 산업적 경쟁력이 좌우된다.
최근 유전체학의 등장과 더불어 새로운 유용 유전자 탐색 발굴 노력이 세계적으로 대규모로 행해지고 있어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과학기술부는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으로 ‘작물유전체기능연구사업’을 출범시켰으며 농촌진흥청 또한 ‘바이오그린 21 사업’을 시작했다.
장차 유전자의 완전 해독과 형질전환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을 통해 기계의 부속품을 교체하듯 우수 유전자를 유전체에 효율적으로 삽입하고 조립함으로써 성능이 우수한 품종을 대량생산하는 시대가 전개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르는 환경과 식품 안전성 문제를 해결한 정밀한 기술 개발로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