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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가 우주상수에 집착하는 이유

안드로메다 물리학은 지구와 다를까



α가 유독 관심 받는 이유는?

그런데 물리상수는 왜 이런 값을 갖는 걸까. 이 물음은 현대 물리학자들에게 아주 흥미로운 문제다. 그러나 그 누구도 풀어내지 못했다. 단지 물리상수의 값이 조금만 달랐어도 우주에는 생명의 탄생과 같은 복잡한 현상이 생겨나지 못했을 거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우리의 존재 이유가 물리상수 값에 있다는 거다.

물리학자들은 각 상수가 왜 지금의 값을 갖게 됐는지 설명해줄 이론을 찾고 있다. 특히 ‘만물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 후보로 꼽히는 끈이론이 유력하다. 그런데 끈이론은 오히려 문제만 더 복잡하게 만들어버렸다. 끈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는 무려 10500km가지의 경우의 수 중 하나의 세상일 뿐이다. 다른 자연법칙과 다른 물리상수 값을 가진 우주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존재할 수 있다. 우리 우주는 수많은 경우의 수(우주상수) 중 하나를 갖고 태어난 것에 불과하다.
 
[ULAS J1120+0641의 상상도. 지난 해 8월 유럽천문학자들이 발견한 가장 멀리 떨어진 퀘이사다.]





물리상수는 수학에서 쓰는 상수, 예를 들어 원주율 π라든가 자연상수 e와 달리 계산을 해서 구한 값이 아니다. 측정을 통해서 얻은 것이다. 이런 까닭에 물리학자들은 이런 의문을 갖기도 한다. 1930년대에 위대한 천재 물리학자 폴 디랙이 처음으로 던진 질문이다. “물리상수가 정말 상수인 걸까.”

이 의문을 해결하고자 하는 물리학자들은 미세구조 상수 α에 주목한다. 빛의 속도, 플랑크 상수와 같은 다른 상수와 달리 단위가 없기 때문이다. 실험적으로 단위가 있는 상수가 값이 변하는지 조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시계, 자, 저울과 같은 측정도구들이 상수 값이 변하면 함께 변하기 때문이다.

α는 단위가 있는 3가지 다른 물리상수 즉 전기 전하, 빛의 속도, 그리고 플랑크 상수가 조합되면서 단위가 사라졌다. 값이 대략 1/137인데, 이렇게 비교적 작은 것도 물리학자들이 좋아하는 이유다. 왜냐하면 힘이 아주 강하지 않을 때도 값을 측정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미세구조 상수는 전자기학에 양자역학 이론을 적용하는데 선구적이었던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아르놀트 조머펠트가 1916년에 발견했다. 조머펠트는 원자들이 내는 빛의 스펙트럼이 왜 고유한 미세구조(fine-structure)를 갖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α를 도입했다. 이는 미세구조 상수가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다.

미세구조 상수가 가장 기본적인 상수 중 하나로 등극한 건 물리학에서 가장 성공한 이론 중 하나로 꼽히는 양자전기역학(QED)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양자전기역학은 전자기적 현상을 양자역학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에 따르면 α 값이 달라지면 우리 우주의 핵심적인 특성들에 변화가 일어난다.

만약 α 값이 지금보다 작으면 고체 원자 물질의 밀도가 줄어들어 분자 간 결합이 낮은 온도에서도 깨지고 만다. 그Kornmesser렇게 되면 주기율표에서 안정적인 원소의 수가 늘어날 수 있다. 이런 화학적 변화로 세상의 모습은 확 달라진다.

반면 α 값이 너무 커지면 작은 원자핵이 존재할 수 없다.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 간의 전기적인 반발력이 양성자들을 핵에 묶어두는 강력보다 커지기 때문이다. 만약 α가 지금보다 0.4%만 커져도 별은 생명체의 기본 원소인 탄소 원자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α가 0.1이면 탄소 원자를 산산조각 내버린다. 0.1보다 크면 별의 핵융합 반응도 불가능해지고 만다.

이렇게 미세구조 상수는 우리의 존재 자체와 깊은 관련이 있다. 양자전기역학의 창시자인 리처드 파인만도 이 상수의 미스터리한 면에 깊이 빠져 있었다. 파인만은 1985년 자신의 저서에서 α에 대해 “발견된 지 50년 이상이 흘렀지만 여전히 불가사의하며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마법의 수”라며 “물리학에서 가장 지독한 난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천연원자로, 운석, 퀘이사까지 뒤졌다

미세구조 상수가 진짜 상수인지 아닌지에 대한 조사 중 최초의 시도는 1970년대 이뤄졌다. 당시 프랑스 원자력청 과학자들이 아프리카 가봉의 오클로 우라늄 광산에서 캐낸 시료가 오늘날의 우라늄 시료와는 동위원소의 비율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는 20억 년 전인 선캄브리아 시대에 이곳에 천연원자로가 가동했다는 흔적을 의미했다. 1976년 러시아와 미국의 과학자들이 이곳에서 나온 폐기물을 조사해보면 과거 20억 년 동안 α 값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조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하지만 조사결과 20억 년 동안 α값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후 운석을 통해 α의 변동성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운석은 우리 태양계가 태어난 시점부터 46억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 조사에서도 α는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지구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해본 조사에 따르면 적어도 지금부터 46억 년 전까지 α는 상수였다.

그런데 천문학자들이 우주에서 퀘이사를 발견하면서 α에 대한 조사가 아주 먼 초기 우주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퀘이사는 우주에서 가장 멀리 있는 천체다. 퀘이사를 연구하면 137억 년의 우주 나이 가운데 약 120억 년 전의 초기 모습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제까지 발견된 가장 먼 퀘이사는 우리로부터 129억 년 거리에 있다.

퀘이사에서 나온 빛은 지구에 오기까지 아주 먼 거리를 지나와야 하기 때문에 그 빛은 우주에 있는 가스들을 통과할 수밖에 없다. 이때 우주 가스는 퀘이사의 빛에 있는 특정 진동수만을 흡수하는데, 이로 인해 퀘이사의 빛 스펙트럼에 일종의 바코드를 남긴다. 만약 α가 과거에 다른 값이었다면 퀘이사의 스펙트럼 바코드가 오늘날과는 달라야 한다.

좀더 깊이 설명하면 이렇다. 가스가 빛을 흡수할 때마다 가스를 이루는 원자 안의 전자들은 낮은 에너지 준위에서 높은 준위로 점프한다. 에너지 준위는 원자핵이 전자를 얼마나 강하게 붙들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데, 이는 빛과 원자 간의 상호작용에 관여하는 미세구조 상수에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다.
 

칠레 초거대 망원경이 보여준 2차 반전

1990년대 후반 호주 뉴사우스웨일즈대의 물리학자 존 웹(John Webb) 교수팀이 퀘이사 관측을 통해 α 값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웹은 우주 초기의 α값이 오늘날과 같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첫 번째 연구에서 놀랍게도 α가 아주 작긴 하지만 다른 값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이 128개 퀘이사의 스펙트럼을 조사했더니 α 값이 120억 년 전부터 60억 년 동안 조금씩 늘어났다. 너무나도 충격적이라 연구팀은 혹시 연구에 어떤 실수가 있지 않았나 생각했다. 몇 년 동안 오차의 원인을 제거했는데도 α 값은 여전히 시간에 따라 달라졌다.

다른 물리학자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어느 연구팀도 웹의 연구팀에 동의하는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틀렸다는 증거도 내놓지 못했다. 다른 연구팀의 결과가 웹 연구팀을 무너뜨리기에는 분석한 퀘이사의 수가 너무 빈약했다.

웹 연구팀이 얻은 결과는 세계에서 가장 큰 광학망원경인 하와이에 있는 케크(KECK) 망원경에서 관측한 것이었다. 2000년대 후반 연구팀은 혹시 이 망원경 때문에 데이터에 오류가 나타난 게 아닌가 싶어서 칠레에 있는 초거대(VLT) 망원경이 관측한 153개의 새로운 퀘이사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VLT 망원경을 통한 분석은 2010년 중반에 끝났다. 그런데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미세구조 상수의 값이 지금보다 작기는커녕 반대로 좀더 크다는 또 다른 반전이 나타난 것이다.

웹 연구팀은 왜 이런 엉뚱한 일이 벌어졌는지 따져보다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미세구조 상수가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달라진다고 말이다. 케크 망원경이 북반구의 하늘을 봤다면 VLT 망원경은 남반구의 하늘을 관측한다. 웹 연구팀은 서로 다른 우주를 바라본 두 망원경의 데이터를 하나로 펼쳐보았다. 그랬더니 α 값이 남쪽으로 갈수록 늘어났다. 우주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α 값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는 현대 물리학의 뿌리를 흔들어놓는 과격한 주장이다. 장소에 따라 물리학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즉 지구의 물리학과 안드로메다 은하의 물리학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물리 법칙은 우주 어디에서나 그리고 어느 때에나 동일하게 작용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발전해온 물리학을 부정하는 것이다. 다른 물리상수들도 달라질 수 있다. 특히 α와 관련된 빛의 속도, 전기 전하, 플랑크 상수 등 세 가지 물리상수는 모두 값이 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현재 대다수 물리학자들은 웹 연구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오류와 실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심지어 웹 연구팀이 연구결과를 발표할 때 “그런 말을 하다니 당신들 배짱이 정말 대단하군요”라는 반응을 보인 물리학자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까진 웹 연구팀의 연구결과에서 결정적인 오류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100년 전 사라진 에테르의 부활?

만약 웹 연구팀의 주장대로 미세구조 상수 α의 값이 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먼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위기에 처하게 된다. 2003년 미국과 포르투갈, 그리고 영국의 물리학자 3명이 α가 위치에 따라 값이 변한다면 로렌츠 대칭성이 깨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로렌츠 대칭성은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세우는데 적용한 황금률이었다. 로렌츠 대칭성으로 우주의 어느 방향에서든 물리학 법칙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관측자가 어떤 속도로 움직이든 물리학 법칙은 동일하다. 즉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관측자가 실험한 결과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관측자가 실험한 결과는 같고, 지구의 실험실에서 한 동일한 실험의 결과도 같다. 로렌츠 대칭성 덕분에 특수상대성이론은 광속 불변의 원리를 이끌어냈다.

빛의 속도가 우주 어디서나 변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가설은 19세기 물리학자들이 온 우주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던 가상의 물질인 에테르를 추방시켰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소리 파동이 전달되려면 공기와 같은 매질이 필요하듯이 빛의 파동이 공간에서 퍼져나가려면 매질이 있어야 하고, 이를 에테르라고 생각했다. 에테르가 존재한다면 빛의 속도는 우리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다르게 측정될 것이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고 못을 박았다. 그런데 α의 변동성으로 특수상대성이론이 위기를 맞는다면 100여 년 전 추방된 에테르가 부활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물리학의 역사를 100년 전으로 후퇴시킬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α는 상수일까, 아닐까? 지난해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른 중성미자(뉴트리노)가 발견됐다는 소식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다. 최근 그 연구결과는 오류였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아직까지 대다수 물리학자들은 웹 연구팀의 연구결과도 이런 해프닝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α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전개될지 무척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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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객원기자, 에디터 이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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