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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요즘은 콩나물에도 뭘 넣나봐.”

어머니의 목소리에 주방으로 갔다.

“사놓고 냉장고에 둔 지 꽤 됐는데 아직 멀쩡한 걸 보면 말이야.”

바구니에 담긴 콩나물은 겉보기에도 싱싱했다. 한 가닥을 들어 꺾자 ‘딱’소리가 났다. 통통한 줄기가 아직 물기를 머금고 있는 것이다. 정말 콩나물에 첨가물을 넣는 걸까? 이리저리 찾다가 콩나물이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다름 아닌 ‘비닐 포장지’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포장지에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 건지, 포장지를 개발했다는 GIST 고등광기술연구소(APRI)로 달려갔다.

레이저, 콩나물을 지켜줘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 이 포장지 표면에는 무수히 많은 구멍이 있습니다. 이 구멍으로 산소가 들어오기 때문에 콩나물이 숨을 쉴 수 있는 것이죠.”

이인원 고등광기술연구소 소장이 포장지 속 과학 원리를 설명했다. 수십μm(마이크로미터, 100만 분의 1m) 크기의 구멍은 레이저로 만들었다. 이렇게 작은 구멍을 작게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모양도 신기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멍 끝에 비닐막이 얇게 남아 있다. 레이저로 이렇게 구멍을 하나씩 깊게 저미는 것은 비닐을 뻥 뚫는 것보다어렵다. 이 레이저 미세가공이 바로 포장지 속 기술의 핵심이다. 구멍 끝이 살짝 막혀 있기 때문에 산소는 포장지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도 먼지는 절대 들어갈 수가 없다. 이 소장은 “콩나물뿐 아니라 꽃이나 과일 포장에 사용해도 좋다”고 덧붙였다.

고등광기술연구소에서는 레이저를 비롯한 여러 빛을 이용해 생활에 도움을 주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날숨을 분석해 질병을 진단하고, 대기 중 환경 유해물질을 감시하는 연구가 한창이다. 또 적조를 먼 거리에서 측정해 조기에 발견하는 기술과 태양전지의 효율을 개선하는 방법도 개발 중이다.

기술뿐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물품도 개발한다. 사소한 생활용품부터 실험기기까지, 그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최근에는 실시간으로 세균의 수를 셀 수 있는 광센서를 만들었다. 이를 이용하면 더 이상 사람이 세균의 수를 하나씩 세지 않아도 된다. 실험오차를 줄일 수도 있다.
광센서가 실험실을 넘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더욱 진가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식당이나 급식시설에 광센서를 설치하면 식재료를 다듬는 중에도 식중독균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있다. 식중독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외식 문화가 발달하고 학교나 기업에서 급식을 하고 있는 요즘, 이보다 안성맞춤인 기술이 있을까.

“정말 유용한 것을 만들자, 이것이 제가 우리 연구원들에게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1초면 대형 수영장 3000개가 끓는다

포장지의 비밀을 밝히려 찾아간 고등광기술연구소는 사실 ‘초고출력레이저’를 개발한 곳으로 더 유명하다. 초고출력레이저도 다른 레이저와 마찬가지로 빛을 증폭시켜 만든다. 하지만 사진기 플래시 같이 강한 빛을 내는 펄스 레이저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빛이 모이면 레이저 발생장치 자체가 손상을 입는다. 이를 막기 위해 펄스의 길이를 길게 늘려 레이저 빛의 세기를 낮춘다. 이렇게 빛을 증폭시켜나가다 마지막 단계에서 빛을 내보내는 시간을 단축시키면 아주 강한 출력을 얻을 수 있다. 고등광기술연구소는 이 시간을 30fs(펨토초, 1000조 분의 1초)까지 줄였다. 그 결과 레이저의 최대 출력을 1PW(페타와트, 1000조W)로 높일 수 있었다. 세계 최고 출력이다.

“1PW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시겠다고요? 이 초고출력레이저를 1초만 쪼이면 대형 수영장 3000개 안에 담긴 물을 펄펄 끓일 수 있는 정도랍니다.”

초고출력레이저를 쓰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자연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전자에 초고출력레이저를 쏘면 전자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된다. 기존 전자 가속기의 경우 진공 가속관 100m에서 얻을 수 있는 가속 에너지를 초고출력레이저를 이용하면 1cm 거리에서 얻을 수 있다. 이외에도 초고자장이나 엑스선, 플라스마 연구에도 이 초고출력레이저를 이용하고 있다.

“새로운 현상을 처음 발견한다는 것은 정말 가슴 떨리는 일입니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하고, 실험결과가 자신의 가설에 적중했을 때 느끼는 희열은 정말 대단하죠. 동시에 이 현상을 이용해 사람들의 생활을 도울 수 있으면 더욱 행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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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과학동아 정보

  • 신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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