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과 의혹, 검증과 반론의 열기가 가라않은 후에 과학자들은 쟁정히 실험실에서 현상을 뒷받침할 이론을 찾고 있다.
서막 흥분과 의혹
지금부터 약 1년전, 정확히 89년 3월 23일 미국에서는 2명의 전기화학자가 최근 연구에 관한 기자회견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미국 유타대학의 폰즈(Stanly Pons)교수와 영국의 사우드햄턴대학의 플레이시만(Martin Fleischmann)교수로, 간단한 전기분해장치로 상온에서 핵융합을 실현해내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핵융합을 에너지화하려는 과학자들의 도전은 수소폭탄의 개발이후 줄곧 계속되어 왔다. 핵분열을 이용한 기존의 원자력이 안정성이나 핵폐기물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또한 화석연료를 사용한 발전은 대기오염이나 한정된 자원의 고갈이라는 문제에 봉착해 있었기 때문에, 핵융합은 '무한의 에너지' '미래의 에너지' '꿈의 에너지' 등으로 여겨져 오고 있었다(과학동아 89년 4월호 참조). 그러나 핵융합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원자핵들간의 반발력을 이겨내야 하므로 매우 높은 온도와 압력이 필요하고, 이런 기술적 어려움이 극복된다고 하더라도 효율이 매우 낮아 아직까지는 실용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폰즈팀의 실험은 이런 어려움을 일시에 극복해 주는듯 했다. 실험의 내용도 매우 간단해서 플라스크 시험관에 중수(${D}_{2}$O, 중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진 물)용액을 넣고 팔라듐과 백금의 두 전극을 꽂은 후에 전기를 통해주면 되는 일이었다(그림1).
중학교 물상 실험시간에 처음 다루어지는 간단한 전기분해 장치와 자동차용 배터리만으로 40년 이상 핵물리학자들이 꿈꾸어온 핵융합을 실현했노라고 밝혔을때(그것도 고온이 아닌 상온에서), 세계 과학계는 곧 의혹과 흥분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날밤 미국 CBS방송의 뉴스앵커맨 댄 라더(Dan Rather)는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두 사람은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인물이 될것"이라고 평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되는 길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1막 검증과 반론
상온핵융합이라는 엄청난 사실에 대해 과학자들의 검증이 곧 뒤따랐다. 1주일도 못되어 미국 브리검 영대학의 존스(Stevens Jones)팀은 폰즈팀과는 별도로 독자적인 방법으로 상온핵융합을 실현했다고 발표했다. 폰즈팀이 핵융합의 증거로 다량의 열을 검출한 것에 비해 존스는 핵융합 결과 방출되는 중성자를 측정한 것이었다. 4월 1일에는 헝가리에서, 10일에는 텍사스대학과 조지아연구소에서 각각 상온핵융합에 대한 실험결과들이 발표되었다. 상온핵융합에 대한 관심은 세계적으로 일어나서 소련 일본 이탈리아 심지어 브라질과 인도에서도 확인 결과가 보도되었다.
4월초 미국화학회가 달라스의 한 농구경기장에서 개최되었을때 7천여명의 화학자들이 '이 세기의 가장 위대한 발견'을 듣기위해 몰려들었고, 이때 폰즈는 이미 슈퍼스타였다. 미국 화학회 회장이 에너지원으로서 핵융합의 엄청난 결과와 물리학자들이 당면한 실제적인 어려움을 설명한 후 "이제 화학자들이 이것을 구원하러 온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폰즈를 소개할때 학회장은 박수와 환호로 떠나갈 듯 했다. 폰즈와 플레이시만은 록스타처럼 계속 기자들의 플레시 속에 미소를 머금고 다녀야만 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상황은 반전했다. 가장 먼저 의혹이 드는 것은 어느 그룹도 핵융합 증거로 열과 중성자 둘다 검출하지는 못한 것이었다. 물론 유타팀도 반응시 미량의 중성자를 검출하기는 하였지만 방출된 열로 미루어 검출되어야 할 중성자의 약 10억분의 1밖에는 안되는 양이었다. 나머지 그룹들도 핵융합의 증거로 제시한 것은 다량의 열이거나 다수의 중성자 어느 한 쪽이었다.
또한 처음부터 물리학자들을 중심으로 폰즈와 플레이시만의 실험에 대한 의혹이 일었다. 이론적으로 상온핵융합을 설명할 수 없고, 논문이 전문학술잡지에 발표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공표한 것은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학술잡지에 실린 논문도 세세한 부분은 기술되지 않았고 심지어 화학에 있어 기본적인 전극의 전압이나 전극간의 거리 등도 빠져 있었다. 한 핵융합물리학자는 폰즈팀이 발표한 열로 역산해본다면 이때 방출된 방사선으로 이들 모두는 죽었어야 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조지아연구소에서는 자신들의 결과가 오류였을지 모른다며 핵융합발표를 철회했고 텍사스대학에서도 처음 측정열의 1/8정도 밖에 얻을 수 없었다고 결과를 수정했다. 더욱이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는 현재의 가장 정교한 장치로도 상온핵융합에 대한 긍정적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고 발표했다.
폰즈와 플레이시만의 명예에 결정적인 손상을 준 것은 영국의 세계적 과학잡지 네이처(Nature)와의 관계가 알려지면서였다. 당초에 네이처지에 논문을 제출했던 폰즈팀은 더 많은 증거를 요구해오자 자신들은 매우 바쁘다며 제출을 거부했다. 네이처지는 이들의 논문이 측정치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결과가 부족하다고 논평하면서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유타의 현상은 가공일 수 있다'고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논문이 반송되었을때 플레이시만은 "네이처지는 우리의 논문을 출판하기에 적절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긴 논문을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이 말은 이중나선의 발견에 관해 네이처에 실린 왓슨과 크릭의 9백단어밖에 안되는 짧은 논문이 노벨상까지 타게 되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폰즈와 플레이시만은 미국 하원에까지 진출했다. 과학우주기술위원회에서 폰즈는 수식이 가득한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플라스틱모형으로 만든 핵융합기구를 들고 어떻게 거기서 열이 발생하고 이 열이 인류의 에너지 문제에 어떤 해결책을 줄 수 있는지를 열심히 설명했다. 유타대학의 총장은 이런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상온핵융합연구소 설립에 쓰일 2천5백~4천만달러의 기금을 제안했으나 하원은 좀 더 생각해보기로 하는 신중한 결정을 내렸다.
5월1일 볼티모어에서 열린 물리학회는 폰즈와 플레이시만에게 심각한 반격을 가했다. 9명의 심판진(panel)중 8명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그들은 용기(容器)를 저어주지 않았고 뜨거운 곳에만 온도계를 꽂은 결과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 물리학자가 다음과 같은 시적인 구절을 읊었을 때 이날 회의는 결론이 내려졌다. "수천만달러가 위험하게 되었구나 형제자매들이여, 그것은 과학자가 온도계를 저 곳이 아닌 이 곳에 넣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폰즈와 플레이시만은 자신들의 결과에 대해 매우 단호했고 그 다음주에 열린 전기화학회에서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실험사실들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2막 냉정을 되찾고
이후에도 과학자들은 여러차례 회의나 세미나들을 진행하였으나 어떤 통일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무엇이 있다고 믿던 이나 믿지 않던 이나 그 어느 누구도 그들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거의 석달동안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과학자들을 흥분시켰던 상온핵융합 문제는 서서히 제1막을 내리고 있었다. 이제 과학자들은 카메라 플래시를 떠나 자신들과 의견을 같이 하는 이를 모아 각자의 실험실로 돌아가 더 나은 실험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것은 뜨거운 서막과 1막에 비해 냉정한 제2막의 시작이었다.
그 후에도 상온핵융합에 대한 검증은 간헐적으로 곳곳에서 진행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어떤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하고 있다. 어떤 실험이나 이론도 폰즈팀의 상온핵융합에 결정적인 확증이나 반증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다만 이제 과학자들은 애초에 폰즈가 본 것이 맞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에너지원으로 사용될 만큼 충분치 못하다는데 합의하게 되었고, 실용적인 문제보다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의 개발에 더욱 주력하게 되었다.
1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볼 때 상온핵융합 논쟁은 하나의 해프닝이나 에피소드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전세계 과학자들을 한 순간이라도 열광시켰던 상온핵융합논쟁은 많은 의혹과 에피소드를 남긴채 역사의 이면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어쩌면 상온핵융합은 미완성으로 그 막을 내리게 될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지난 87년에도 전세계 과학자들은 또 다른 핫이슈에 매달렸었다. 그것은 고온초전도체현상으로, 많은 과학자들이 보다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체 현상을 일으키는 물질과 그 생성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고온초전도체는 중요한 물리현상으로 인정받았다. 처음으로 고온에서의 초전도체현상을 보고한 스위스 IBM연구소의 베드노르즈와 뮬러는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상온핵융합은 곧바로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말고도 고온초전도체 현상과는 다른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과학 내적인 문제와 외적인 문제로 나눠 살펴봄으로써 상온핵융합 에피소드의 원인과 배경을 추적해 보자.
적절한 이론이 없다
상온핵융합은 과학 내적으로 몇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상온핵융합은 처음부터 그것을 설명해주는 이론을 갖지 못했다.
MIT에서는 중수소가 팔라듐안에서 핵융합의 특수한 형태인 헬륨4로 변하면서 높은 에너지를 내놓는다는 이론을 내었다. 캘리포니아대학에서는 '보존차폐 효과'로 중수소이온이 반발력을 이긴다고 설명했다. 핵융합이 아니라 단순한 화학반응이라는 목소리도 높았으며, 두개의 중성자가 헬륨3과 중성자로 융합하는 것이 아니라 3중수소와 양성자로 융합한 결과라는 설명도 제안되었다.
올해 1월 일본에서는 팔라듐이 중수소를 흡수했다 내놓는 과정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핵융합반응이 일어나며 이 현상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물리학의 범위내에서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든 상온핵융합을 설명할 수 있는 합의된 이론은 처음부터 없었고 이런 이론의 부재가 핵융합논쟁을 가속화시켰다.
사실 상온핵융합에는 선배격인 현상이 하나 있었다. 이 현상은 '뮤온활성화핵융합'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1950년대 이래로 물리학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뮤온(muon)은 전자보다 약 2백배나 무거운 금속으로, 이 뮤온이 중수소의 전자를 밀어내고 무게 때문에 중수소의 핵들을 가깝게 결합시켜 핵융합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미 알려진 뮤온에 의한 핵융합과는 달리 이번의 상온핵융합은 과학자들에게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상온핵융합은 실제적인 기술적 어려움도 겪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핵융합의 증거로는 3중수소와 열, 그리고 중성자를 들 수 있다(중수소에 의한 핵융합 반응은 보통 다음 두가지가 있다. D(중수소)+D→${ }^{3}$He+n, D+D→p+T(3중수소)). 물론 방출되는 수소원자핵 즉 양성자를 검출하면 되지만, 양성자는 중수속에도 함유되어 있어 비록 에너지가 높은 양성자가 튀어나오더라도 곧 에너지를 잃어 중수속의 양성자와 구별이 모호하게 된다. 3중수소는 양성자 하나에 중성자 두개가 붙어있는 불안정한 형태이므로 베타선과 헬륨3으로 곧 변환한다. 이 베타선을 측정하면 3중수소의 양은 알 수 있지만 중수속에는 원래 3중수소가 상당량 포함되어 있어 서로 구분이 안될 뿐더러 방출되는 중수소의 양이 매우 적어서 그 검출이 어렵다. 한편 열측정은 정확한 반응 형태가 알려지고 어떤 물질이 발생했는가를 알아야만 하므로, 정확한 반응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얼마만큼이 여분의 열량인지 알 수가 없다. 결국 정확한 핵융합반응의 검증은 중성자를 측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중성자를 측정하는 것은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우선 중성자는 대기중에 매우 많이 포함되어 있어 만일 손바닥을 펴고 있으면 매초 한개의 중성자가 통과하고 있다고 보아도 된다. 이 대기중의 중성자는 우주선이 대기중에서 에너지를 잃으면서 방출되어 나온 것이다. 보통 중성자 측정장치의 성능은 두가지에 의해 좌우되는데 하나는 측정장치의 효율, 즉 최저 몇개의 중성자에 처음 반응하느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주선에 의한 중성자를 (보통 배경중성자라고 부른다) 실험결과 나오는 중성자로 부터 분리해내는 능력이다. 이중 배경중성자를 제거해버리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조지아연구소팀이 발표결과를 철회한 이유도 이 어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종합해보면 상온핵융합은 정확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도 없거니와 핵융합현상을 정확하게 검증하기에도 기술적으로 큰 러려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왜 기자회견이란 방식을 취했는가
위에서 기술한 내적인 문제들 말고도 상온핵융합은 초기부터 멏가지 의혹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상온핵융합논쟁의 시발자인 폰즈와 플레이시만은 정상적이지 못한 방법을 택했다. 그들의 실험에 대한 보고가 처음 실린곳은 과학 논문지나 잡지가 아닌 경제신문이었고, 곧바로 기자회견이라는 방법으로 그들의 결과를 발표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학회지나 전문잡지들을 통해 발표한 후 공개화하는 방식을 따랐던 것으로 볼 때, 과학자 사회에서는 비정상적인 방법이었다. 더군다나 폰즈와 플레이시만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연구의 자세한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하였다. 처음 한 동안은 유타의 실험내용들이 팩시밀리를 통해 암암리에 여러 연구실을 돌아다녔다. 이러한 잘못된 선례를 다른 과학자들도 그대로 따랐다. 논문 결과가 출판되어 나오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대중적 기자회견을 통해 곧바로 발표하고는 했다. 과학자들이 보여준 이러한 비정상적인 성급함은 이들이 부와 명예를 먼저 차지하려고 덤벙댔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했다.
핵융합의 실현은 미래의 에너지원이라는 실용적 문제와 연관을 맺고 있어서 상온핵융합의 가능성은 일반대중들에게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핵융합은 엄청난 에너지를 내지만 그 원료의 한 종류는 보통의 물에서 또 한 종류는 바닷물속에 포함되어 있는 리튬으로부터 값싸게 얻어낼 수 있다. 더군다나 지금의 화석연료처럼 온실효과를 일으키지도 않고 핵분열처럼 방사성 폐기물을 만들지도 않는다. 또한 방사선을 내는 중성자도 매우 적게 나오며 만약 위험한 경우에도 단지 반응을 중지시켜 버리면(전원을 차단하면) 안전하다. 이러한 에너지원으로서 핵융합이 갖는 놀라운 이점들이 바로 수많은 과학자들이 폰즈와 플레이시만의 실험에 관심을 기울이고 또 그렇게 성급히 결과를 발표한 이유중의 하나였다. 아마도 누군가 확실하게 상온핵융합에 관한 업적을 얻어낸다면-정확한 실험이든 이론이든 간에-틀림없이 노벨화학상이나 물리학상을 받을 것이고 나아가 에너지로서의 실용성이 인정된다면 평화상까지 받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실용화와 관련된 비법(노하우)이나 특허등은 엄청난 명예와 더불어 실제적인 부를 약속할 것으로 보인다. 상온핵융합의 발표이후 유타대학은 이미 수개의 특허를 신청했고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표명해왔다. 유타대학 당국은 하원의 위원회에서 전문로비업체까지 동원할 정도였다.
이런 과학자 사회의 흥분말고도 대중매체가 보여준 열광적인 모습은 지나치기까지한 것이었다. 3월23일 경제신문에 상온핵융합의 기사가 실린 이후로 미국의 TV나 일간지들을 필두로 세계의 신문들은 연일 상온핵융합 기사를 다루었고 심지어 과학분야에 전통이나 경험이 전혀없던 신문들도 이 대열에 끼어들었다. 세계적인 시사잡지인 타임지나 뉴스위크도 상당한 지면을 할애했고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 네이처지도 좋은 논쟁거리를 제공하였다. '수소폭탄 길들이기' '미래의 에너지'라는 식의 대중적 표현으로 시작되는 이들 기사는 전문적인 과학자들 뿐만 아니라 과학에 무지했던 국회의원이나 대중들에게도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족한 것이었다. 일부에서는 이런 모습을 '미디어과학'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였으나 또 일부에서는 긍정적인 면을 인정하기도 하였다. "폰즈와 플레이시만이 사회에 공헌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아폴로의 달 착륙이후 무관심했던 대중의 과학적 호기심에 불을 지른 것이었다."
폰즈는 존스와의 약속을 배신했다
마직막으로 밝혀진 유타대학과 브리검영대학(BYU)과의 관계는 상온핵융합 에피소드에 마지막 하일라이트를 장식한다. 폰즈는 영국의 사우드햄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플레이시만과 가까워졌고 그 후 유타에 온 이후로도 상당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84년 두사람은 상온에서도 핵융합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얻어냈고 공동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편 BYU의 존스는 일찍부터 앞에서 기술한 뮤온 핵융합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미국에너지청으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아 상온에서 핵융합의 가능성을 시험해 오고 있었다. 88년 9월 폰즈팀의 연구비 지원서를 검토해 달라는 에너지청의 요구를 받은 존스는 놀랍게도 이들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곧 두 대학의 관계자들은 여러차례 회합을 가졌고 난항끝에 3월 24일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에 공동논문을 제출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하지만 유타팀은 약속을 어겨 전날인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상온핵융합을 실현했다고 발표해버렸고 이미 전기화학 전문학술지에 10여일전 논문을 우송해 놓고 있었던 존스는 이 소식에 대해 "두들겨 맞은듯 하다"고 표현했다. 그는 곧바로 준비중이던 논문을 부랴부랴 네이처에 투고했다. 상온핵융합이라는 엄청난 과학적 발견에 대해 우선권을 획득하려는 과학자들간의(또는 대학 당국간의)경쟁이 연구자들간의 약속을 저버리게 한 사건이었다. 그후 플레이시만은 미안하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두 대학간의 경쟁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연구결과를 훔쳤다는 식으로까지 비화되어 호기심 많은 매스컴에 좋은 고십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
얼마전 '배신의 과학자들'이라는 특이한 제목을 가진 책이 번역, 출판되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과학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진리의 추구과정이며 과학자들을 일종의 성직자처럼 여기던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속에서 여러 과학자들이 보여준 기만, 우선권의 도용, 데이터의 조작, 허위논문의 게재 등의 모습은 이들의 개인적 심리적 원인을 떠나 큰 충격과 의미를 던져주었다. 특히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는 미국의 의학이나 화학 등 실제적 응용성이 큰 분야에서 어떤 비리가 일어날 수 있는가를 자세히 기술했다.
이와 비슷한 잘못된 모습들이 이번 상온핵융합 발견과정에서도 발표되었다. 사실 과학자들에게 '우선권'은 과학지식에 대한 공개적 인정과 발견자의 연구경력축적이라는 본래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 우선권을 향한 경쟁이 엄청난 명예나 경제적 이익과 직접 연결될 가능성이 있을때 특히 매스컴으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을때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가를 상온핵융합 에피소드는 잘 보여주었다. '열광과 음모'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모습에서,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걸어가고 있는 길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었고 일반인들은 현대과학이 갖고 있는 어두운 이면을 볼 수 있었다는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얻을 수 있는 하나의 교훈은 '전통적인 과학의 방법의 중요성'이다. 충분한 실험과 검증을 거치고 그리고 나서 동료과학자들의 확인을 받는 일(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지켜온 방법)이 옳았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었다. 역으로 이런 가치가 있기에 과학자들이 이 방법을 전통적으로 지켜온 것이었다. 과학에 있어 혁명적인 내용이나 개념이 전통의 굴레에 묶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동료과학자사회로부터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절차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온핵융합이 과학자사회의 속성-즉 어떤 과학의 내용이 중요한 가치를 지닐수록,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수록 빨리 검증되고 확인된다는-에도 불구하고 에피소드로 끝날 것 같다는 점은 전적 과학의 방법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일깨워주었다.
상온핵융합에 관해 국내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상온핵융합에 관한 소식이 들려온 이후로 많은 과학자들이 실험적으로 검증해 보려고 노력했고 여러 학회에서는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으며 5월말에는 과총주최로 6개학회가 공동 학술회의를 갖기도 하였다. 많은 과학자들은 실험기자재의 미비와 실험의 불안정을 이유로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에 반해 아주 한국적인 해프닝이 벌어졌다. 과기처에서 과학자들을 앞질러 "과학원과 화학연구소의 두 교수팀이 각각 독자적으로 상온핵융합현상을 재현해 냈다"고 발표했고 곧이어 이 연구에 1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이에 일부에서는 과기처가 지나치게 낯을 세우려 하고 모든일을 관주도로 밀어붙이려 한다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중성자를 제대로 측정할만한 장비조차 갖추지못한 우리의 형편으로 볼 때 그때그때의 시류에 편승하여 졸속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기초과학을 꾸준히 육성해야 세계적인 연구수준에 뒤 따라 가기라도 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해준 한차례 해프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