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빙하가 녹으면 바이러스가 잠을 깬다


우리가 절실하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을 뿐, 온난화에 따른 생태계 변화는 분명 ‘현재진행형’이다. 기상 이변은 물론, 해수면 상승의 결과로 해안가 저지대의 인구밀집지역은 자연재해에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다. 남극에는 전 세계 얼음의 90%, 전 세계 담수의 70%가 있다. 그런데 그 남극의 온도가 지난 50년 동안 2°C 가까이 온도가 올라갔다고 한다. 전체 인류의 3분의 1이, 그리고 인류문명과 재화의 절반이 해발 50m 이하 저지대에 있다. 남극대륙을 덮고 있는 빙하가 녹으면 전 세계 해수면이 60m 상승한다고 하니, 실제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인류의 큰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랜 기간 냉동 상태로 빙하에 갇혀 있던 수백만 년 전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혹은 그들의 유전자가 해동돼 풀려난다면 어떨까. 현재와는 다른 이질적 생명체 혹은 유전자가 현생 생태계에 유입되면 예측하지 못한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 마이크론(100만분의 1m) 혹은 그보다 더 작은 크기인 미생물이나 유전자가 어떻게 현존 생물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의 ‘미세효과’, 수백만 년 전 존재했다가 빙하가 녹으면서 풀려난(?) 미생물이 과연 생태계에 위협을 줄 수 있을지 함께 파헤쳐 보자.





30만 년 된 빙하에서 나온 박테리아
고산지대나 극지방에 생성된 빙하는 얼음이긴 하지만, 물이 얼은 것이 아니라 눈이 얼은 것이다. 눈이 녹지 않고 계속 쌓이면 아래에 깔린 눈은 위에 쌓인 눈의 무게로 압축된다. 수백m 아래의 눈은 위에서 누르는 거대한 압력으로 액체로 변하는 순간, 동시에 얼어붙는다.

미생물은 지구 어디에나 있다. 미생물이 붙어서 이동할 만한 큰 동물이 많지 않은 남극에서도 미생물은 워낙 그 크기와 질량이 작기 때문에 바람에 쉽게 날려오거나 에어로졸에 붙어서 올 수도 있다.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이 눈과 함께 차곡차곡 쌓이고 얼음이 만들어지면서 미생물도 빙하의 깊이에 따라 연대순으로 쌓인다. 훗날 과학자들이 빙하의 성분을 분석하면 당시 눈이 내린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대다수의 박테리아는 자신에게 불리한 외부환경을 만나면 포자 형태로 세포를 변형한다. 그런데 얼음에 갇혀 냉동된 박테리아는 외부에 두꺼운 껍데기를 만들어서 수분이 증발되는 것을 막고,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도록 대사활동을 모두 중지한 채 휴면상태에 돌입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양호한 서식 환경을 기다리는 것이다.

수천 년 전 이집트 고대 미이라의 조직에서 발견된 휴면 박테리아가 부활하거나, 수십 만 년 된 빙하에 냉동 보존됐던 박테리아가 다시 부활해 번식한다는 기존 연구 결과에서 알 수 있듯 박테리아의 끈질긴 생존력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빙하의 얼음 속은 영하 30°C 이하의 절대 냉동 상태여서 생존 기간이 더욱 길어질 수도 있다. 물론 냉동고 속의 얼린 고기도 오래 되면 육질이 변하듯, 냉동 휴면상태가 오래 될수록 박테리아의 생존율은 떨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필자의 연구에서도 30만 년 된 남극 빙하에서 여러 종류의 박테리아를 부활시킬 수 있었지만, 800만년 된 빙하에서는 다양한 배양 조건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박테리아도 부활시킬 수 없었다.

 





바이러스, 더 끈질긴 생명력
박테리아와는 달리 바이러스는 대사 활동을 위한 별다른 세포내 기관이나 이와 관련된 유전자가 없다. 때문에 비활성 상태의 바이러스는 소량의 핵산물질(DNA 혹은 RNA)이 단단한 단백질 껍질로 포장된 상태다. 소량의 핵산물질로만 이뤄져 있기 때문에 냉동보관에 따른 생존율은 박테리아보다 더 높다.

바이러스는 (어떤 의미에서) 매우 효율적인 생명체로 숙주의 유전자에 자신의 유전자를 삽입해 자신을 복제하기 때문에 세포내 대사 기관이나 관련 유전자 등 생명활동에 필요한 ‘군더더기’를 따로 보유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자신의 유전자를 숙주의 유전체에 교묘히 삽입할 수 있는 특정 효소인 ‘전이효소(트랜스포사제,Transposase)’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숙주는 이 전이효소가 자신의 유전체에 삽입한 바이러스 유전자를 자신의 유전자로 완전히 착각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복제·복사·발현한다.

바이러스는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영리한 행동을 한다. 적절한 시기가 되면 숙주가 단백질 캡슐 형태의 바이러스 포장재를 만들도록 유도한다. 단백질 캡슐로 포장된 바이러스 유전자는 숙주 세포를 용해시키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일종의 ‘뻐꾸기 알까기’식인 셈인데, 공상과학영화 에일리언에 나오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오롯이 숙주의 힘을 빌어 세상에 나온 바이러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바이러스 유전자를 함유한 단백질 캡슐 입자는 다음에 감염시킬 숙주를 만나 활성화될 때까지 비활성 상태로 떠돌아다니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바이러스가 아무 세포나 감염시키는 것은 아니고, 바이러스 종류에 따라 특정 숙주를 감염시킨다는 점이다. 이 숙주 인식기능은 단백질 캡슐 끄트머리에 있는 숙주와의 부착 기관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대 미생물이 현재 생태계에 합류한다면
빙하에 갇혔던 고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부활해서 현재 인류에게 알려지지 않은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흥미로운 연구 주제다. 과거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질병이나 병원균이 대거 창궐하거나 집단 감염을 일으키는 등 최근에 발생한 일들은 이런 의심을 품을 만하다. 그러나 부활한 미생물이 직접 대사 활동을 진행해 현재의 생명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보다 더 걱정되고 관심을 끄는 것은 미지의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현생 생태계에 합류해 일어날 수 있는 유전자 변형(Transform)과 전이(Transfer) 가능성이다.

유전자 변형과 전이는 일반적인 양성생식 과정에서 일어나는 암수개체 사이의 유전자 재조합(한 쌍의 유전자를 맞교환)과는 전혀 다르다. 또 아무 생명체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목할 점은 박테리아 같은 원시적인 형태의 생명체에서 유전자 변형과 전이가 일어날 가능성과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박테리아는 본래의 염색체에 ‘플라스미드’라 불리는 소형 유전자집합체를 보유하는데, 특정 조건에서 이 플라스미드를 세포 밖으로 뱉거나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즉 원한다면 남의 유전자를 임의로 소유할 수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자연환경에 서식하는 박테리아가 외부 혹은 다른 박테리아로부터 이질적인 플라스미드를 획득하면 이질적인 플라스미드에 딸려 온 유전자를 사용(발현)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빙하 속에 얼어 붙었던 고대 미생물이 위협적일 가능성이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빙하 속 박테리아가 유전자 변형 일으킬 수 있을까
우선 ‘수평적 유전자 전이’라는 방법이 있다. 유전자 전이는 서로 다른 박테리아 종으로부터 유전자를 받아서 자신의 유전체에 붙여 하나로 만드는 작업이다. 생물체가 부모 대신 외부 개체로부터 유전자를 받아서 형질을 바꾸는 것이 수평적 유전자 전이다.

수평적 유전자 전이는 바이러스 감염과 함께 부수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지만, 바이러스 감염이 끝난 후에도 이뤄질 수 있다. 바로 전이효소 유전자가 체내에 남아 전이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빙하 속 박테리아가 수평적 유전자 전이를 일으킬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현재 존재하는 박테리아의 게놈(유전체) 지도를 살펴봐야 한다. 2000년 네이처에는 자연에서 존재하는 박테리아에 유전자 간 전이를 일으키는 전이효소뿐만 아니라 이질적(foreign) DNA와 유동적(mobile) DNA가 전체 유전체의 최대 16%까지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유동적 DNA는 언제라도 삭제할 수 있는 유전자이며, 이질적 DNA는 다른 박테리아 종류에서 기인한 유전자로 생식에 의한 유전자 재조합으로는 절대 보유할 수 없는 유전자다.

자연생태계에 존재하는 박테리아가 외래종으로부터 수입한 이질적 유전자들을 대량 보유한다는 사실은 박테리아가 매우 다양한 형태로 형질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평적 유전자 전이는 동물이나 식물이 생식을 통해 부모의 유전자를 재조합해서 다음 세대에 형질을 유전시키는 방법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유전자 변이 속도와 조합 경우의 수가 다양하다. 어떤 변종이 나올지 예측하기 어려운 동시에 변종이 만들어지는 속도도 매우 빠르다. 연구 결과에 따라 추정해 보면 빙하 속에서 얼어 있던 박테리아도 이질적 DNA와 유동적 DNA, 그리고 이를 다른 개체에 전이시킬 수 있는 전이효소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빙하 속 박테리아를 경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린랜드 빙하나 남극 빙하가 가까운 지역과 먼 지역의 박테리아 샘플을 채취해 2개 그룹의 박테리아에서 이질적 DNA와 유동적 DNA 양을 통계적으로 비교하는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만일 빙하 근처의 박테리아가 이질적·유동적 DNA를 더 많이 갖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면 빙하 속 미생물의 생태계 교란 가설은 사실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 다만 이 같은 실험만으로는 빙하 미생물이 과연 현재 생태계에 영향을 바로 미칠지는 알긴 어렵다.



 


1년에 1000000000000000000000개의 고대 박테리아가 쏟아져 나온다
그렇다면 지구온난화로 인해 녹아내리는 빙하는 얼마나 되며, 빙하가 녹으면서 방출되는 고대 박테리아는 어느 정도인지 추측해 보자. 2000년 미국학술원연구지 발표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어림잡아 매년 100km3의 빙하가 녹아내렸다. 남극대륙의 넓이는 한반도의 60배로 현재의 속도로 이 빙하가 다 녹으려면 30만년이 걸리는데 그 사이 무슨 일이 또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빙하 1L에는 약 107~108개의 미생물이 들어 있으며 미생물은 평균 약 2x10-15g의 DNA를 보유한다. 1년에 빙하가 녹으며 방출되는 박테리아는 1021개 정도로 추정해 볼 수 있으며 핵산물질의 양으로는 20t의 박테리아 DNA가 현재 생태계로 투입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어마어마한 양의 미생물이 빙하에서 쏟아져 나오지만 인류와 현재 생태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결정적인 사례는 아직 없다. 다만 여러 가지 가능성과 가설이 제기되고 규명하기 위한 여러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어떤 항생제에도 효과가 없는 슈퍼 박테리아의 출현과 새로운 질병(병원균)의 창궐은 생태계나 지구환경의 교란 때문에 발생한 것일 수도 있고 가축과 가금류의 치명적 전염병은 집단밀식과 단일품종교배 때문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지구생태계가 오랜 세월을 거쳐 서서히 변해서 현재의 모습을 이룬 것처럼, 앞으로도 지구 환경뿐만 아니라 생태계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만 최근처럼 급격한 변화를 일으킨 적은 인류의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렵고 변화의 끝을 우리가 알 수 없을 뿐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김민수 | 글 이상훈 기자

🎓️ 진로 추천

  • 환경학·환경공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 지구과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