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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뉴스] 경련, 구토 방지에 효과 ‘대마’ 성분 의약품, 수입 허용

유명인의 대마초 흡연 스캔들처럼 그동안 대마는 퇴폐와 향락의 상징처럼 취급됐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치료의 희망이 될 수 있다. 식품 의약품 안전처는 7월 18일 “국내에 대체 치료 수단이 없는 뇌전증 등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들에게 해외에서 허가된 대마 성분 의약품을 자가 치료용으로 수입해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체내 수용체와 결합하는 칸나비노이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수입을 허가한 대마 성분 의약품은 마리놀(성분명 드로나비놀), 세사메트(성분명 나빌론), 사티벡스(성분명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칸나비디올(CBD)), 에피디올렉스(성분명 CDB) 등 4가지다. 


THC와 CBD는 대마에서 추출된 식물성 칸나비노이드 성분이다. 드로나비놀과 나빌론은 THC를 약제로 만든 것이다. 대마에는 400여 종 이상의 다양한 화학물질이 들어있는데, 이중 THC와 CBD를 포함해 100여 가지 성분이 식물성 칸나비노이드로 분류된다. 


칸나비노이드는 체내에서도 합성된다. 이를 ‘엔도칸나비노이드(Endocannabinoid)’라고 한다. 엔도칸나비노이드는 몸속 칸나비노이드 수용체와 결합한다. 대표적인 칸나비노이드 수용체가 ‘CB1’과 ‘CB2’다. CB1은 주로 중추신경계에, CB2는 대부분 면역체계와 위장관에 있다. 


THC는 이런 칸나비노이드 수용체에 결합해 신경의 흥분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신경이 과하게 활성화되면 정신·운동 기능과 인지 능력 손상, 심박수 증가, 구강 건조증 등 향정신성 효과를 보인다. 


CBD는 체내 칸나비노이드 수용체와 결합하지만 향정신성 효과는 유발하지 않는다. 차혜진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약리연구과 주무관은 “THC가 CBD에 비해 CB1과 잘 결합하기 때문일 것”이라며 “대마 성분이 체내에서 효과를 내는 과정은 매우 복잡해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항경련제, 구토방지제로 쓰여 

 

CBD는 1970년대 동물실험 등을 통해 항경련 작용이 입증됐다. 이후 희귀난치성 간질인 ‘드라벳증후군’, 소아기 간질성 뇌병증인 ‘레녹스가스토증후군’ 등 기존 뇌전증 약물로 치료가 어려웠던 소아기 난치성 뇌질환 환자에게서 효과를 보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올해 6월 CBD를 액상으로 정제해 만든 약인 ‘에피디올렉스’를 2세 이상의 드라벳증후군 및 레녹스가스토증후군 치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강훈철 신촌세브란스병원 소아과학교실 교수는 “경련은 신경세포가 과하게 흥분해 발생하는 증상”이라며 “CBD는 체내 칸나비노이드 수용체와 결합해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글루탐산)를 감소시킨다”고 설명했다.


THC를 약제로 만든 드로나비놀, 나빌론은 구토방지제에 들어간다. 이런 약물은 식욕부진을 겪는 에이즈 환자나 항암 치료를 받은 뒤 구역 및 구토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 적용된다. 박재명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일반적인 구토방지제는 부신, 소화관 등 무의식적인 운동을 조절하는 미주신경계에 작용해 구토를 막지만, 드로나비놀이나 나빌론은 감정, 행동, 동기부여 등의 기능을 담당하는 대뇌변연계에도 작용해 구토를 줄이고 식욕을 증진시킨다”고 설명했다.


한편 영국 GW제약이 개발한 사티벡스에는 THC와 CBD가 둘 다 들어있다. 사티벡스는 다발성경화증 환자의 항경련제로, 스프레이 방식으로 입속에 뿌려서 사용한다. 농도는 mL당 각각 THC가 27mg, CBD가 25mg 들어 있다. 


차 주무관은 “향정신성 효과가 있다고 의약품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며 “특정질환에서 위험성보다 치료 효과가 크다고 판단되는 경우 안전성을 철저히 검증해 의약품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편에서 추출한 진통 성분인 모르핀도 여기에 해당한다. 


CBD와 THC의 치료 효과는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다. 영국 런던 세인트조지대 종양학과 연구팀은 악성 뇌교종(신경교세포에 종양이 생기는 병)에 걸린 쥐에게 방사선 치료와 CBD, THC를 혼합한 약물치료를 병행한 결과,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뇌종양의 크기가 10분의 1로 줄어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doi:10.1158/1535-7163.MCT-14-0402

 

 

칸나비노이드, 그동안 왜 금지했나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칸나비노이드 성분이 든 의약품의 수입은 금지됐을까. 윤재석 원광대 약학과 교수는 “대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의약품 활용에) 장벽이 됐다”며 “실제로 대마는 다른 향정신성 의약품에 비해 훨씬 늦게 치료용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7년 11월 발간한 ‘칸나비디올 예비보고서(의제 5.2)’에서 CBD는 인간에게 남용이나 의존 가능성을 일으키는 효과를 보이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드로나비놀과 나빌론이 포함된 약품은 1980년대 후반 FDA의 승인을 얻었다. 미국의 ‘통제물질법(CSA)’은 약물의 의학적 용도, 남용 정도, 인체에 미치는 효과에 근거해 약물을 5개 그룹으로 분류했는데, 현재 드로나비놀과 니빌론은 감기약으로 주로 쓰이는 코데인, 진통제로 쓰이는 옥시코돈과 같은 그룹으로 분류된다. 


강 교수는 “한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하면 칸나비노이드 성분 의약품 도입이 빠른 편”이라며 “6월 FDA가 의약품으로 승인한 뒤 곧바로 수입이 허가됐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 난치성 뇌전증을 앓는 일부 환자에게 큰 희망이 될 것”이라면서도 “CBD는 뇌전증 치료제로 언급되는 여러 물질 중 하나일 뿐 선정적으로 소비돼선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자가 치료용으로 수입을 허용하긴 했지만,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의사의 진료 소견서 없이는 대마 성분이 든 의약품을 살 수 없다. 또한 성분이 대마에서 유래된 것이라도 해외에서 의약품으로 허가를 받지 않은 식품, 대마 오일, 대마 추출물 등은 수입과 사용이 여전히 금지됐다. 강 교수는 “향후 한국인에게만 나타나는 효능, 부작용 등의 데이터를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김민아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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