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하면 한국적 체취가 앞선다. 김치와 더불어 콩나물은 우리 고유의 식품인데, 김치가 채소의 가장 합리적인 저장형식의 식품이라면 콩나물은 가장 과학적인 재배방법을 응용한 채소라고 말할 수 있다.
김치와 짝이 된 식품
근년에 와서 인스턴트 식품이 범람하여 김치 통조림이 나오고 있지만 콩나물만은 아직 통조림이 나오지 않고 있을 정도로 신선한 식품이다.
학교시절에 자취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콩나물국만은 싫도록 먹은 경험이 있을 터이며 또 군대생활을 겪은 사람이면 누구나 콩나물국과 내무반이 얼마나 밀접한가를 알 수 있다. 학생과 군대에서는 모두 콩나물국을 '도레미탕'이라고 부르는 것에 일종의 향수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콩나물의 모양이 악보의 기호와 같아 도레미탕이라고 했겠지만 여하튼 우리나라사람에게는 콩나물만이 가장 친숙하고 사먹기가 손쉬운 채소이기 때문에 때로는 그 존재가치마저 잊어 버릴 정도이다.
그리고 나이든 분들은 시골의 방구석에 콩나물을 가꾸기 위한 간단한 장치를 해 놓고 가족들이 번갈아 가며 물을 주던 기억도 날 것이다. 콩나물은 각자 집에서 길러 먹던 식품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옛 문헌 가운데서 콩나물에 관한 기록을 보면 고려 고종때(1214~1260)에 펴 낸 향햑구급방(鄕藥救急方)이라는 의약서적에 대두황(大豆黃)이라고 적혀 있는데 감기를 비롯하여 속을 시원하게 가라 앉히는 효능이 있다고 했다.
그 밖에 두아채(豆芽菜), 불문가지나물(不問可知菜)라고도 했으며 맹아(萌芽)라고도 했다.
'거가필용'(居家必用)이라는 13세기 때의 중국요리책에는 두아채(豆芽菜)가 소개되고 있는데, 이것은 콩나물이기 보다는 녹두로 만든 숙주나물로 해석된다.
이웃 일본에서도 '모야시'라고 하여 콩나물과 숙주나물이 있는데 이것은 고려조 이후 우리나라에서 건너갔을 것으로 보는설과 임진왜란 때 전래했을 것이라는 양설이 있다.
일본 학자가 쓴 '한국의 명약'이라는 책에는 우리나라의 음식에 쓰이는 재료가 다양한데 거의 모두가 약이 되는 것이며 특히 콩나물이 건강음식으로 좋다고 적혀 있다. 긴끼대학 동양 의학 연구소는 콩나물의 효능에 관하여 '뇌세포의 손상을 막아 기억력을 증진하며 사포닌과 레시틴, 그리고 비타민 B와 C가 풍부해 감기, 몸살 등에 특효가 있다'고 밝혀 일본에서 콩나물 붐이 일으킨 일도 있다.
콩을 기름으로만 쓰는 서양인들
노·일전쟁 때의 하일라이트는 요동반도의 여순 요새를 두고 벌인 노·일 얀군의 공방전이다. 일본군에게 포위된 러시아군은 끝내 항복했다. 항복한 이유의 하나가 요새 안에 채소가 떨어져 러시아군 장병들이 비타민 C부족으로 괴혈병이 만연한 때문이라 한다. 그런데 일본군이 입성하고 보니 말먹이로 쓸 콩이 창고에 가득히 쌓였더라는 것. 이 콩으로 콩나물을 길러 장병들에게 먹였다면 괴혈병을 막을 수 있었고, 그렇게 되었다면 항복이 늦어져 전국에 다른 결과가 왔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종전 후에 널리 알려졌다.
이것도 서양사람들이 콩나물을 가꿀줄 모르는 이야기의 한토막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궁중에서는 콩나물을 보통때의 식용으로는 먹지 않았다고 하며 숙주나물이 주로 쓰였다고 한다. 그런데 사육신(死六臣)과 생육신이 갈라질 때 신숙주(申叔舟)가 배신했다고 하여 그후 숙주나물이 제사상에 오르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런 가운데 속칭 강화도령이라고 불린 철종은 왕이 된 뒤에도 콩나물국을 잊지못하여 측근들에게 콩나물국을 끓여 오라고 명했으며 몸이 쇠약한 뒤에는 더욱 자주 콩나물국을 대령하라고 졸랐다고 전한다.
그 만큼 콩나물은 우리나라 서민과 인연이 깊은 식품인데 이 콩나물이 최근(벌써 20년도 더 되었지만)농약을 쓴다 안쓴다로 말썽이 되고 있다. 그러면 그 내용과 진상은 어떤가에 대하여 몇가지만 더듬어 보기로 하자.
전용 콩 따로 있어
먼저 콩나물을 기르는 원료가 될 콩부터 알아보자.
일반적으로 콩이라면 흰콩 즉 대두(大豆)를 생각하기 쉽지만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백태(白太)라고 하며 검은 콩도 있다. 청태(靑太)는 푸른색이며 작태(鵲太)라고 하여 얼룩무늬콩도 있다.
그런데 콩나물용으로 쓰이는 콩은 이 흰콩보다 알이 작고 흰색인 속칭 나물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알이 작은 콩에도 흰것, 푸른것, 검은 것이 있는데 흰것과 푸른것은 콩나물용으로 쓰이고 검은 것은 서목태라고 불러 약용으로 쓰인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 콩나물콩의 생산이 콩나물의 수요를 따르지 못하게 되자 굵은 흰콩(대두)으로 콩나물을 기르기 시작했고 이 콩의 생산이 모자라자 수입콩을 쓰고 있다.
도시에서 팔리고 있는 콩나물은 대부분이 수입 흰콩이나 국내에서 생산한 흰콩으로 기른 것들이다. 그렇지만 시골에서는 아직도 나물콩으로 콩나물을 기르고 있다.
일본에서는 콩나물용 나물콩의 수입과 값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콩나물콩 수입조합을 만들어 콩나물업계와 소비자 사이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콩나물 재배·판매업자들의 모임인 한국두채협회라는 단체가 있는데 한때 이 협회의 소속을 농수산부로 하느냐 보건 사회부로 하느냐를 놓고 밀고 당긴 적도 있지만 여하튼 현재로서는 콩나물에 관한 것은 이 협회의 소관으로 되어 있다.
물만으로 길러
콩나물은 물로 기른다.
그래서 물만 먹는 사람을 보고 "콩나물처럼 물만 먹고 산다"는 말도 있다. 또 쑥쑥 키만 자라는 사람을 두고 "콩나물처럼 키만 큰다"는 말도 있다.
이처럼 콩나물의 재배는 어두운 곳에서 물만으로 콩을 싹틔어 그 뿌리를 기르는 일종의 수경재배(水耕栽培)법이다.
콩나물을 기르는 과정에서 조심하고 금기로 되어 있는 일은 두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광선을 쪼이는 일이다. 보통 형광등 정도의 광선을 쪼이면 콩나물의 떡잎이 파랗게 변하여 삶아도 익지 않는다.
또 한가지는 기르는 물에 기름이 섞이는 경우이다. 어떤 종류의 기름이든 기름이 섞이면 이것이 엷은 막을 이루어 콩나물의 뿌리에 묻어 호흡을 막으므로 썩어버린다.
적당한 온도, 맑은 물, 적당한 간격으로 물을 주기만 하면 콩나물은 쑥쑥 자란다. 만일 물 주는 시기를 놓쳐 수분이 적으면 잔뿌리가 발달하여 콩나물이 서로 엉키게 되고 딱딱해져 질기고 맛이 없어진다. 반대로 물이 너무 많아도 길게 키만 자라고 가늘어진다.
콩나물 재배용 물은 맑은 천연수라야 하며 수도물을 쓸 경우는 물을 받아서 적어도 5시간 이상 두어 수도물에 섞인 염소성분(수도물이 뿌옇게 되는 소독약)이 날아가고 불순물이 가라앚은 뒤에 써야 한다.
만일 물에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거나 오염된 물일 경우는 콩나물이 썩어버린다. 그만큼 콩나물을 기르는 물은 맑고 순수한 물이라야 하지만 그렇다고 증류수로 기르면 잘 자라지 않는다. 이것은 지하수나 자연수에 녹아있는 여러가지 무기염류가 일종의 거름 역할을 하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
콩나물에 약품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이며 왜 그렇게 되었을까.
콩나물에 약품을 쓰기 시작한 역사는 이미 오래다. 그 시초를 따져 보면 콩나물을 대량으로 재배하여 판매하는 기업화가 시작되고서부터라고 보는 것이 옳다.
콩나물을 기르는데 있어서 가장 무서운 일은 콩나물이 썩는 것이다. 그래서 콩나물공장은 콘크리트로 두터운 벽을 쌓고 지붕을 두텁게 만든 뒤 광선이 들어오지 못하게 창문도 만들지 않으며 출입문도 철저히 닫아둔다. 거기다 지하수나 수도물을 받아 일정시간마다 물을 주며 20℃ 정도의 실내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여기에 큰 콩나물 재배 시설을 해 놓고 길러 내는데 한 쪽에서 콩을 물에 불리어 싹을 틔우면 싹난 콩을 앉혀 매일 일정량을 출하한다. 그러나 만일 물에 불순물이나 기름이 섞여 콩나물이 썩기 시작하면 이것이 급속히 전염된다. 그렇게 되면 모처럼 가꾼 콩나물이 모두 못쓰게 되고 재배공장 전체를 소독해야 한다.
그래서 썩은 것을 예방하고 일부가 썩더라도 그 병이 더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부패 방지약(방부제)이 쓰인 지가 오래 된다. 이것은 한편에서 농약이 여러모로 발달한 것과 때를 같이 한다. 아무리 콩나물이 썩는 것을 방지하고 싶어도 적당한 농약이 개발되어 있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다행히도 농약부문에서 신제품이 여러가지 개발되어 해결해 주었다.
처음에는 수은 살균제가 쓰였다. 여러가지 유기수은제는 살균력이 강하기 때문에 콩나물공장에서 이것이 부패방지용으로 매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그러나 농약에 수은제 사용이 금지되고 수은 함유 농약을 만들지 않게 되고부터는 다른 농약이 쓰이기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카바메이트'계 약품이 쓰이고 있으며 앞으로 농약이 발전하는데 따라 쓰이는 약품도 차차 그 종류가 달라지겠지만 원칙적으로 콩나물이 썩는 것을 막기 위해 약품은 앞으로도 계속 쓰일 것이 틀림없다. 한두사람이 잡혀가는 정도로는 약품사용이 근절되지 않을 만큼 썩지 않게 하는 그 작용은 콩나물 공장에 있어 필수의 과제인 것이다.
빨리 굵게 자라야 한다
다음은 콩나물을 기르는 경우 아무리 서둘러도 5~7일이 걸리며 경우에 따라서는 7~10일이 걸려야 출하할 만큼 자란다. 보통 길이 5㎝ 정도의 어린 콩나물을 상품으로 치고, 길게 자라고 잔 뿌리가 많으면 하품으로 친다. 그리고 뿌리의 몸통이 굵고 투명하며 깨끗하고 살쪄 보이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기업적으로 콩나물을 가꿀 때 되도록 빨리 자라고 살찐 것을 많이 길러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성장촉진제이다. 농약업계의 연구 결과 식물의 성장에 관계하는 식물호르몬이 발견되고 이것을 합성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여러모로 유용하게 응용되고 있다. 발근(發根) 촉진제는 뿌리가 거의 상한 나무에도 뿌리를 나게 해 잘 살아 붙게 하며, 성장촉진제는 키를 자라게 하고, 개발촉진제는 꽃이 잘 피게 하며, 결실촉진제는 벌이나 나비의 힘을 빌지 않고도 열매를 맺게 한다. 이런 작용에 착안하여 콩나물 공장에서는 성장촉진제를 이용, 콩나물을 잘 자라게 한다. 이 식물호르몬제를 쓰면 3~5일만에 상품으로 내보낼 수 있을 만큼 빨리 자라고 통통하게 살찐 콩나물이 만들어진다.
한때 콩나물에 비료를 주는 일이 유행한 적이 있다. 황산 암모니아나 요소 등 질소질 비료를 6백배 내지 1천배의 물에 섞어 주면 확실히 빨리 잘 자란다. 이 점에 착안하여 많은 콩나물 업자가 이용했지만 조금만 양이 많아질 경우 콩나물이 썩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살균제 농약을 일부러 쓴 적도 있지만 지금은 대부분 성장촉진제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약품에 의하여 빨리 자라기 때문에 그 만큼 썩기 쉬운 약점도 지니게 되어 살균제를 아울러 쓰게 된다. 성장촉진제는 요즘 값도 싸고 많이 나돌고 있어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콩나물 공장에서 이 약을 쓰지 않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인 실정이다.
시들지 않게 하는 약도
또 다른 농약은 증산(蒸散)방지제이다. 식물은 물을 흡수하여 잎과 줄기에서 그 수분을 증산시킨다. 이 작용에 의하여 필요한 영양을 뿌리로부터 식물체에 골고루 보내게 되어있다. 그러나 뿌리가 잘라지거나 하면 식물 체내의 수분이 증발하여 시들게 된다. 이 때 쓰이는 것이 바로 증산방지제이다. 이 약은 작물의 모종을 내었을 때 뿌리가 살아나기 전에 시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증산방지제를 잎에 뿌려 잘 살아 붙도록 하는데 쓰인다. 이 특별한 용도에 쓰이는 약이 콩나물의 경우에는 싱싱한 상태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쓰인다.
콩나물 공장에서는 시루에 담은 상태로도 내지만 가마니에 담아 보내기도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멀리 운반해가거나, 소매상에서 두고 팔 때 콩나물이 시들거나 말라버리면 상품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에 증산방지제를 써서 싱싱한 상태를 오래 유지하게 한다. 나쁘다면 나쁘겠지만 장사속으로 볼 때는 어쩔 수 없이 쉽게 택하게 되는 방법이다.
무해 콩나물을 위하여
콩나물에 농약을 쓰면 안된다는 단속과 이를 피하려는 업자들 사이의 실랑이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같은 밀폐되고 어두운 공장안에서 저질러지는 일을 밝혀내기란 쉽지 않고 또 철저한 단속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콩나물 재배 전용의 방부·성장 촉진 및 증산방지의 세가지 기능을 가진 약품을 개발하여 그것을 공인해 주고 그 용량과 판매를 관리하는 일이다. 현재 쓰이고 있는 약품이 얼마나 해로운가는 따질 필요가 없다. 아무리 무해한 약이라도 과용하면 큰 피해를 보게 되고 극해가 있는 약이라도 미량이면 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용량과 용법을 공인하고 잘 관리하여 세계에서 자랑할만한 고유 식품의 전통을 살려나가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