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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일상에서 흔히 쓰게 된 말 중에 ‘멀티태스킹’이 있다. 여러 작업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뜻이다. PC에 윈도가 설치되기 시작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진 말인데, 요즘은 사람에게 더 자주 쓰인다. 예를 들어 “나는 멀티태스킹이 안 돼 공부하면서 음악도 못 들어”라는 말을 하는 식이다.
그런데 사실 인간은 이 단어가 생기기 전에도, 후에도 멀티태스킹을 못 했다.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의 저자 조지프 핼리넌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은 고작해야 걸으면서 껌을 씹는 정도”라고 말한다. 이나마도 오랜 훈련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PC처럼 두뇌도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인간은 많은 실수(또는 사고)를 저지른다.
이렇게 인간이 실수를 저지르는 예는 무수히 많다. 대개는 스스로를 과신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미국에서 이뤄진 실험 하나를 소개한다. 노트를 펴 놓고 애국가 가사를 적어보자. 단 노래를 흥얼거리면 안 되고 오로지 생각만으로 적어야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군데군데 틀린다. 미국 듀크대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전체 81단어(미국 국가) 중 평균 32개를 정확히 썼다. 점수로 따지면 40점도 채 못 받은 셈이다. 음악을 들려주고 적게 하자 52개로 조금 높아졌다. 우리의 기억력은 절대 과신할 수 없는 불완전한 능력이다.
맬콤 글래드웰은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에서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찾지 못해 오류를 저지른 역사적 사건들을 분석했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이와 비슷한 일은 우리 두뇌에서도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다. 한 대학에서 5000 단어 분량의 대학 교과서 한 장(챕터) 전체와, 이를 5분의 1로 요약한 축약본을 실험자들에게 나눠주고 20분 뒤와 1년 뒤 시험을 봤다. 결과는 어땠을까. 전문을 다 공부한 학생보다 요약본만 본 학생이 더 이해도도 높고 기억도 잘 했다. 정보량이 풍부하면 그만큼 성과도 높으리라고 생각했다면 인간 두뇌의 정보처리 능력을 과신한 거다. 기업의 임원진을 위해 탄생한 요약보고서(‘Executive Summary)’는 단순히 시간만 절약하는 게 아니라 효과도 높인다(지금 이 서평을 읽은 독자도 책을 다 읽은 독자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전체 요약본이 아니니 안심하고 책을 찾아 읽기 바란다).
이 책에는 이렇게 인간이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가득하다. 헬스클럽 6개월 이용권을 끊어 두고 잘 가지 않는 사람이나, 글 쓸 때 오타를 자주 내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언급된 사례를 보고 삶을 조금 나아지게 할 아이디어를 찾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 책의 가격은 1만 3800원이다. 마치 1만 3000원대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사실은 1만 4000원에서 단 200원이 빠지는 가격인데 말이다. 실수에 관한 책에도 소비자의 ‘실수를 유도하는 기술’이 숨어 있는 것 같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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