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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일본 에도시대 유학자가 쓴 논어 주석서 ‘논어징’을 읽다 한 대목을 트위터에 올린 적이 있다.

“사람에 대해 알면 안다고 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사람을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위정 편)

원래 농담을 하려던 거였는데, 올리자마자 논어와 한비자에 대한 책을 쓴 작가 한 분이 답장을 보냈다. “‘사람’은 본인이 넣은 건가요?”

그도 그럴 것이, 원문에는 ‘사람’을 의미하는 인(人) 자가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읽는 주자 주석의 논어는 이 대목을 사람이 아니라 학문과 진리에 대한 이야기로 푼다.

질문에 답은 해야겠기에 “일본 학자의 독창적인 해석”이라고 하고 넘어갔지만,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나는 저 대목을 ‘알고’ 있던 걸까. 아니, ‘안다’는 게 대체 뭘까.

과학에서 ‘안다’는 것은?

그런데 과학자, 특히 물리학자들도 같은 고민을 하나 보다. 도대체 어떤 지점까지가 과학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고, 어떤 지점부터가 과학으로 알 수 없는 부분일까.

이번 힉스 기획에서도 큰 도움을 줬고 과학동아에 관련 기고도 두 번(2011년 6월과 2012년 4월) 했던 이강영 건국대 물리학부 연구교수는 ‘본다’는 기준을 제시할 것 같다. 좀더 과학적으로 표현하면 ‘관찰’이다. 경험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세계는 확실히 과학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세계, 즉 관찰할 수 없는 세계는 어떨까. 이 교수는 아예 이 주제로 색다른 물리학 책을 새로 썼다. ‘보이지 않는 세계’다.

주로 눈으로 정보를 파악하는 동물인 우리는 탐구 대상이 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세계(원자)가 되자 혼란에 빠졌다. 불과 130년쯤 전, 음속의 단위로 우리와 친숙한 유명한 물리학자 에른스트 마흐(마하라는 단위가 여기서 나왔다)는 “원자는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과학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보면 말도 안 되지만, 사실 이 의문은 모습을 달리해가며 지금까지 과학계에 끊임없이 출몰하고 있다. 마치 유령처럼.

이 책의 백미는 후반부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던 ‘본다는 것의 의미’가 물리학의 최전선으로 확장된다. 빛이 빠져 나오지 않는 블랙홀이나 암흑물질, 3차원 이상의 고차원 공간은 현재 직접 볼 수 없다. 가까운 미래에도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론도 불완전하며, 그 중에는 말 그대로 ‘본다’는 말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도 있다.

“다만 어려운 것은 4차원 공간을 보는 것이다. 3차원 공간에서 만들어진 우리의 뇌로 4차원 공간을 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 높은 차원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 본다는 것을 초월한 세계다”(326쪽)

그럼 인류는 이들을 아는 것일까 모르는 것일까. 혹시, 영원히 볼 수 없는 도깨비 뿔 같은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은 과학일까.
 

볼 수 없는 것에 도전하는 과학의 힘

하지만 인류의 지식은 끊임없이 ‘본다는 것을 초월한 세계’에 도전하면서 넓어졌다. 도저히 볼 수 없을 것 같은 고차원 공간이나 암흑물질도, 비록 간접적으로라도 증명할 수 있는 실험을 고안한다. LHC와 같은 고에너지 실험시설이 그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이론은 이들을 이끄는 첨병 역할을 한다.

이렇게, 미지의 대상을 마치 본 것처럼 알게 하는 힘이 과학에는 있다. 우리는 운 좋게도 그 전형적인 예를 바로 얼마 전 목격했다. 표준모형이라는 물리학 이론이 예측한 마지막 입자 힉스가 그렇게 우리 시야에 들어왔다.

이 책은 상당히 이해하기 쉽다. 저자는 작년 ‘LHC, 현대물리학의 최전선’을 내 과학책으로는 드물게 제52회 한국 출판문화상 교양부문 저술상을 수상했다. 설명이 정확하면서도 우아해 현대 물리학의 세계에 갓 들어서려는 사람에게도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만약 이 책을 읽고 ‘본다’로 대표되는 과학의 미묘한 문제에 대해 더 탐구해 보고 싶다면, 역시 최근에 나온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의 제2장을 함께 읽어볼 것을 권한다. 앞서 예로 든 고차원을 주장하는 끈이론이나, 과학인지 철학인지 헷갈리는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과학동아 2011년 10월호 참조), 영원히 관측할 수 없는 다중우주(2012년 5월호 참조), 그리고 외계생명체 탐사(2012년 7월호 참조) 등이 과연 과학인지를 논하는 부분이 나온다. 저자는 이들을 일반적인 ‘과학’과 구분해 ‘거의 과학’으로 분류하고 있다. UFO나 최근 시조새 교과서 논쟁으로 시끄러웠던 창조과학 등 ‘사이비 과학’보다는 훨씬 과학에 가깝지만, 그래도 볼 수 없고 증명할 수 없기에 어엿한 과학으로는 보지 않겠다는 냉정한 입장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거의 과학’ 주제를 다룬 최근 과학동아 기사는 하나같이 다 기자가 썼다. 외계생명체와 행성을 다룬 지난 호를 마치며 후기에 “숨어 있는 편벽한 것을 들쑤시고 괴이한 행동을 하면 후세에 이야기될지 모르겠지만, 나(공자)는 하지 않는다”는 ‘중용’의 말을 인용한 것도 그런 고민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호에 힉스 입자 관측 소식을 기획으로 다루면서 조금 위안을 받았다. 과학은 공자님 말씀과 달라서, ‘숨어있는 편벽하고 괴이한’ 것도 눈에 보일 때까지 파고든다(그래서, 힘 내서 다음 호에는 암흑물질을 다룰 예정이니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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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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