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수호하는 여전사, 캡틴 마블이 또 한 번 화려하게 돌아왔습니다. 11월 8일 개봉한 ‘더 마블스’에서는 캡틴 마블을 중심으로 한 세 전사들의 멋진 팀플레이를 볼 수 있는데요. 기존의 마블 영화에서도 많은 히어로들이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번 영화는 좀 더 특별합니다. 세 명의 전사들이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서로의 위치가 바뀌게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심동체 급 팀플레이를 선보입니다.
‘더 마블스’를 이끄는 주요 인물은 캡틴 마블로 불리는 캐럴 댄버스, 댄버스의 절친이자 동료였던 마리아 램보의 딸 모니카 램보, 그리고 열렬한 어벤져스의 팬인 카말라 칸입니다.
댄버스는 빛을 흡수해 광자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빛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에너지를 만들어 양 팔에서 강한 빔을 발사할 수 있고, 광자 에너지를 추진력 삼아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설립한 지구의 S.W.O.R.D(지각 무기 관측 및 대응국)에서 일하던 램보는 뜻밖에 빛을 볼 수 있고 빛의 파장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어벤져스의 오랜 팬이었던 칸은 증조할머니의 뱅글을 받아 빛을 물체화 시키는 초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진정한 ‘성덕’이죠.
광자 에너지로 우주를 항해하는 ‘솔라 세일’
빛을 흡수하고, 빛을 보고, 빛을 물체화시키는 세 가지 능력의 공통점은 바로 빛, 광자를 이용한다는 점입니다. 빛은 파동인 동시에 입자인 이중성을 갖습니다. 영화에서 댄버스의 빛을 흡수하는 능력은 빛의 입자성에 기반한 상상입니다. 입자란 운동에너지를 가진 물질이고, 운동에너지를 가진 물질은 다른 물질과 부딪히면 그 물질을 움직이게 하죠. 영화 속 댄버스가 빛을 흡수할 때 팔이 밀리지 않도록 잡고 있는 모습을 보면, 광자가 댄버스의 팔을 밀고 있다고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광자를 흡수해 전기에너지로 사용하는 ‘태양전지’가 활발하게 쓰입니다. 빛을 쪼이면 태양전지 내 금속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는 ‘광전효과’가 발생하고, 튀어나온 전자가 도선을 따라 흐르면서 전류가 발생합니다. 만약 댄버스의 팔이 태양전지처럼 반도체로 구성돼 있다면 광자를 흡수하고 그 과정에서 전자를 방출해 빔을 발사하는 상상도 해볼 수 있습니다.
광자의 에너지를 활용하는 사례는 또 있습니다. 지구에서 수만 km 떨어진 우주에서 말입니다. 2019년 6월 다국적 비영리 단체인 ‘행성협회(Planetary Society)’는 커다란 돛을 단 우주선 ‘라이트세일2’를 발사했습니다. 라이트세일2가 기존의 우주선과 다른 점은 무거운 연료를 싣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라이트세일2는 1233일, 약 3년 5개월간 지구 궤도를 1만 8000번 돌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바로 태양이 뿜어내는 광자들의 운동에너지 덕분입니다. 라이트세일2에 달린 돛은 가로세로 각각 5.6m로 총 너비는 약 32㎡입니다. 광자들이 이 돛과 충돌하면서 돛을 앞으로 밀었고, 그 힘으로 라이트세일2는 총 800만 km를 항해했습니다.
우주는 공기저항이 없기 때문에 돛이 작은 힘만 받아도 빠르게 가속할 수 있습니다. 행성협회에 따르면 라이트세일2는 약 0.058mm/s²로 가속했습니다. 처음에는 ‘에계~’ 실망할 수 있지만 한 달 동안 햇빛을 계속 받으면 시속 549km까지 빨라질 수 있습니다. 이는 제트기보다 훨씬 빠른 속도입니다.
빛의 파장을 바꿀 수 있다면
영화 속 주인공 램보처럼 빛의 파장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요. 가장 쉬우면서도 재미있는 상상은 투명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빛은 모두 가시광선 영역의 파장인데요, 내 몸에 맞고 반사되는 빛의 파장을 모두 자외선으로 바꿔 버린다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겠죠.
열대지방에 주로 서식하는 플랑크톤 사피리나(Sapphirina)는 투명한 몸을 가진 생명체입니다. 항상 투명한 것은 아니지만 빛의 각도에 따라 순간 투명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사피리나의 등 부분은 육각형 모양의 구아닌 결정 층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런 구조 덕분에 사피리나는 빛의 각도에 따라 붉은색, 푸른색, 에메랄드색 등 다양한 색깔로 보이게 되는데요. 특정 각도로 빛을 비추면 반사되는 빛의 파장이 자외선으로 바뀌면서 우리 눈에 투명해질 수도 있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사피리나의 등껍질처럼 빛의 파장을 바꿔 투명하게 보일 수 있는 ‘메타물질’을 찾고 있습니다. 메타물질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특성을 가지도록 인위적으로 만든 물질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만약 눈에 안 보이는 메타물질을 발견한다면 군사적으로 유용한 기술이 될 수 있겠죠. 실제로 최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선 투명망토 기술이 공개됐습니다. 맨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망토는 아니지만, 밤중에 병력을 확인할 때 사용하는 열화상카메라에 감지되지 않도록 만드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투명망토와 유사합니다.
그렇다면 관측 대상이 실제 육안으로 보이지 않게 만드는 기술도 가능할까요. 원리 자체는 간단합니다. 빛이 어떤 물질을 만나게 되면 굴절이라는 현상을 통해 휘어지는데요. 이때 빛이 온 방향으로 굴절하는 ‘음의 굴절’이 일어나도록 만들면 됩니다. 그러면 빛이 크게 휘면서 관측 대상을 지나쳐 뒤에 있는 사물에 부딪히고, 그럼 결국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은 관측 대상 뒤에 있는 사물에서 반사된 빛이기 때문에 관측 대상은 말 그대로 안 보이게 됩니다.
순식간에 위치가 바뀐다? 양자면 가능
이번 영화에서는 세 주인공이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위치가 순식간에 바뀌는 모습이 나옵니다. 마치 순간이동을 하듯이 말이죠. 순간이동을 하려면 빛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여야 하는데, 이건 지금까지 많은 과학자들이 증명했듯 불가능합니다. 이런 순간이동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양자 상태의 정보’뿐입니다.
양자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가장 작은 입자로, 우리가 눈으로 보는 거대한 물질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입니다. 이런 양자의 움직임을 수식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양자역학이죠. 양자역학에 따르면 양자는 ‘중첩’과 ‘얽힘’이라는 아주 중요한 특성을 갖습니다.
양자의 중첩은 둘 이상의 상태가 확률적으로 공존하는 상태입니다. 쉽게 말해 0과 1이 있다면 양자의 중첩은 0일 수도 1일 수도 있는 확률만을 가지고 있는 상태죠. 양자를 관측하는 순간 양자가 0인지 1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중첩 상태인 두 양자가 얽혀있다면 두 양자의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하나의 양자를 관측하는 동시에 나머지 하나의 양자 상태도 결정됩니다. 하나의 양자가 지구에 있고 또 다른 양자가 화성에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지구에서 양자를 관측해 0이라는 결과를 얻었다면, 동시에 화성에 있는 양자의 값은 1로 결정됩니다. 양자의 순간이동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이 얽힘이라는 특성이죠.
실제 중국은 2016년 양자 통신위성 ‘묵자호’를 발사해 양자의 얽힘을 증명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 방법은 이렇습니다. 지상에서 약 500km 상공에 있는 묵자호에 얽힘 상태에 있는 양자 한 쌍(A, B)을 둡니다. 그리고 이 중 한 개의 양자(B)를 지상으로 내려보냅니다. 그 다음 지상에 도착한 양자와 얽힘 상태인 양자(C)를 하나 더 만듭니다. 이때 양자 C를 관측하면 동시에 A와 B의 상태가 결정됩니다. 만약 C가 1이었다면 B는 0, A는 1이 되는 식으로요. 얽힘 이론에 따르면 A와 C는 같은 값을 갖게 됩니다. 지구에서 관측한 양자의 정보가 ‘0초’ 만에 500km 상공에 있는 위성에 전달되는 셈이죠. 때문에 이런 양자의 특성을 통신에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많습니다.
앞으로 양자 얽힘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영화 밖 현실에서도 히어로가 탄생할 수 있을까요? 재밌는 호기심을 갖고 영화를 즐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