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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이 집 청소에 집착하는 사연



2003년 개봉한 영화 ‘매치스틱 맨’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로이’는 무척 한심한 사기꾼이다. 사기꾼에게 등급이 있다면 로이는 가장 낮은 하급 사기꾼일 테다. 힘없는 노인이나 ‘인생 한방’을 꿈꾸는 가난한 사람에게 너절한 사기를 치기 때문이다.

그의 사기 수법은 단순하다 못해 황당하다. 우선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건다. 운 좋게(?) 노인이 전화를 받으면 경품에 당첨됐으니 상품을 보내게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한다. 그리고는 알려준 집으로 찾아가 싸구려 정수기를 열 배는 비싼 값으로 강매한다. 허술해 보이지만 그는 이 방법으로 사업을 어느 정도 안정권으로 만들어놨다. 파트너 모르게 돈도 꽤 모아뒀다.
 


 
죄책감 →  불안 →  강박증세

하지만 정작 로이의 사생활은 행복하지 못하다. 그는 결벽증, 강박증, 대인공포증, 광장공포증을 비롯해 각종 노이로제 증상을 앓고 있다. 일이 없을 때 그는 집 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는다. 자물쇠를 이중삼중으로 잠그고 집안 구석구석을 소독하고 닦아내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끊임없는 청소로 집안에서는 락스 냄새가 진동을 한다. 하지만 그는 청소를 멈출 수가 없다. 물론 누가 찾아와 집안을 어지럽히는 것도 참을 수 없다.

사실 로이가 이렇게 강박증을 앓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훤칠한 외모에 말끔한 차림으로 다니는 로이는 언뜻 보면 스스로에게 대단히 만족하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깊은 무의식 속에서는 노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불안함이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다. 뻔뻔하고 교활하게 사람들을 궁지로 몰아넣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죄책감은 불안을 낳고 불안이 깊어질수록 로이는 강박증에 더욱 사로잡혀갔다.

불안을 느끼는 사람은 일이 잘못될 것 같은 초조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외출하다가도 불안한 마음에 길을 되돌아와 가스며 열쇠를 제대로 잠갔는지 재차 확인을 하는 사람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여기에 죄책감까지 더해지면 불안감은 수백 배로 커진다. 정신과에는 실제로 그런 임상사례가 적지 않다.
 

[불안을 느끼는 사람은 일이 잘못될 것 같은 초조함을 느끼기 때문에 특정한 생각이나 행동을 반복하는 강박장애가 나타난다.]
 

아기에게 죄책감을 느낀 엄마

언젠가 아기를 떨어뜨릴 것 같아 아기 목욕을 시킬 수가 없다는 엄마가 병원을 찾았다. 표면적인 문제는 아기 목욕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상담이 이어지면서 진짜 원인은 다른 데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많은 고생을 한듯했다.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병이 와 죽고 싶다는 우울증을 반복해서 겪었다고 했다. 부정적인 마음은 자연스럽게 아이에게로 전해졌다. 그녀는 뱃속의 아이만 없었다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거라며 아이를 원망했다. 심지어 유산을 고려하기도 했다.

다행히 열 달 뒤 예쁜 아이를 낳았지만 그녀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임신 기간 동안 아기를 원망했다는 죄책감은 아기를 볼 때마다 더 커졌다. 죄책감은 불안감으로 이어졌고 결국 자신이 아기를 떨어뜨려 죽게 할지도 모른다는 강박장애로 이어졌다.

‘매치스틱 맨’에서 로이가 결벽증으로 고생하는 이유도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죄책감이 너무 큰 나머지 자신에게 뭔가 나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기에 가장 나쁜 일은 죽음이다. 그는 ‘죽지 않고’ 무서운 감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집안을 청소했다.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만 한다면 이 안에서 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영화 속에서 가구며 카펫의 잘 보이지도 않는 얼룩 하나까지도 찾아내서 닦고 또 닦는 장면은 웃기면서도 씁쓸한 여운을 전해준다.


반복행동의 불합리 알아도 못 고쳐

우리는 누구나 하루에도 몇 번씩 수많은 감정과 복잡한 생각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공격적인 충동, 성적 충동, 적개심, 원망, 분노와 좌절감 등 종류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사회인인 우리는 감정을 날것으로 드러낼 수는 없다. 우리는 감정을 억압하느라 안간힘을 쓴다.

불안은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갈등의 산물이다. 강박장애도 불안에서 시작한다. 강박장애란 자신의 의지로는 하고 싶지 않지만 어떤 특정한 생각이나 행동을 반복하는 상태를 말한다. 당사자는 자신의 반복적인 행동이나 생각이 불합리하고 쓸데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 견딜 수 없어 어쩔 수 없다. 임상에서는 스스로 불합리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멈추지 못해 괴로워할 때 병이라고 진단한다. 증상이 처음 나타나는 시기는 대부분 사춘기에서 성인 초기지만 어른이 돼서 나타나는 수도 있다.

특이하게도 강박장애 환자는 학력이나 지능이 높은 사람들에서 많이 나타난다. 유전 요인도 있다. 일반인 중에는 약 2~3%가, 정신과 환자 중에는 약 10%가 강박장애를 갖고 있다. 강박장애는 발병 후 만성화가 한참 진행된 다음에 치료를 시작하면 효과가 현저히 떨어진다. 따라서 자신에게 강박장애가 나타난 것 같다 싶으면 곧바로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치료는 약물치료와 상담, 행동치료를 병행한다. 단기간에 완치되지 않으므로 현실에 적응하고 일도 하면서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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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윤미 기자, 글 양창순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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