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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컴퓨터로 치매 조기진단

브레인 & 머신 ➑ 첨단 뇌영상 분석기술

할머니는 10여 년 전 알츠하이머 치매 1기 진단을 받으셨다. 정기건강검진에서 빨리 발견한 덕분에 치료를 일찍 시작해 지금도 별다른 증세 없이 건강하시다. 할머니의 치매를 빨리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첨단 뇌영상 분석 기술 덕분이었다.

아직은 현실이 아니지만 이런 일이 곧 가능해질 것이다. 필자는 강의 시간에 “치매는 인간에게 가장 잔인한 질병”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치매에 걸리면 ‘나’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치매에 걸려 ‘나’를 잃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치매는 수많은 멜로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됐다. 안타깝게도 치매는 아직 불치병이다. 또 나이가 들수록 치매의 발병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치매가 중요한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치매를 아주 초기에 진단하면 약물치료를 통해 치매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로는 초기에 치매를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많은 뇌공학자들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는 해결책을 슈퍼컴퓨터에서 찾고 있다.



처음 일어나는 곳이 주로 단기 기억을 담당하는 곳이기 때문에 건망증이 제일 먼저 온다. 전두엽 부위가 위축되면 판단력이 떨어지거나 감정 절제가 어려워지고, 언어 부위가 위축되면 말이 어눌해진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는 아주 중증의 치매환자가 아닌 이상 뇌가 위축되는 미세한 변화를 추적할 방법이 없었다.

실마리를 제공한 사람은 뜻밖에도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젊은 연구원이었다. 미국 웨슬리안대 수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부르스 피슬(현 하버드 의대 교수)은 수학을 뇌연구에 접목시키겠다는 큰 꿈을 품고 뇌과학으로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처럼 파격적으로 전공 분야를 바꿀 경우엔 새 전공 분야에 적응하기가 매우 어렵다. 피슬도 예외가 아니라 대학 졸업 후 10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연구 실적이 초라했다.

그런 피슬 박사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뇌과학 분야의 대가 앤더스 데일 박사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2000년 피슬 박사는 데일 박사와 함께 살아 있는 사람의 뇌를 MRI(자기공명영상)으로 촬영해 대뇌 피질의 두께를 자동으로 측정하는 수학 알고리듬을 개발했다. 이 연구로 신경세포의 대부분이 분포된 대뇌 피질의 어떤 부분이 위축됐는지 수치와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게 됐다.





피슬 박사가 개발한 방법이 가장 먼저 적용된 분야는 역시 치매였다. 많은 연구자들이 치매 환자의 MRI 데이터에 이 방법을 적용해서 대뇌 피질의 두께가 얇아지는 현상, 즉 뇌가 위축되는 현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결과들은 치매의 조기 진단이 금방이라도 실현될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우선 한 명의 뇌 영상을 정확하게 분석하려면 며칠이나 결렸다. 또 다수의 치매 환자와 정상인을 대상으로 한 비교 연구에서는 분명히 통계적으로 피질 두께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개인별로 진단을 하기에는 개인차가 너무 컸다.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뇌공학자들은 뇌영상 분석에 슈퍼컴퓨터를 쓰기로 했다. 뇌공학자들은 고성능의 슈퍼컴퓨터에 병렬연산 알고리즘을 적용해 분석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두 번째 문제 해결을 위해 뇌공학자들은 대뇌 피질 두께 이외의 다른 변화들도 함께 관찰하기 시작했다. 현재 가능성 있는 후보들은 대뇌 주름의 모양 변화나 해마의 형태 변화 등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피슬 박사처럼 수학이나 전산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이 많다. 국내에서 이 분야 연구를 주도하는 성준경 숭실대 컴퓨터학부 교수도 원래 전산학을 전공했지만 현재는 컴퓨터 그래픽스 기술을 뇌영상 분석에 적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뇌과학이 여러 학문들의 융합에 의해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뇌영상을 분석해 개인별 뇌질환을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서는 수천 명의 뇌영상 데이터를 분석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2012년에는 뇌영상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한 국제 뇌연구 공동연구망인 ‘G브레인(G는 글로벌(global)을 뜻한다)’이 탄생했다. G브레인은 우리나라, 미국, 독일, 캐나다의 4개국 6개 슈퍼컴퓨터 센터를 연결해 서로의 뇌영상 분석 결과를 공유하기 위한 국제 공동 프로젝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한양대 생체공학과가 참여한다.

최신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치매 이외에도 조현병, 범불안장애, 강박증, 우울증과 같은 다양한 뇌질환 환자들도 뇌의 특정한 부위가 변형되거나 위축이 발생한다고 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다양한 뇌질환을 진단하는 검사가 일상적인 건강검진에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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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이우상 | 글 임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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